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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예측하기 쉬운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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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예측하기 쉬운 북한

[한반도 브리핑] 한국과 미국은 北의 어떤 대응을 선택할 것인가

성동격서. 동쪽으로 소리치고 서쪽을 치기다. 북은 동해상에 단거리 미사일 5대를 시험발사해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서해를 쳤다.

서해에 미군 조지워싱턴 항공모함 함단이 진입하기 직전이다. 그것도 한국 해군 2함대와 합동군사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13일부터 16일까지 북한특수부대의 해안 침투를 가상해서 해상과 공중에서 연합작전을 펼칠 계획이라도 보도된 바 있다.

북은 이미 10일부터 20일까지 동해와 서해에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선박 항해금지 구역을 선포했다. 12일 미사일 발사는 서해에서 벌어질 연합작전 개시 직전에 발사한 경고사격이다.

단거리 미사일, 그것도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저고도 비행을 하고, 정확도가 상당하다면 항공모함과 같은 거대한 몸집에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북은 서해안에서도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다. 성서격서, 서쪽으로 소리치고 서쪽을 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력에는 무력으로 맞받아친다는 북한식 대응이다.

*

이에 앞서 10월 4일 북한 정부와 중국 정부는 여러 건의 협정 및 합의 문건에 조인했다. 경제기술 협조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고 경제 원조에 관한 교환문서들, 경제분야 합의, 소프트웨어 산업분야에서의 교류 및 협조에 관한 양해서 등이 조인되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선두에 나서서 경제교류와 원조를 본격화하겠다는 신호탄을 올린 것이다.

하여 봉쇄를 통한 비핵화 압박, 내지는 봉쇄를 통한 붕괴를 통한 비핵화 전략은 실질적으로 붕괴했다.

중국은 이미 7월 초, 그달 말로 예정되었던 미ㆍ중ㆍ일 3자협의에 참가하지 않겠다며 "북한과 관련한 미묘한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어서 9월 중순 중국은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을 북에 파견해 대화로의 선회를 선언했다.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으로 중국의 대북 경제교류가 본격화됐다.

북을 에워싼 봉쇄망에 정확히 압록강 길이의 구멍이 뚫렸다. 구멍만 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신압록강대교'를 건설, 구멍에 탄탄대로를 다지기로까지 했다.

봉쇄 전략을 추진하던 미국과 한국의 관리들이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북은 내부적으로는 '150일 전투'에 이어 '100일 전투'를 벌이며 경제 재건에 나서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본격화했다.

경제 제재에는 경제력으로 맞받아친다는 것이다.

*

한국 정부는 한미군사훈련이 시작되기 직전 미묘한 시점인 12일 두 건의 대북 실무회담을 제의했다.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에게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이산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를 협의할 접촉을 16일 금강산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고,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박송남 북한 국토환경보호상(장관)에게 전통문을 발송, "14일 개성 남북경협협의사무소에서 회담하자"고 밝혔다.

과거 같으면 한미군사훈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모든 대화와 접촉을 중단했을 북이 이번에는 실무회담에 동의했다. 원자바오 총리를 통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일본ㆍ한국과도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는 대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원자바오 총리와의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했다. 원 총리 방북의 최대 성과이다. 북의 최고지도자가 북의 "영원한 주석"을 운위하며 비핵화 원칙을 재천명한 것은 북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비핵화 약속이기 때문이다.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운위되던 표현이었지만, 지난 5월 2차 핵실험 이후에는 북의 공식발언에서 사라졌던 표현이다. 6월 13일만 해도 외무성은 "핵 포기란 절대로, 철두철미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유례없이 강경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던 북이 9월 30일이면 외무성 대변인의 답변이라는 가장 낮은 차원의 대외발언 형식으로나마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이 이미 오래전에 제시한 것"이라며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단초는 대화였다.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방북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다. 김정일 위원장이 18일 면담에서 다이 위원에게 "북한은 비핵화의 목표를 계속 견지할 것"이라고 언명한 것이 그 변화의 단초였다. 대화로 시작된 변화의 싹이 10월 "김일성 주석의 유훈"으로까지 발전했다.

대화는 대화를 낳은 것이다.

*

경제 봉쇄는 150일 전투 및 북중 교류로 힘을 잃었다. 군사적 압박은 군사 대응을 초래하고 있다. 대화는 대화를 낳고 있다.

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예측이 너무 쉬운 게 문제다.

이제 한국과 미국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 북의 어떤 대응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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