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넷째 주말인 28~29일 1박2일로, 호남 변산반도의 내변산과 외변산, 고창 선운산의 단풍길, 장성 축령산 침엽수길 일대에서 올해의 마지막 가을을 밟으며 진행됩니다.
박태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답사지 배경 설명>을 들어봅니다.
생태언어라 할 '삼라만상'이란 단어에서 삼라(森羅)라는 표현은 숲속의 빡빡한 나무들을 연상해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울창한 녹색환경을 이루고 있어야 세상이 윤택하고 풍요롭게 되는 듯 싶은데 21세기 한국의 삼라만상들은 과연 평화롭고 여유롭게 안정되어 있는 것일까.
늦가을 철을 맞이할 적마다 떠올리는 불교문자가 있는데 곧 <적멸보궁>이다. 쓸쓸하게(寂) 스러져버리는 것(滅)을 일깨우는 보배로운 궁전이라니 과연 어떤 곳이 되는가, 얼핏 이해가 안 되는 장소성을 표현하려는 것이기에 실은 심오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을 테다.
적멸이라는 어휘는 우리에게 만추의 벌거벗은 나무들, 일테면 박수근 화백이 그린 나목(裸木)의 풍경 같은 것을 연상케 하는데 그 수목들이 여인과 어린이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쓸쓸한 쪽은 아니고 되레 따스하다. 늦가을 나무들은 매서운 겨울을 견디려고 미리 모든 욕망을 다 쏟아내어 홀라당 발가벗고 있지만 두터운 외투를 입을수록 더욱 추위를 타는 인간들에게 가르쳐준다. 적멸이 어찌하여 적멸로서만 완결되는 것이 아니고 보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를….
조급해 하기만 했던 현대한국인들에게 씨알의 생명존중을 일깨워준 기독교인 함석헌 선생은 영국시인 셸리의 '서풍부(西風賦·Ode to the West Wind)'를 애송하였다고 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변화를 통한 희망을 함께 알게 해주는 겨울바람 속에 어떻게 봄바람이 깃들고 있을 것인지 2009년의 꼬랑지 시간대에 이를 꿰어보고 싶다.
한로 상강 입동 지나 찾아오는 소설, 대설의 절기에 대하여 나는 이를 소설(小說), 대설(大說)이라고 의도적으로 잘못 읽고는 한다. 적멸에서 보궁까지, 그리고 가을 서풍에서 겨울 북풍과 봄의 동풍으로 이어지는 '겨울소나타'의 연주 음폭이 너무도 장중하기만 하다.
"바람이 분다, 살아보아야 하겠다"라고 폴 발레리는 읊었고, 미국 소설가 오 헨리는 뉴욕 빈민가의 가로수를 통해 '마지막 잎새'라는 깔끔한 콩트 작품을 남겼지만 한국의 토종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은 싯누렇게 된 이파리들을 한 겨울 내내 대롱대롱 가지 끝에 매달고 있고, 감나무 우듬지에는 감 열매들을 빨갛게 얼어터지도록 '까치밥'으로 남겨놓는다. 식민시대 시인 정지용은 추위마저도 조선 추위는 다르다고 찬탄했다.
"추위도 끝닿는 데 와서 정이 드는 조선 추위다. 안면 혈관이 바작바작 바스라질 듯 한데도 하늘빛이 하도 고와 흰 옷고름 길게 날리며 펄펄 걷고 싶다."
입동에서 소설, 대설로 접어들 무렵에는 천-지-인 합일 아니라 대자연(천체)의 기온과 소자연(인체)의 체온 사이에 온도 차이가 벌어지고 삼라만상이 상생의 합자연 아니라 상극의 몰자연(沒自然) 상태에 놓이고 있다. 열섬현상을 일으키는 도시기후와 농촌기후가 다르고 해변기후-산악기후-내륙기후 사이에도 온도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이에 도리어 대자연과 소자연, 도시와 농촌, 해변과 산악과 숲속의 그 모든 기후 차이를 내 살갗으로 예민하게 접수해보고 싶다. 대기오염에 익숙해진 나머지 오염되지 않은 대기에 되레 적응되지 못하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체반응 실험'도 곁들여서 특히 울울창창한 겨울나무들의 식물나라로 들어가고 싶다. 시인 정희성은 '숲'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는다.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나무도 보고 숲도 보면서 산책하노라면 무엇을 일깨우는가. 숲속은 숲바깥 쪽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생명체인 나무들이 태양열과 복사열을 적절하게 막아주거나 보호해주기 때문에 또다른 생명체인 인간들을 위한 '보건휴양'에도 좋다고 한다. 활엽수림의 단풍 길도 그러하지만 침엽수림 중에서도 특히 편백나무와 측백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품종들이어서 장성 축령산의 침엽수 휴양림이 새로운 명소로 각광을 받고도 있다.
동물나라에서 식물나라로 찾아 들어가는 후보지로서 변산반도의 내변산과 외변산, 고창 선운산, 장성 축령산 일대를 선택하는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는가. 이미 고려시대에 이규보는 변산의 울창한 밀림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었고 조선 후기의 이중환 또한 바다와 산과 들판을 고루 갖춘 변산의 수림과 송림을 찬탄하였다.
그리고 박지원의 소설 주인공 허생은 변산에 웅거하던 탈농-이농의 도적들과 함께 공도라는 섬으로 옮겨 영세중립평화국을 세우고 있었다. 단풍기행과 침엽수기행으로 나라를 세울 수야 물론 없을망정 변산반도에서 영세 중립 평화를 느껴볼 수는 있을 듯하다. 변산의 삼라만상 서식 상황은 지금도 다른 지역보다 양호한 편이라 한다.
부안군청에서 펴낸 <변산반도 자생식물>이라는 책에 의하면 부안 일대에는 126과에 속하는 881종류의 자생식물이 분포되어 있다 한다. 대표적인 북방 한계선 식물로는 천연기념물 124호로 지정된 꽝꽝나무 군락(변산면 중계리), 123호로 지정돤 후박나무 군락(변산면 격포리), 122호인 호랑가시나무 군락(변산면 도청리)이 있고 그런가하면 남방한계선 식물로 이 곳에서 자라는 미선나무 군락(변산면 중계리)도 있다.
부안에서 고창으로 질러가는 황토색 시골길에는 서정주의 표현대로 '8할의 바람'이 불지만 그것은 맛있는 바람이고 멋있는 풍류의 바람일지언정 방종과 타락을 부추기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부안 내소사와 고창 선운사를 한꺼번에 만나는 것은 과연 어떠한 행운일 것인가. 고창 선운사의 사계절은 모두 당돌하다. 동백과 청보리와 꽃무릇과 도솔산(선운산) 오르막의 도솔천 개울을 끼어 뻗지른 오솔길의 낙엽과 눈보라가 각기 나긋나긋하게 성깔을 부린다.
여기에 풍천 장어와 막걸리집 여편네의 육자백기 동백을 곁들이고, 한때 선운사에서 떠돌이 승려 노릇을 했던 시인 고은 선사의 민주공화국 성명서를 새겨들어봐야 한다. 부안에서 고창을 거쳐 장성으로 찾아가는 늦가을의 늦바람 나들이여.
내 마음 속에 인쇄돼 있는 직소폭포의 뭉게구름 같은 신선바위들과 암벽들, 내변산 횡단로의 찬란한 활엽수림과 단풍 낙엽 숲길, 채석강과 적벽강의 포근한 해안길과 격포 어항의 푸짐한 먹자골목 풍물, 모항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낙조,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과 선운사 도솔천 꽃길, 그리고 이 참에 처음으로 가보고자 하는 피톤치드의 자연치유 침엽수림 산책로와 산촌(山村)의 추수동장(秋收冬藏), 그 가을걷이와 겨울갈무리 풍경을 색다르게 인상(印象)하여 인화해보고 싶다.
교장선생님이 준비한 1박2일의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1월 28일(토요일)
07:30 서울에서 출발 (낮시간이 짧아진 관계로 출발시간을 30분 당깁니다. 7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유진여행사 경기76아 9111호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있습니다. )
10:30-11:00 부안 도착 매창공원 산책(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
배나무 꽃비(梨花雨) 흩날릴 적이라면 5월 초순이고 추풍낙엽의 시즌이라면 10월 하순쯤이겠는데, 이러한 5개월 가량의 시간 흘러감에 대한 식물 비유의 묘사가 단연 절창이다. 그리고 기생 매창이 살고 있는 부안과 유희경(劉希慶)이 올라가버린 서울 사이의 천리 공간을 외로운 꿈 오락가락 왕래하는 마음속의 헤아림으로 측량하는 묘사가 실로 애틋하다.
부안 기생 매창의 시문과 거문고와 사랑의 사연은 역대 부안 주민들에게 친근한 자랑거리가 되어 '매창이뜸'이라는 지명을 갖게 하였을 뿐 아니라 전례가 없는 매창공원을 조성해놓고 있다. 시인 신석정은 '송도3절'에 빗대어 매창과 유희경 그리고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3절>이라 칭하기도 했는데, 송도(개성)에 황진이공원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부안의 풍류가 더욱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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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특집: 허균 인물기행 ① 부안의 허균 자취>
허균(許筠, 1569년 음력 11월 3일~1618년 음력 8월 24일)은 부안 기생 매창을 두 번 만나고 있었다. 1601년 7월 23일의 첫 만남(허균 32세, 매창 28세) 때에는 하루 종일 술을 나누어 마시며 시를 읊고 서로 화답하였는데 섹스 관계는 갖지 않았다고 '조관기행'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매창은 시에 밝고 글을 알고 노래와 거문고를 잘 한다. 그러나 절개가 굳어서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고 농을 할 정도로 서로 터놓고 얘기도 하지만 정의가 막역하되 지나치지는 아니하였으므로 오래도록 우정이 가시지 아니하였다."
두 번째 만남은 1608년 8월 그가 공주목사에서 파직 당했을 적이다. 벼슬살이도 싫고 서울생활마저 싫어진 그는 친우의 주선으로 부안 우반동 선계폭포 골짜기에 있는 정사암(靜思庵)으로 들어와 그해 12월까지 머물렀다. 매창과 재회하는 것은 물론 서로 참선(參禪)을 익히기도 하였는데 스님들이 그들의 동거를 반기기도 하였다 했다. 허균은 정3품의 승문원 판교로 복직되어 상경한 후에도 매창에게 보내는 편지를 1609년에 두 번씩이나 썼다. 1610년에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에 애절하기 그지없는 추모시를 지었는데 매창공원에 그 시비가 세워져 있다.
허균의 한문소설 <남궁선생전>은 적상산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 신선도의 변혁사상을 펼쳐 보이는 작품으로 정사암에서 그는 이 소설을 썼다. 내변산 일대는 한국 신선도와 관련이 깊은 고장인데 허균은 봉건사회 변혁운동을 펴고자 하는 도사, 도술가들과 깊숙이 교제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우반동은 오늘의 행정지명으로는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인데, 허균이 머물렀던 1608년으로부터 45년 후가 되는 1653년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년 음력 1월 21일 ~ 1673년 음력 3월 19일)이 이주하여 은거하면서 <반계수록>을 저술한 '역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허균은 후일에도 우반동 정사암을 찾은 적이 있었고 혹자는 <홍길동전>을 이곳에서 지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에 이어 부안군은 '마실길'을 조성하고 있는 중인데 우반동 일대를 특별 문화경관지역으로 가꾸려는 계획은 갖고 있다 한다.
(소특집 <허균 인물기행②>는 강릉시 사천면 사천해수욕장의 교문암(蛟門岩)으로 이어지는데, 12월의 국토학교 제9강으로 현지답사를 합니다.)
11:30-12:30 점심식사 (부안읍 낭주식당의 부안식 백반)
13:00-14:00 능가산 개암사, 울금바위, 원효방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부안(扶安)은 안정, 평안을 떠받치고 있는(扶) 고을임에 틀림없는데 징게 맹게(김제 만경) 평야를 뒷짐 지고 있는데다가 내륙 쪽의 들판도 널찍하고 해변 쪽으로는 고군산열도와 칠산바다를 끼어 해산물이 풍성하니 먹고사는 걱정은 그만큼 덜어내게 되는 듯싶기도 하다.
외변산의 바다로 나가기 전에 내변산의 능가산부터 찾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변산(邊山)이 아니라 원래는 3한 중에서도 변한의 본거지를 이루던 곳이어서 변산(卞山)이라 표기해왔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는데, 능가산이 곧 그 변산의 중심이었다 한다.
다음으로 백제부흥군의 최후 격전장이었던 주류성과 백강이 바로 능가산과 동진강이라는 논설인데, 이는 부안의 향토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사실(史實)임을 내세워 고증을 하고 여러 자료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 개암사와 울금바위. ⓒ김규봉 |
이와 함께 원효와 사복(蛇福)이 은거했다는 울금바위의 '원효방' 담론이 있는데, 이 바위에는 3개의 자연동굴이 있다. 원효방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기행문에 언급되고 있는데 일연의 <삼국유사> 속의 원효 기록보다 앞서서 작성된 것이므로 신빙성이 있다.
개암산이 주류성이었다면 원효는 백제부흥운동마저 좌절되어 혼란에 빠진 이 고장의 중생 제도를 위해 들어왔을 것이다. 원효방의 칩거만 아니라 야단(野壇)에 법석(法席)을 차려 요란스럽게 민중생존권과 자주권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을 것이다.
개암사(開巖寺)는 바위를 열고 있는 사원이란 의미가 되는데, 울금바위의 3개의 동굴 중에서 원효방이 그렇게 '개암'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숨어 있는 암문(巖門)을 열면 지복의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은 소백산과 지리상 등지에도 있다.
14:30-15:30 봉래9곡 단풍길 트레킹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충남 태안의 천수만 일대는 '해안국립공원'이고 다도해와 한려수도는 '해상국립공원'인데 대하여 부안 일대가 '변산반도 국립공원'이란 명칭인 것은 내륙-산간-해안의 3위1체 경관을 모두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안읍내에서 내변산 산간지대를 관통하여 외변산 해안지대로 연결되는 736번 도로는 기암괴석의 수림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숲길'로 거듭 선정되기도 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신선대 신선샘에서 발원한 계류가 직소폭포를 지나 해창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가리켜 '봉래9곡'이라 부른다. 제1곡 대소, 제2곡 직소폭포, 제3곡 분옥담, 제4곡 선녀탕, 제5곡 봉래곡으로 이어지는데, 이번 기행에서는 제9곡의 산행 들머리에서 실상사 터까지 단풍길을 트레킹한다.
내변산의 봉래산 너머로는 허균과 유형원이 사적이 남아있는 외변산의 우반동 골짜기가 되는데, 허균은 실제로도 정사암 일대를 봉래산이라 기록하는 편지를 매창에게 보내기도 했다.
16:00-17:30 격포해수욕장 채석강, 적벽강, 수성당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이태백이 노닐었다는 채석강, 소동파가 읊은 음풍명월의 경승지 적벽강을 빌려와 지명으로 채택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강이 아니라 기기묘묘한 침식 절벽 해안의 순례 코스인데 격포항과 격포해수욕장 사이에 마련되고 있다. 간만의 차이 때문에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내왕이 어렵게 되기도 한다. 부안군은 '마실길' 코스를 격포항 일대에 새롭게 조영중이기도 하다.
11월 28일(토)의 변산반도 물때표 : 음력 10월 12일, 3물 // 만조 11:51/ 간조 18:18 // 일출 07.23/ 일몰 17.23 (출처 : 국립해양조사원)
바다 전망대 구실도 하는 당산의 언덕 위에 세워진 수성당(水城堂)은 칠산(七山)바다를 수호하는 할머니 해신(海神)을 섬긴다. 이 여신은 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를 하여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할머니는 딸 여덟을 낳아 각도에 한 명씩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산다 하는데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풍어제로 당제를 드려왔다.
대단히 중요한 서해 민속이고 세시풍속인데 당 안에 있던 무신도(巫神圖)가 불타 없어진 것은 과연 어떤 자의 소행이었을 것일까. 세시풍속을 전혀 몰라서 철(계절)을 모르는 자, 철이 없게 된 자의 철부지 짓거리였으렷다.
18:00 저녁식사 및 숙박 (모항 썬리치랜드리조트, 다인실, 바베큐&생선매운탕)
11월 29일(일요일)
06:30 외변산 호랑가시나무숲 산보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모항해수욕장 전망대)
시인 안도현은 '나무 생각'이라는 시에서 외변산 호랑가시나무에게 엉뚱한 부탁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복숭아나무가 복사꽃을 흩뿌리며 물 위에 점점이 우표를 붙이는 날은/ 나도 양면괘지에다 긴 편지를 쓰고 싶다// (중략)//
나 외로운 날은 외변산 호랑가시나무 숲을 들어/ 호랑가시나무한테 내 등 좀 긁어달라고, 엎드려 상처받고 싶다"
호랑가시나무는 늦가을에 빨간 열매를 맺어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애호된다고도 한다. 잎사귀는 6각형으로 가운데 모서리가 튀어나와 있는데 그것이 굳어져서 가시가 된다. 이 가시나무의 가시는 굵으면서도 뾰족하여 '호랑이 등긁게'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이참에 그 호랑가시를 뜯어 실제로도 내 등을 좀 긁어보아야 하겠다.
07:00-08:00 아침식사 (바지락북어해장국)
08:30-09:30 내소사 전나무 숲길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겨울 내소사로 / 최하림
"하늬바람이 내소사 길 나무들을 날립니다
아직도 햇빛은 찬란하고 수은주가 내려가는지
12월의 시간들은 조금씩 조금씩 마르고
하늘 가운데로 소리들은 투명하게 솟아올라가
우리가 우리 그림자를 물속으로 들여다보듯이
지상에 어린 내소사 길을 내려다봅니다.
나는 천천히 천천히 걷습니다 언 돌이 발부리에 채입니다.
얼음의 여울이 미광처럼 흐르고, 여전히 내소사 길은 덜덜
떨면서 산 밑으로 뻗어나가고, 점점 날은 어두워가고
바람이 쇠북에 걸려 오래도록 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내소사 바로보기->http://www.naesosa.org/
10:00-10:20 반계 유형원 유적지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유형원이 실학사상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백과전서파 유형의 사회변혁 이론가였다면 허균은 도교변혁 문예운동가로서 우반동과 연고를 맺고 있으니 보안면 우동리 일대는 새롭게 '사상의 고향'으로서 조명 받을 까닭이 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변법(變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시무를 제대로 알았던 이는 율곡 이이와 반계 유형원이 있을 뿐이라 하였고, 박지원은 <허생전>에서 나라의 위기를 구할만한 인물로 유형원이 있었는데 자기의 경륜을 펴보기는커녕 한적한 바닷가에서 노닐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더구나 그 소설의 주인공 허생은 변산의 도적과 함께 '공도'에 유토피아를 세우고 있었고, 그보다 앞선 허균의 소설 주인공 홍길동은 율도에 이상국을 건설하고 있었으니 이는 내변산과 외변산의 국토지리학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유형원의 반계서당은 제대로 보존 보호되지 못하고 있고, 허균이 머물렀던 정사암은 현재 남아있지 아니하다. 산천은 유구하건만 인걸은 간 데 없는 격인가, 아니면 레저 관광 유치는 요란한데 문화역사기행은 뒷전이기만 한 탓일까.
10:40-11:10 곰소염전, 젓갈기행
11:10-11:50 점심식사 (곰소 우리 장모집의 젓갈백반)
곰소는 원래 범섬, 곰섬, 까치섬 등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던 섬 지방이었는데 줄포가 갯벌의 퇴적으로 항구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자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제방을 쌓고 바다를 매립하여 곰소 항구를 조성, 내륙의 물자 반출과 칠산 어장의 어업 전진기지로 삼았다. 그러나 곰소만의 수심 또한 낮아지고 어족의 고갈로 어항의 역할도 줄어들면서 항구의 기능은 격포 항에게 넘겨주어 위도 왕래의 정기여객선마저 이전되었다.
곰소의 기층문화는 엄청나게 달라져갔지만 토착의 풍토(어항 내지 폐항 분위기의 해변경관과 염전 풍경), 토박이의 문화(젓갈시장과 향토음식)는 새로운 전통을 창출해냈다. 특히 젓갈단지에서 생산해내는 젓갈은 특산품의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
서해 청정해역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과 간수를 제거한 곰소염전 특산 천일염의 결합, 여기에 내변산의 골바람과 외변산의 해풍 속에서 자연 숙성시키는 전통 재래식 염장법으로 40여 종의 젓갈을 직접 생산하여 판매한다.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갈치액젓, 갈치속 액젓 등의 액젓류와 명란, 창란, 오징어젓, 꼴뚜기젓, 바지락젓, 어리굴젓, 아가미젓, 갈치속젓 등 다양한 양념젓갈 등을 갖추어놓고 있는데 그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것은 역시 멸치젓이다.
12:30-13:30 고창 선운사 꽃길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그러나 농업자본사회를 경과하여 산업기술자본사회로 진입한지 이미 오래되어 산천만 아니라 선운사의 꽃나무들도 변한다. 아스팔트 대로를 통해 찾아 들어가는 선운사에 동백 숲은 여전할지라도 그것은 육자배기 동백은 전혀 아니고 송창식의 유행가 동백의 태깔도 또한 벗겨내고 있다. 과연 어떠한 동백인지 퀴즈 문제로 제출해보고자 하니 맞추어 볼 것.
▲ 선운사 도솔천. ⓒ프로라 |
14:00-16:00 장성 축령산 침엽수길 트레킹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
산림욕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축령산의 숲길을 전남 장성군이 트레킹 코스로 개발 중이다. '스토리가 있는 숲속 테마길'을 조성하기 위해서이다. 옛길은 서삼면 추암리의 골재에서 배치마을까지 1.2㎞의 산길과 임종국 기념비부터 금곡영화마을까지 7.5km의 숲길 등 2개 코스다.
숲속 테마길은 폭 2~3m 안팎의 오솔길로 조성되고, 노변에는 자연생태, 길의 역사, 문화 등 스토리가 있는 안내판들이 설치된다. 편백나무(히노끼), 측백나무(스기)의 숲을 따라 피톤치드의 향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라고 장성군은 밝히고 있다.
축령산 휴양림 바로보기 - ↓
http://tour.jangseong.go.kr/2006/tourguide/tourguide_4_01_2.html?mode=view&code=J8&scode=47
16:00 서울로 출발
국토학교 참가비는 답사코스별 연동제로 하며 11월은 15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비와 뒤풀이, 입장료, 여행보험료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10-2471-7410 또는 050-5609-5609 이메일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 ⓒ프레시안 |
참고로, 지난 4월 개교한 국토학교는 다음과 같이 국토강의를 진행해왔습니다.
제1강 (4월) :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
제2강 (5월) : 영남 전통마을 순례 (답사 키워드 - 산은 책이다)
제3강 (6월) : 호남의 누정문화 원림문화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
제4강 (7월) : 북강원의 요산요수 (동해안 풍류길 되살린다)
제5강 (8월) :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
제6강 (9월) : 금강문화권의 초대장 (옛이야기 재잘대는 실개천 휘돌아)
제7강 (10월): 낙동강 따라...가야 달빛기행 (우리 땅의 고고학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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