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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서우가 묻는다…"왜 이 일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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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서우가 묻는다…"왜 이 일을 하세요?"

[모 피디의 그게 모!] 드라마 피디의 세 얼굴

두 모 : 드라마 피디

그 날의 나에겐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사무실에 나가 대본을 읽고 편집을 보고 필요한 준비를 체크해 놓는 일이었다. 드라마 피디다운 일상. 그런데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모처럼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는 날이었다. 하루쯤 쉬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용산 참사 300일 추모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같이 가자는 동료의 문자를 수차례 읽으며 갈까 말까를 망설였다. 용산 참사가 터졌을 때는 '그날 찍어 그날 내는' 생방송 스케줄에 쫓기고 있던 터라 충분히 분노하지도, 충분히 알아보지도 못했던 터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씻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는, 그냥 편히 쉬는 것이었다. 영등포에 새로 생긴 무슨 스퀘어인가가 좋다더라는 말이 기억났다. 여기저기 눈요기를 하며 윈도쇼핑을 하고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는, 서울에서 즐길 만한 평균적인 휴일을 즐기고도 싶었다.

▲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은근히 자랑했듯, 드라마 피디들은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것만 고민하면 되는, 방송국 정규직이라는 신분 보장을 받는 월급쟁이 감독들이자 제작자들이다. ⓒKBS

첫 번째 경우가 '드라마' 피디의 일상적 노동이라면 두 번째 경우는 '피디'로서 갖게 되는 당위와 의무감이었다. 이 기막힌 사연과 억울함을 이야기로 기록하여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 그렇기에 300일이 지난 후에라도 두 눈으로 보고 기억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경우는, 그냥 내 자신이 원하는 휴식과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일이었다.

드라마 피디의 정체성은 이 세 가지 경우의 수에 걸쳐져 있다. 첫 번째, 방송국의 정규직 노동자라는 것.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은근히 자랑했듯, 그들은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것만 고민하면 되는, 방송국 정규직이라는 신분 보장을 받는 월급쟁이 감독들이자 제작자들이다. 대본을 고민하고 촬영을 해나가며 큐와 컷을 외치는, 열정과 자아를 투사할 수 있는 노동. 그런데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는 피디와 촬영 감독뿐이다. 그는 방송국을 대표해 수많은 계약 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휘하고 달래며 살인적인 스케줄 하에서 드라마를 뽑아내야 하는 의무를 진다.

두 번째 정체성은 피디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니게 되는 것으로, 드라마 피디 또한 언론인이라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사장으로 정치 특보를 내려 보내는, 불과 1년 전의 말을 뒤집는 후안무치한 상황에 대해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의무, 그리고 맞서 싸워야 하는 의무. 이 시대에, 이 시점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의무. 그리고 드라마 제작 업계가 최대한 합리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할 의무. 프로그램으로 비판과 견제 기능을 성취하는 것은 시사교양 피디의 일일지라도,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해야 할 의무는 남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다. 소설가나 영화감독처럼 자신의 세계를 탐구하고 어떤 작품을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어떤 주제, 어떤 인물, 어떤 이야기에 맞는다고 느끼는지, 그걸 표현하기 위해 어떤 그림을 구상하는지, 어떤 글이 자신의 가슴을 치는지를 가만히 살펴보고 연구하는 예술적 고민이 바로 직업이 된다. 개인적이긴 하나, 이런 고민과 노력이 결국은 드라마 연출가로서의 성취를 좌우하게 되니,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이기도 하다.

▲ '부당 해고'에 반발해 KBS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인 언론노조 KBS 계약직 지부 조합원들. 스태프들의 일터를 지켜주지 못하는 드라마 피디가 스태프들에게 받는 존중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프레시안

드라마 피디의 모순은 보통 첫 번째와 세 번째 정체성의 충돌에서 온다. 드라마 피디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능력에 대한 것이기 이전에 지위에 대한 것이다. 소설가는 소설을 썼기에 소설가이며 영화감독은 연출한 영화가 있기에 영화감독이지만 드라마 피디는 입사 시점부터 '감독님'이 된다. 드라마 피디들은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연출가로서의 존중과 소통을 바라지만 그들이 '감독님' 소리를 듣고 대우를 받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획득한, 방송국의 정규직이라는 지위 때문이다. 그들이 캐스팅을 하고 스태프를 구성함에 따라 드라마 업계의 일감이 분배된다. 드라마 피디는 일감의 분배자이자 평가자이기 때문에, 피디의 연출력이 얼마나 존경 받는가와는 별개로 그의 권위는 존중받는다.

그러나 그 존중은 드라마 피디를 소외시킨다. 자신이 가장 소통하고자 하는 바인, 드라마가 어떠하였는가, 연출력은 어떠하였는가를 냉정하게 판단해줄 사람을 만날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다. 드라마 비평은 그 존재가 너무 미미하며 시청률은 그 드라마의 흥행을 이야기해줄 뿐 드라마의 가치와 연출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깍듯한 말투와 아부, 혹은 시기 질투, 혹은 감정 없는 숫자인 시청률 사이에서 작품으로서의 가치, 감독으로서의 능력에 대한 피드백은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 라디오 채널처럼 제대로 들리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정체성들이 행복하게 통합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능력보다 지위에 대한 존중이 앞선다면 능력을 더 키우면 된다. 좋은 작품을 낸 드라마 피디들은 그렇게 첫 번째 정체성과 세 번째 정체성을 통합한다. 지위와 능력을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다. 대중의 입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른바 '스타 피디'들이 그렇다. 그러면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사안 별로 시사 교양 피디들, 혹은 노동조합의 판단이 옳다면 그에 따라주기만 해도 된다. 열심히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동료들의 정의감에 힘을 실어주기만 하면, 세 가지 정체성은 하나로 녹아든다. 그게 가능해야, 좋은 시스템이고 좋은 사회다.

그런데 현재의 시스템은 드라마 피디들에게 무력함과 죄의식을 강요한다. 나와 같이 일하던 스태프들이 비정규직으로 해고되어 풍찬노숙을 앞두고 있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연기자의 감정 연결에 대해서 소품의 위치에 대해서 지시하고 논의하여 하루의 촬영을 마친 후, 드라마 피디는 시간외수당을 입력하고 스태프는 피켓을 들고 집회장으로 나가야 한다면,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스태프들의 일터를 지켜주지 못하는 드라마 피디가 스태프들에게 받는 존중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한 드라마를 끝낸 후 눈물과 웃음의 뒤풀이 후에 드라마 피디는 어떻게 휴가를 보낼 것인지 궁리하고 스태프들은 기약 없는 다음 일감을 찾아 헤매야 한다면. 이렇게 첫 번째 정체성은 맥없이 무너진다.

언론인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도 현재의 상황 하에서는 힘을 잃는다. 권력의 방송 장악의 시대에 우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동료 시사교양 피디들이 체포되거나 파면될 때 우리는 뭐라고 외쳐야 할까. 연출이 마음속에 품고 담금질해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기획이 꽂혀 내려올 때 어떤 직업 윤리로 임해야 하는 것일까. 전제 군주를 즐겁게 하기 위한 왕립 극단의 단원이 된 양 살아야 한다면.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던 몰리에르는 어떻게 살아남았던가. 왕을 기쁘게 하면서도 인간의 이중성을 꼬집는 희극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지. 브레히트는 전쟁과 이념의 공격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던가. 켄 로치는 어떻게 BBC에서 괄목할만한 개가를 올렸던가. 어떻게든 희망의 예를 찾으려 수백년 전의 선배까지 찾아 올라가는 나를 발견한다.

▲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던 몰리에르는 어떻게 살아남았던가. 켄 로치는 어떻게 BBC에서 괄목할 만한 개가를 올렸던가. 어떻게든 희망의 예를 찾으려 수백년 전의 선배까지 찾아 올라가는 나를 발견한다.

결국 그 날의 나는 '드라마' 피디의 노동으로부터도, 드라마 '피디'의 의무감으로부터도 달아나 세 번째 경우를 선택했다. 개인의 행복. 전부터 필요로 했던 가방을 하나 사고, 대형 서점에서 책을 읽고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고르는 휴식. 질문들로부터의 휴식.

그러나 화려한 멀티플렉스에서 남루한 현실을 다루는 영화를 보며 나는 기어이 또 다시 그 질문과 마주하고 만다. 영화 <파주>에서 서우가 묻는다. '왜 이 일을 하세요?'

<파주>의 질문을 곱씹으며 나오자, 영등포에 새로 세워진 대형 복합 쇼핑몰 아래에는 핑크빛 유곽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카메라로 찍으면 한 컷 안에 잡힐 것 같다. 별도의 연출 없이 유곽과 쇼핑몰을 한 컷 안에 둘 수 있는 현실의 미장센. 그리고 내게 주어진 세 개의 정체성.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왜 이 일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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