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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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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Ⅰ

[한윤수의 '오랑캐꽃']<169>

00국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대사관 노무관실에 근무하는 한국인 여직원이다.
"고불(가명)이라는 근로자 아시죠?"
"예, 저희가 비자 문제와 체불 건을 도와주고 있습니다만. 무슨 일로?"
"근로자가 불안해하네요. 대사관으로 전화가 여러 번 왔거든요."
"그래요?"
"벌금도 20만원 냈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비자 연장을 안 했더라구요."
왜 고불이 대전출입국에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대사관 직원은 불만족스러운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전반적인 진행상황을 알려주실래요?"
전반적인 진행상황을 알려달라고? 말은 부드럽지만, 고불에 관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마치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에 명령을 내리는 것 같다.
비영리민간단체가 외국 대사관에 보고할 의무는 없지만, 비교적 소상하게 진행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 불거졌다.
대사관 직원이 미심쩍은 듯 다시 물었으니까.
"근로자가 발안센터를 처음 찾아간 게 11월 초라고 들었습니다만, 아직도 처리가 안 된 건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기가 막히다. 마치 검사가 피의자를 심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외국 대사관인데! 무엇보다 선린우호가 중요한 거니까.
"11월 문제와 지금 문제는 다릅니다. 그때는 재고용 문제로 찾아왔었어요. 지금은 *비자 연장과 체불 건이고요."
"그래요? 그럼 왜 근로자가 불안해할까요?"
"엊그제 대전출입국까지 가서 비자 연장해 주었고, 닷새 후엔 체불 건으로 천안 노동부에 동행 출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귀국 노동자는 저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유감입니다."

그녀가 비로소 한 발 물러섰다.
"기분 언짢게 들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근로자한테 계속 전화가 와서요. 또 근로자를 돌봐준다는 서울 00동의 외국인센터에서도 전화가 오거든요."
"그 사람 돌봐주는 데가 있어요? 그럼 저희 센터는 손 떼겠습니다. 저희는 다른 센터에서 손 댄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당황했다.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닌데. 계속 도와주셔야지요."
"안 합니다. 그쪽 센터에 부탁하세요."
"그 센터에서는 못한대요."
"그럼 대사관에서 직접 도와주세요. 대사관이 하는 일이 뭡니까? 자국민 보호 아닙니까?"
나는 더 이상 대사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자 연장 : 외국인은 외국인 등록증 뒤에 적혀 있는 날짜가 지나가기 전에 출입국에 가서 체류기한을 연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 날짜가 지나가도록 출입국에 가지 않는 무신경한 인간도 있다. 고불이 그런 경우였다.
이런 자는 불법체류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당장 추방되지는 않는다. 날짜를 잊어버린 게 큰 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벌금만 내면 다시 합법체류자가 된다.

*최선을 다하고 : 우리 차에 고불을 태워 비싼 기름값 내고 대전 출입국까지 가서 한 시간 이상 조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고불은 불법체류자에다가 3년 만기가 끝났으므로 당장 출국시킬 수밖에 없다는 담당자와 입씨름하여 겨우 비자를 연장하였고, 발안으로 돌아오다가 너무 늦어 저녁까지 사먹여 보냈다. 이렇게 인력과 시간과 돈을 써가며 우리 딴에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는데도 고불이 의심하는 듯한 말로 비난한다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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