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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의 '오랑캐꽃']<141>

구리와 알미늄으로 케이블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일감이 많고 늘 바빠서 주야 맞교대로 근무한다. 첫 조는 주간에 12시간을 일하고 두 번째 조는 야간에 12시간을 일하므로 공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마치 물레방아처럼!

이곳엔 한국 노동자도 30명 이상이고 외국인 노동자만도 12명이다. 이런 공장은 외국인들이 무척 좋아한다. 주야 맞교대는 월급이 많으니까. 외국인들은 한국에 쉬러 온 게 아니라 돈을 벌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가다 이런 공장을 싫어하는 외국인도 있다. 피곤해서? 아니다. 이런 공장을 싫어하는 외국인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는 필리핀인으로 이름이 아도(가명)다. 독실한 개신교인이다. 필리핀 사람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인 줄 알지만 개신교의 한 지파인 오순절교회 신자도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의 순복음교회도 말하자면 오순절교회인데, 세계적으로 이 교회의 신자들은 아주 열렬하게 믿는 축에 속한다. 아도 역시 신앙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질 생각이 없다.

최근 들어 아도에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회사가 일요일에도 일해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아도는 밥은 굶어도 예배는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 그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셈이다.

그는 나를 찾아와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 사람은 일요일 쉬지만 외국 사람은 일해야 되요. 반장님이 나와! 나와! 하면 안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일주일에 84시간씩 일한다면 믿으시겠어요? 저는 몸이 튼튼해서 피곤한 건 괜찮아요. 하지만 교회 못가는 건 참을 수 없어요."

그가 원하는 것은 우리 센터에서 회사로 공문(公文)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아도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직장을 옮겨 달라!"는 내용으로.
나는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공문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기에.
대신에 근로기준법 53조 <연장근로의 제한>을 복사해서 사장님에게 갖다 드리라고 했다. 참고로 53조 1항의 내용은 이렇다.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요는 시간외 근무를 1주일에 12시간 이상 하면 위법이라는 뜻이다.

직원들 간에는 이 복사지 한 장으로 직장 이동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첫째, *시간외 근무를 44시간이나 시킨 것은 위법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는 이 종이 한 장으로 충분하며, 둘째 그 회사는 외국인이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므로 사장님은 얼마든지 노동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장님은 그를 즉각 퇴사 처리해주었다.
아도가 복사지를 내밀고 물레방아를 빠져나오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시간외 근무 44시간 : 그 회사는 일주일에 7일 곱하기 12시간씩 84시간이나 일을 시켰으므로 정상근무 40시간을 빼면 시간외 근무를 44시간이나 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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