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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장악 시대, 기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김영호의 사자후] 한국기자협회장 선거에 부쳐

해방 이후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5·16의 박정희도, 12·12의 전두환도 탱크를 앞세우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청와대가 아니다. 방송사로 달려가 마이크부터 먼저 뺐었다. 정보의 유통 경로를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절 이 나라 언론의 행로는 굴종과 질곡으로 점철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민주화의 여명기를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 장악을 노린 정치 권력의 음습한 음모는 지칠 줄 모른다. 역대 정권이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언론 장악의 끈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언론 투쟁에 기자 사회는 어디에 있었나

6월 항쟁 이후 22년이 지났건만 역사의 수레바퀴가 빠르게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암울했던 그 시절에 철권을 휘두르던 정치 세력이 다시 만세를 부르는 형국이다. 뒤에서 언론을 조정하던 보이지 않는 손이 햇빛 아래 드러내고 노골적으로 언론 장악에 나섰다.

언론특보를 낙하산으로 YTN, KBS에 꽂고 MBC를 넘나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법제화를 통해 조직적·체계적 언론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언론 악법' 날치기 처리에 대해 절차상 위법성을 인정했지만 한나라당이 재논의를 거부하는데서도 의도의 불순성을 알고도 남을 만하다.

언론노조가 언론 장악에 맞서 이 나라 언론 투쟁사에 새로운 장을 장식할 만큼 치열하게 싸운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시민단체, 촛불, 누리꾼이 결합해 투쟁의 열기를 높였다. 하지만 기자 사회는 어디에 있었는지 묻는다면 무관심이란 답변이 정답일 듯싶다. 물론 많은 기자들이 고민을 같이 했겠지만 투쟁의 현장에서 신문 기자들은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거대 신문들이 돈을 뿌려 남의 독자를 약탈적으로 빼앗아 가면서 신문고시를 사문화시키고 있다. 신문 산업 지원을 위해 모처럼 마련된 신문법과 지역 신문 육성을 위해 어렵게 제정된 지역신문발전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여론 독과점을 즐기는 정권이 교묘한 수법으로 주류 신문을 돕고 있지만 많은 신문 기자들이 방관자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꼴이다.

한국기자협회는 단순 '친목단체'인가?

마침 한국기자협회장 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냉기를 느낄 만큼 회원의 관심도가 낮은 듯하다.

기자협회는 기자 사회를 연결하는 대화와 단결의 구심점이라는 점에서 회원의 뜨거운 관심과 활발한 참여가 아쉽다. 구성원의 무관심 속에 후보자만이 뛰는 선거라면 자칫 단결력을 이완시킬 소지가 있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기자협회장 선거는 일종의 간접선거라는 점에서 하는 말이다. 후보자들이 대의원을 찾아다니며 개별적으로 공략하고 지연·학연에 호소한다면 연고선거로 전락될까 우려된다.

이번 선거를 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서고 정책 대결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감시자로서 회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경영난에 따른 고용 불안은 기자협회 차원에서도 정책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과제다. 노후 보장을 위한 언론연금의 제도화는 이제 기자협회가 앞장서 논의할 단계다. 언론 윤리 확립 및 재교육 확충, 언론 보도에 따른 피해 구제, 옴부즈맨 제도 활성화, 미디어 교육 제도화 등도 언론 창달을 위해 기자협회가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정책 방향을 제시할 문제다.

기자협회는 단순한 이익단체나 친목단체가 아니다. 정치 상황에 따라 굴절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온 찬란한 전통을 가졌다. 이 나라 언론 투쟁사의 금자탑인 1974년 유신정권에 맞선 자유언론실천운동, 1980년 신군부에 저항한 제작 거부 운동은 기자협회가 옥쇄를 각오하고 결행한 거사였다. 다매체·다채널 시대를 맞아 언론 환경이 급변하면서 언론계는 어느 때보다 많은 정책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것이 기자사회의 위상과 깊은 연관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기자협회의 역할은 더욱 증대되고 있어 이에 따른 책무가 막중하다.

기자들이 '패배주의'를 떨쳐낼 때

언론 환경의 변화에 맞춰 기자협회의 위상과 역할의 재정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기자 사회가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중심 세력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가 변화와 개혁을 도출하는 정책 대결의 장이 되어야 한다. 또 기자협회의 전통을 살려 정치 권력의 부단한 언론 장악에 맞설 투쟁 의지도 표출되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구성원이 무관심과 패배주의를 떨쳐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만이 가능하다. 기자협회를 이끌 탁월한 지도력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실행력과 투쟁력을 갖춘 차기 회장의 탄생을 기대한다. 이제 언론 문제를 시민사회에만 맡겨놓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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