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EBS를 위한 일에는 발벗고 앞장 서겠다. 노사가 아닌 가족의 입장에서 받아들여 달라"(곽덕훈 신임 EBS 사장)
19일 서울 도곡동 EBS 사옥 1층 'EBS 스페이스' 홀에서는 곽덕훈 EBS 신임사장에 대한 사원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된 공청회는 오후 2시 30분이 돼서야 끝났다.
곽 사장은 업무 첫날인 지난 15일에는 "선임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며 반발하는 사원들의 저지로 출근에 실패했으나 16일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는 EBS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날 공청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곽 사장은 이날 공청회 직전 사장 취임식을 마쳤다.
EBS 노조는 이날 공청회 내용을 바탕으로 대의원대회 투표를 거쳐 향후 사장 반대 투쟁의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날 공청회를 두고도 EBS 노조는 곽덕훈 사장을 '임명자'라고 부르며 '검증 공청회'로 규정한 반면 EBS 사측은 '직원과의 대화'로 규정해 미묘한 시각 차이를 보였다.
곽 사장은 이날 공청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사장 면접 때 발표했던 '디지털 패러다임 시대! EBS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라는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가져와 사원들 앞에서 다시 설명하기도 했다. '2차 사장 공모가 밀실에서 진행됐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 차원인 셈.
"심사위원이 후보 되나"…"나는 면접에서 질문만 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곽 사장의 사장 임명 과정과 도덕성 논란이었다. 곽 사장은 EBS 사장 1차 공모 당시 외부 면접위원이었으나 2차 공모에서 사장 후보로 응모해 사장으로 선임되어 언론계 안팎의 비판을 샀다.
정영홍 노조 위원장은 "곽덕훈 임명자는 심사위원이 최종 사장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EBS가 흔쾌히 (사장으로) 받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장이 밀실 면접과정에서 어떤 문답을 주고 받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구오 EBS노조 전 수석부위원장도 "이번 검증 공청회를 갖게된 가장 큰 이유는 임명자가 EBS 사장으로 오면서 적절치 않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1차 면접시 면접관으로 참여하고 2차 공모에 참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라고 따졌다.
이에 대해 곽 사장은 "EBS 사장 1차 공모 면접관으로 갈 때는 EBS와 나의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고 갔다"면서 "면접에서도 나는 면접에서 질문만 했고 평가는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5명이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면접위원 중 한 명이 'EBS 한번 멋지게 만들어볼 생각 없느냐'고 해서 처음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을 지내다 임기 중 EBS 사장에 응모하고 사장에 합격하고 나서야 원장직을 그만둔 것도 '몰염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곽 사장은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죄송하게 생각하나 한국교육기술정보원에는 소상히 설명하고 충분히 납득시켰다"면서 "EBS 사장으로 지내면서는 임기 도중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대한 EBS 독립성·자율성 확보할 것"…구체적 '액션'은 'No'
그러나 곽덕훈 사장은 'EBS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라는 EBS 조합원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장으로서 최대한으로 끌고 나가겠다"면서도 방통위에서 독립된 사장-부사장 선임 문제 등에는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날 EBS 노조는 EBS의 근거 규정인 '교육방송공사법'을 근거로 △EBS의 독립성과 전문성 보전 △방송 편성 및 자율성 보전 △수신료 배분 방식 및 배분율 시정 등의 문제에 노사가 공동으로 대응하고 이를 위한 노사 실무 소위를 구성하는 내용을 명시한 '선언문' 낭독을 요구했으나, 곽 사장은 "여기서 선언문을 읽는 것은 '전략'을 다 노출시키는 것으로 적절치 않다"고 거부했다.
이에 조합원들은 "이것은 '전략'이 아니라 가장 원칙적인 문제이고 시청자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문제"라며 "임명자가 이를 어물쩡 넘기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반발했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대신 곽 사장은 "EBS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통해 독립성과 예산 확보 등 전략을 세워나가겠다"고 넘겼다.
또 그는 EBS의 독립성 전문성 제고를 위해 'EBS 사장과 감사까지 방송통통신위원회에서 임명하는 구조는 혁파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임명된 사람으로서 옳다 그르다 단언하는 것은 임명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어디서 왔느냐 보다 EBS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에둘렀다.
EBS 조합원들은 "최근 최시중 위원장과 한나라당이 EBS와 KBS를 묶는 'KBS 그룹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라고 따졌으나 곽 사장은 "반대 입장에 서는게 이로운지 아닌지 전략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비켜갔다.
▲ EBS 곽덕훈 신임 사장이 19일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 |
"방통위 출신이 부사장, 감사 다 차지하게 할 것인가"
이어 EBS 조합원들은 '향후 부사장을 어떤 인물로 선임할 것이냐'도 초미의 관심사로 질문을 던졌다. 부사장 선임권한은 EBS 사장에게 있지만 그간 EBS 부사장직은 줄곧 방송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출신이 차지해 왔다.
현재는 EBS 감사로 황부군 전 방송통신위원회 정책국장이 임명되어 있는 상태라 만약 부사장도 '방통위 출신'이 된다면 방통위 출신이 EBS 요직을 모두 차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생긴다. 이미 EBS 안팎에는 이명구 전 방통위 기획조정실장 내정설이 오르내리는 상황.
김광호 EBS 노조 정책실장은 "만약 방통위 출신이 부사장으로 임명된다면 곽덕훈 사장의 임명에 대한 거래 차원, 즉 방통위 사람을 부사장에 앉히기 위해 곽덕훈 사장을 내정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이라며 "내부의 목표를 잘 알고 성취할 수 있는 EBS 출신 부사장을 임명할 생각이 있는가"라고 따졌다.
그러나 곽 사장은 '사장 거래설'에 대해서는 "전혀 근거가 없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그런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면서 "EBS가 향후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가에 가장 적절한 사람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 EBS 출신도 부사장 후보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BS 사장이 줄이겠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나라냐"
한편 곽 사장은 EBS 사장 1차 공모 당시 제기됐던 'EBS는 사교육비 축소를 위한 주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다큐멘터리 등 교양프로그램 축소' 등의 주장에는 "EBS 사장이 줄이겠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줄어지는 대한민국이냐. 그렇지 않다"면서 "국민의 지적 갈망을 해결하면서 공교육을 활성화 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편성에는 기본적으로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나는 '3년 계약직'에 불과하고 여러분은 정규직인데 '3년 계약직'이 다 흐트러놓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편성 부서장과 잘 이야기하고 의견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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