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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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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전단지

[한윤수의 '오랑캐꽃']<159>

일 년에 약 3천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발안 센터로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그들은 별별 고충을 다 갖고 있으며 저마다 독특한 사연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 사연에 맞게 고충을 처리해준다.

2년 전만 해도 홍보 차원에서 전단지를 뿌렸다. 그 전단지에는 무슨 고충이든지 다 해결해줄 테니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내용이 동남아 각 나라 말로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뿌리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화성에 있는 외국인들은 우리 센터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판단했고 둘째, 처리 능력 이상으로 외국인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 올까봐 은근히 겁이 났기 때문이다.

▲ 잠자는 전단지 ⓒ한윤수

울상으로 생긴 태국인이 왔다. 왜 저렇게 울보처럼 생겼을까? 살짝 눈만 흘겨도 울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재미있어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다. 눈이 아파서 울상이 된 것이다.

지난 4월 쇠를 깎는 작업을 하던 중 쇳가루가 바람에 날려 눈에 들어갔다. 미칠 듯이 따가와서 수원에 있는 종합병원에 8일간 입원했고 석 달을 더 치료했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이 아프고 잘 안 보일 뿐 아니라 눈에 무슨 나무 심지가 박힌 것처럼 불편하단다.

그래도 그는 4개월 동안 잘도 참고 지냈다. 하소연할 데가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어제 신발을 사러 신발가게에 들렀다가 태국 친구를 만나서 우리 센터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이다.
"도와줄 거야. 발안으로 가봐."
일요일 해가 뜨자마자 그는 우리 센터로 왔다.

공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팔탄면 하저리란다. 하저리는 좀 후미진 데지만 발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 우리 센터를 모르다니! 하기야 태국인이 일요일에 친구도 만나지 않고 방에 콕 박혀 TV나 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의 *고충을 처리해주고 나서 생각해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아직도 우리 센터를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왜냐하면 보통 일요일에 40명에서 60명 정도의 외국인이 방문하여 상담을 받는데 그 중 반은 센터에 처음 온 생짜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온 이들은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뒤늦게 찾아온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 *해묵은 문제들을 들고 오니까. 심지어는 3년 채권 시효가 지난 퇴직금을 받아달라고 오는 경우까지 있다.
"조금만 일찍 왔어도 받을 수 있었는데!"
안타까워서 한숨만 나올 때가 많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물론 전단지를 뿌리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알고 찾아오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또 내 명함을 복사한 종이쪽지를 들고 오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내 명함이 복사되어 여기저기 시골로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개인의 명함보다는 공공의 전단지를 뿌리는 게 낫지 않을까?

잠자고 있는 전단지를 꺼내서 다시 뿌려야겠다.

*고충을 처리 : 그는 자신의 사고가 산재처리 되었는지 여부와 앞으로 치료를 더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어 했다. 알아보니 산재처리는 되었지만 휴업 급여를 못 받은 상태. 휴업급여를 못 받았기 때문에 산재처리가 안되었다고 지레 짐작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휴업급여를 받게 해주고 다시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해묵은 문제 : 멀리서 오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1년 이상 묵은 체불임금과 퇴직금 문제를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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