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개혁은 지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초래되고 있는 경제 자유화 흐름과 개인적 부를 축적하고 국가적 통제를 벗어나려는 중산층의 태동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북한 정권의 신(新) 보수주의 조치라고 북한 문제 전문가가 분석했다.
사적 경제영역에서 활동하며 시장경제적 요소를 주도하는 중산층을 겨냥한 이번 화폐개혁 조치가 단기적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를 복원시키는데 기여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상실하게 하는 정치적 위험 요소를 동반하고 있다고 지적됐다.
옛 동독출신으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공부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북한문제 전문가 루디거 프랭크 교수는 5일 미국 안보전문연구기관인 노틸러스 연구소 홈페이지에 기고한 `북한의 화폐개혁과 정통사회주의'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번 조치의 목적과 실효성을 진단하며 이같이 분석했다.
프랭크 교수는 "북한 정권은 2002년 7월의 개혁 조치 이후 경제자유화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에 충격 받았고, 경제자유화 흐름은 남한과의 경제협력, 합법.비합법 중국무역의 급증으로 촉진됐다"며 "화폐개혁은 2004, 2005년부터 북한에서 시작된 `신보수주의'(neoconservative) 경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2003년 봄 `인민생활공채'를 발행하고, 시장거래 품목을 식량에서 공산품으로까지 확대했지만, 그 이후 추가 개혁조치는 없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거래는 점진적으로 축소됐고 국가가 통제하는 생산.분배 시스템으로 주민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노력이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프랭크 교수는 특히 "부(富)의 차이가 가시화되고 불평들이 점증함에 따라, `성공적인 시장거래'는 범죄시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후반부터 1950, 60년대의 천리마 운동 정신을 계승한 `혁명적 대고조' 운동을 시작하고, 올들어 `150일 전투' `100일 전투'를 연이어 추진하며 북한 정부가 `속도전'을 주창한 것은 경제적 실용성보다는 체제 수호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목적이 강했다고 프랭크 교수는 분석했다.
프랭크 교수는 "이번 화폐개혁은 북한을 정통 사회주의로 복원시키고, 수년간의 개혁 조치로 초래된 위험한 결과를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의 하나"라고 규정했다.
그는 "과거 일련의 개혁에서 비롯된 가장 위험한 결과는 국가 주도의 집단주의 경제에서 벗어나 개인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부유한 신흥 계급의 출현이었다"며 이집트의 통신회사 오라스콤 휴대전화에 가입한 평양주민이 3만명에 달하고, 평양에 개인 레스토랑이 생긴 사례들을 들었다.
프랭크 교수는 이같이 개인적 부를 축적한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신흥계층의 출현은 즉각적인 북한 체제의 붕괴를 초래하지는 않지만, 북한 체제에는 지극히 위험한 요소로 인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랭크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 북한 지도부는 동유럽 사례 연구를 통해 사회주의 몰락은 이데올로기의 붕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북한 지도부는 주민들이 정부를 두려워하고 복종하지만,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상황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길 원한다"고 말했다.
북한 지도부는 최근 수년동안 부상한 개인주의를 근절하기 위해 기술적 조치에서부터 이데올로기적 캠페인까지 전개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이번에 단행된 전격적인 화폐개혁은 "북한의 중간계급을 파괴(destroy)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프랭크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화폐개혁 추진 목적의 달성 여부와 관련, "이번 조치의 타깃이 되어 영향을 받게 되는 계층의 상황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프랭크 교수는 "대규모 거래를 해왔던 상당수는 소득을 달러, 유로, 엔, 위안화 등 외화로 바꿔 보관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의 대다수 사업자는 상당한 자산을 잃게 될 것"이라며 최대 피해 계층은 중산층중에서도 말단을 차지하는 소규모 상공인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프랭크 교수는 "화폐개혁의 결과로서 말단의 중간계급은 과거 방식으로 경제적 거래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며, 외화 보유를 통해 징발을 모면한 계층들도 경제적 거래에서 몸을 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국가 통제영역을 벗어난 경제활동은 이번 화폐개혁조치로 완전소멸되지는 않겠지만 현저히 축소될 것이며, 북한 정권은 과거 수년동안 상실해왔던 국가의 경제 통제권을 회복할 것이라는 게 프랭크 교수의 진단이다.
프랭크 교수는 "그러나 이번 조치를 통한 정치적 대가는 북한 정권에게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며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은 레닌이 말했던 `혁명적 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좌절과 불평이 조용하게 체제 내에 축적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좌절과 불평이 당분간은 진압될 수 있지만, 지도자의 사망, 기근, 외부의 충격, 소규모의 국내 갈등과 같은 계기가 촉발될 경우 거대한 반작용을 충분히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랭크 교수는 "이번 화폐개혁으로 북한의 보안조치는 강화되고, 일시적인 소요는 진압될 것"이라며 "단기적 관점에서 이번 조치는 북한 정권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나 개인적인 경제 활동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 이번 조치는 체제의 정통성을 상당히 상실하게 하는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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