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미친 북한' 최고지도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미친 북한' 최고지도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라

[한반도 브리핑] 최근 북한 행보에 대한 오해와 진실

최근 북한의 태도를 놓고 설왕설래다. 북한은 금년 초만 해도 오바마 행정부와 각을 세워 로켓 발사와 핵실험까지 강행했고 이명박 정부와는 정복을 입은 군인이 나와 전면대결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미국, 한국 모두와 최악의 대결상황을 불사하는 자세였다.

그러나 7월부터 북은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자제하고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도 저항보다는 묵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8월 들어서는 본격적인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실형을 선고받은 미국 여기자 둘을 석방하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후 개성공단 직원을 조건 없이 풀어줬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미국과 양자협상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얼마 전 리근 외무성 국장이 미국을 직접 방문해 양자협상을 구애하는 듯한 모습도 눈에 띠는 대목이다.

원칙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음에도 북한은 남측 당국과 임진강 수해방지 회담과 적십자 실무접촉을 거쳐 고위급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심지어 남측과는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더더욱 의아함을 가중시켰다. 6.15와 10.4를 부인하고 북에 대한 대결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최고위급의 정상회담까지 모색하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불거진 남북 싱가포르 접촉설에 따르면 북의 김양건 통전부장이 직접 날아 갔지만 남측이 정상회담 개최에 조건을 제시하면서 소극적이었다는 전언까지 들리니 정말 이 정도라면 북의 체면이 구겨도 한참 구긴 셈이 되었다.

북의 이해하기 힘든 태도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남측은 변하지 않았는데 북이 먼저 정상회담을 요청하고 그것도 남측의 훈계만 듣고 간 듯한 최근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북한의 세습 문제를 다뤘던 <시사기획 '쌈'>의 한 장면. ⓒ뉴시스

색안경주의자들의 착각 열전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북한의 태도를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오해가 만연하고 있음을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북한의 핵군축 회담 요구 이다. 이미 우리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기정사실화해서 기사를 쓰고 있고 적잖은 전문가들도 이를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북이 미국을 상대로 핵군축 회담을 요구할 거라는 우리의 무의식적 전제는 전혀 사실무근의 황당한 주장이다. 북을 미치고 나쁜 짓만 골라 하는 비정상적 행위자로 받아들이는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미친(mad) 북한' 현상이다.

북이 실제로 미국에게 핵군축 회담을 언급한 적은 한 번 있다.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을 공식화한 직후 3월에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군축 회담으로 나가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을 했다.

그러나 북이 6자회담에서 혹은 북미 양자회담에서 공식적으로 핵군축 회담을 거론한 적은 한 번도 없다. 2005년 3월 처음 거론한 이후 첫 6자회담인 그 해 7월 4차 6자회담에서 북은 예상과 달리(?) 기조발언에서 핵군축 회담을 언급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6년 10월 핵실험 직후 처음 열린 그 해 12월 6자회담에서 대부분의 서방 언론들이 실제 핵실험을 한 이상 드디어 핵군축 회담을 요구할 것이라는 멋대로 추측기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핵군축 회담을 거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조선신보> 기사를 통해 서방 언론의 왜곡보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수천 기를 가진 미국과 기껏해야 7~8기를 가진 북한이 핵군축 회담을 하자고 주장한다는 단순한 추측은 정말 사실 관계뿐 아니라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전형적인 '미친 북한' 그리기의 대명사이다. 북한을 항상 미친 나라로 보는 이들 색안경주의자들은 북이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최근 리근 국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까지 구애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 역시도 자의적 색안경주의의 입장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산물이자 북한의 굴복으로 간주될 만하다. 한미 공조의 탄탄한 대북 제재와 이명박 정부의 의연한 버티기가 결국 북한의 굴복을 얻어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도 이러한 정세 인식에 공감하고 더욱 더 대북 자신감을 고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자협상을 주춤하게 만든 북핵 '그랜드 바겐'도 기실 우리가 먼저 움직이지 않고 북의 완전 굴복을 기다리면 결국 북이 기어 나올 것이라는 또 다른 기다림의 전략이자 북핵판 '비핵·개방 3000'임을 감안하면 지금의 과도한 자신감에 이명박 정부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8월 이후 북이 아무 대가를 받지 않고도 스스로 '기어' 나왔듯이 그랜드 바겐으로 북의 완전 굴복을 압박하고 기다리면 또 언젠가는 북이 굴복할 것이라는 희망의 기대에 한껏 고무되어 있는 것이다.

클린턴-부시 시절의 전략적 변화

그러나 과연 그럴까? 최근 북의 잇따른 대남 양보가 이명박 정부의 원칙적 의연함에 굴복한 조치일까?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의 판단대로 북의 굴복이라면 지금과 같이 무작정 기다리고 압박하면 되겠지만 만의 하나 그것이 아니라면 변화된 정세에서 이명박 정부는 외로운 미아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최근 북의 태도는 제재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북한 주도의 새로운 협상구도를 짜기 위한 전략적 모색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지금까지도 북은 미국을 상대로 한 북핵 협상에서 당시 조성된 정세에 따라 변화된 전략적 그림을 가지고 협상에 임해왔다. 클린턴 시기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의 협상 전략과 부시 행정부의 2차 북핵 위기 때는 그림이 전혀 달랐다.

1차 위기 때 북은 미국과의 '양자' 고위회담을 틀로 해서 원자로 동결의 대가로 경수로를 얻는 이른바 '동결 대 보상'의 전략으로 나섰다. 당시 북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도 의지도 돈도 없다'고 강조하고 평화적 핵동력 공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경수로 발전소 제공을 얻어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시기 이른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문제로 촉발된 2차 핵위기에서 북은 양자협상을 거부하는 미국과 회담장에서 만나기 위해 스스로 입장을 바꿔가며 6자회담을 수용했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가 없다면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보유할 수밖에 없다는 '자위적 억지력' 명분의 핵보유를 선언하고 협상에 임했다.

진지한 협상에 나서지 않는 부시 행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번에 북은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실제 핵실험까지 단행해가며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 했고, 결국은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통해 폐쇄-불능화-폐기라는 단계적 접근을 주도했다.

이처럼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라는 서로 다른 미국 정부를 상대로 김정일 위원장은 변화된 정세에 맞게 나름의 전략적 그림을 변화시켜 대응한 것이었다.

'양자협상 후 6자회담'…'동시다발적 양자협상'

오바마라는 새로운 정부를 상대로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협상의 전략적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바로 이것이 최근 북한의 의아한(?) 행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연초의 '강 대 강' 대결을 한껏 고조시키다가 최근 들어 북미 양자협상과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적극 보이는 것은 대북 제재에 굴복한 '수동적'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협상구도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북한의 '주동적' 새판짜기 전략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협상판은 무엇보다 기존 '6자회담의 유명무실화'이다. 이미 로켓 발사 이후 북한은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공언했지만 오바마 시기에 6자회담은 그리 큰 매력이 있을 수가 없다.

애초에 회담 자체를 거부했던 부시 행정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차선책으로 6자회담을 활용한 북한인만큼 이제 또 다시 6자회담에서 비효율적인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핵 해법의 모범답안을 담고 있고 북도 동의한 바 있는 9.19 공동성명이 6자회담에서 도출된 만큼,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가 북미 양자협상의 조건으로 6자회담 동의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양자협상 후 6자회담'이라는 2007년 이후 방식을 구상하되 사실상 6자회담은 사후 추인 기구로 만드는 전략으로 임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위원장이 그리고 있는 새로운 협상 구도는 또한 '최고위급을 포함한 동시다발적 양자회담'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북은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통해 북핵 관련 이슈의 대부분을 해결해왔다. 실제로도 북한에 핵문제는 미국의 적대정책의 산물이고 따라서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정치적 양자협상을 통해 핵심 이슈가 해결되어야 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은 북미 양자협상 외에도 남북 및 북일 양자협상을 병행하는 동시다발적 양자협상 전략으로 정리된 듯하다. 부시 행정부 당시 핵실험까지 해놓고 미국과 양자협상을 벌였지만 일본의 납치 문제로 인한 발목잡기가 김정일 위원장을 피곤하게 했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대북 강경의 이명박 정부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북미 양자협상 조차도 한국 정부의 비협조로 인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됨을 잘 알고 있다. 한미관계의 속성상 북미협상은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에서 쉽사리 진전되기 어렵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은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 한 북미 양자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이제는 과거의 비효율과 어려움을 미리 관리하고 해결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북일간, 남북간 양자협상을 일정하게 지속하고 진전시켜 놓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가능하다면 최고위급 정상회담을 빨리 열어서 문제를 신속하게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다. 지난 달 평양을 방문하고 온 원자바오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한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원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그래서 심상치 않게 보이는 대목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이제 6자회담이라는 거추장스러운 틀을 넘어 본격적인 북미, 북일, 남북 양자협상으로 모든 핵 관련 현안을 집중 타결하고, 그것도 실무회담이나 6자 수석대표회담 등을 거치는 소모적인 방식을 넘어 일거에 북미, 북일,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최고위급 담판으로 세 번째 맞닥뜨리고 있는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심산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속전속결 전면 협상 방식'은 2012년이라는 북한의 고유한 숫자가 가지는 시간적 촉박함에서 비롯된 것임도 분명하다. 또 다시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중도하차와 2005년 9.19 공동성명의 교착을 반복하기엔 김정일 위원장에게 2012년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서는 6자회담을 넘어, 실무회담을 넘어 북미, 북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최고위급 정면돌파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0일 벌어진 서해교전 사태는 우선은 현장의 상호 과잉 대응이 빚은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높고 설사 의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동북아 순방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체제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정도의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를 과대해석해서 김정일 위원장의 동시적 양자협상 전략이 수정된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이를 간파한다면 북한의 최근 행보는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자 절호의 찬스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재와 압박에만 몰두하며 북이 내민 협상의 손길을 거부하는 이명박 정부의 '기다림 전략'은 북한 주도의 전략적 변화 국면에서 우리가 전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뿐만 아니라, 향후 북미 협상과 북일 협상에 의해 한반도 이슈가 신속히 진전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적 발언권과 정세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적 우를 범하게 된다. 기회는 무작정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게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이를 포착하는 자에게 온다는 것을 명심할 때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