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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증명

[한윤수의 '오랑캐꽃']<160>

외국인이 인감증명을 떼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혹자는
"외국인이 무슨 인감?"
할지 모르지만
1. 외국인에게도 인감이 있고
2. 부득이하게 인감증명을 떼어야
할 일이 가끔 생긴다.
특히 월급이나 퇴직금을 못 받아 민사소송을 할 때는 외국인도 반드시 인감증명을 떼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인감증명을 떼려면 어려운 점이 있다. 왜 그럴까? 인감증명을 떼려면
1. 공장에 매여 있는 노동자가 평일에 하루 시간을 내야 하고
2. 외국인 등록증에 나와 있는 영어 이름으로 도장을 파야 하고
3. 주소지 행정기관에 가서 인감을 등록하고 인감증명을 발급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1번은 노동자 스스로 할 수 있지만 2번과 3번은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 혼자 처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 센터에서는 한국인 직원이 동행하여 2번과 3번을 도와준다.

태국 여성 하나가 인감증명을 뗄 일이 생겼다. 임금과 퇴직금 414만원을 못 받았는데 사장님이 도무지 주질 않아서 소송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도장 파는 일은 우리 직원이 해주었다. 2번 성공!
그러나 인감을 등록해야 하는데 그녀의 주소지가 성남시 상대원동이라 거기까지 동행할 일이 아득하다. 그러잖아도 여러 가지 일로 바쁜 직원이
"반나절은 걸리겠죠?"
하며 한숨을 쉬자, 나이 많은 자원봉사자 K 씨가 보다 못해 나섰다.
"내가 가죠 뭐."
"그래주시겠어요?"
덕분에 직원은 한숨을 돌렸다.
태국 여성과 자원봉사자 K씨는 버스로 출발했다.

한 시간 쯤 후 K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상대원동 동사무소에 와 있어요. 근데 여기선 *인감 등록을 안 해준다는데요."
"이상하네요. 화성 시는 읍사무소건 면사무소건 다 해주는데."
"하여간 여기선 안 해준다니 우린 시청으로 이동합니다."
화성 발안에서 성남 상대원동으로, 상대원동에서 시청이 있는 여수동으로 뺑뺑이를 돌고 있구나 생각하니 미안하다.
결국 태국 여성과 자원봉사자는 성남시청에 가서 인감을 등록하고 인감증명을 발급 받았다. 3번 성공!

좌우지간 자원봉사자는 별 일을 다 한다.
고맙다.

*인감 등록을 안 해준다 : 알고 보니 외국인의 주소를 관할하는 행정 단위는 동(洞)이 아니다. 아직 국내에 외국인이 많지 않아서 행정 편의상 여러 동을 묶어서 크게 관할하므로 결국은 시청에서 관할한다고 보면 된다. 반면에 읍면은 대체로 외국인의 인감 등록을 해준다. 물론 작은 읍면에서는 안 해주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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