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가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나 '한판' 했다. 그는 3일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신문법과 방송법이 위법하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은 어떻게 풀 것이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국회의장실에 있나"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재판소가 신문법·방송법 처리 절차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동시에 야당 의원들의 무효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자, 민주당은 "미디어 법 재논의"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당내에 '무효 언론 악법 폐지 투쟁 위원회'도 구성했다.
하지만 정작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민주당 추천위원은 사실상 아무런 견제 역할도 못하고 있다.
이병기 "정치계 논란에도 '행정부처' 방통위는 차질없이 이행해야"
지난 2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의결한 방송통신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민주당 추천인 이경자 위원과 이병기 위원이 최시중 위원장과 다른 상임위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들 위원은 지난 7월 "헌법재판소 판결 전에는 방송법 후속 조치 논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논의에 불참했고 방통위는 후속 논의를 중단했다.
이경자 위원은 "그동안 시행령을 강행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로 연기한 위원장 및 다른 위원께 감사하다. 약속한 대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난 만큼 존중하고 후속 논의에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병기 위원도 "방송법 개정 시점이 어제였고 행정 지침을 만들었어야 함에도 요청을 받아들여 심의를 연기한데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들 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반성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경자 위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면서 법이라는 게 단순한 상식이 아니고 고도의 전문 영역이구나 생각했다"면서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오늘부터 논의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병기 위원도 "비록 정치계에서 이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방통위는 행정부처로서 시행령을 만들어서 법이 차질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논의하는 과정에서 참여하지 못해서 늦어진 것에 대해 다소 개선할 점이 있다면 보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 견제 역할 못한 지 오래
한마디로 민주당 추천 방통위원들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에 힘을 싣고 나선 것. 특히 헌법재판소가 방송법 처리 절차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국회에 '자율적 해결'을 당부했고, 민주당이 '미디어 법 재논의'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미디어행동은 3일 성명을 내 "시행령 개정안은 야당과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반대해온 조·중·동의 방송 진출과 미디어의 자본 소유에 따른 특혜 조치를 오롯이 담아놓고 있다"며 "이러한 심각한 문제투성이의 시행령을 마치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렸다는 듯이 의결해준 야당 추천 위원들의 행동은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미 시민사회에서는 이경자, 이병기 위원 등 민주당 추천 위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한국방송(KBS), 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방통위 '밀실 행정' 등의 문제에 야당 추천 위원으로서 아무런 견제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관련 기사 : "최시종 방송 장악에 침묵한 야당 추천 위원들 사퇴하라")
손발 안 맞는 민주당…'미디어법 견제' 의지 있나
본래 합의체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최시중 '장관'의 독임제 기구처럼 운영된 데에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책임이 크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애매모호한 판결 이후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이 실제로 '미디어 법 저지'를 생각한다면 단순히 정치적인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방통위를 견제할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세균 당 대표는 '일전'을 다짐하고 이강래 원내대표는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언성을 높이는 사이 방송법 시행령은 야당 추천 위원들의 '협조' 속에 얼렁뚱땅 넘어가버렸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를 알고 있었든 아니든 참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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