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를 지나다가 그곳 관변 외국인센터에서 내건 플래카드를 보고 기가 막혔다. 주요 내용은 이러했다.
한국어퀴즈대회
"00마을에서 골든벨을!"
1등 50만원, 2등 30만원, 3등 20만원, 4등 10만원 외 각종 경품 증정
왜 기가 막혔느냐 하면 지나치게 상금이 많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최저임금을 받으니까 50만원이면 반 달치 월급보다도 많다. 퀴즈대회에 잠깐 나가서 반달 치 월급 이상을 벌 수 있는데 어떤 외국인이 안 가겠는가? 다 가지! 아마도 그 퀴즈대회에는 인근에 있는 외국인이 구름처럼 몰릴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상금을 걸고 외국인을 모으는 걸까?
외국인 센터에 외국인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붕어가 없는 붕어빵도 아니고, 외국인 센터에 외국인이 없다니? 도대체 이게 사실일까?
기가 막히지만 사실이다. 외국인이 없다. 어느 정도로 없느냐 하면 찾아오는 외국인이 없어 절간처럼 적막할 정도다.
그럼 왜 이다지도 외국인이 오지 않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외국인 센터에서 외국인이 필요한 일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저마다 해결해야 할 시급한 애로사항을 갖고 있다. 월급을 못 받았다거나, 퇴직금을 떼였다거나, 폭행을 당했다거나,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다거나, 직장을 옮기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절차를 모른다거나, 과도한 노동으로 허리가 아프다거나, 항상 산재를 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거나, 협박을 당하고 있다거나 등등 그들은 n가지의 고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부 센터에서는 이런 고충을 처리해주지 않는다. 왜 안 해줄까? 이런 고충을 처리하려면 외국인 노동자를 대신해서 그들을 착취하고 폭행하고 유린한 악덕 기업주 내지 대리인들과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이 벅차고 무섭고 귀찮기 때문이다. 우린 평화가 좋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기가 막힌 얘기다.
그럼 싸우지 않는 그런 외국인 센터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
문화 행사를 주로 한다. 한글 교육, 컴퓨터 교육, 한국 민속 배우기, 장끼자랑, 맛자랑 멋자랑, 배드민턴 대회 등등. 일하기 편하고 부담 없고 남 보매 좋으니까. 또 이런 행사는 정부에서 돈 타내기도 좋다. 사진빨이 좋으니까.
좋다. 자기 좋은 것만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하지만 외국인들이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데 고민이 있다. 왜 외국인들은 행사를 좋아하지 않을까? 자신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빼앗기니까. 외국인들에게 뭐가 가장 싫으냐고 물어보라. 백이면 백, 다 "행사!"라고 대답하지.
외국인이 행사에 안 오는 게 뭐 대수냐? 단 한 사람의 참된 외국인을 위해서라도 행사를 열면 될 거 아니냐?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 현대는 실적주의인데, *실적이 없으면 지원금도 안 나오니까.
행사에 외국인이 오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미끼로 상금을 건다. 예전에는 상품만 걸거나 상금을 조금만 걸어도 외국인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 온다. 왜냐하면 다른 센터에서는 더 거니까. 이제 외국인을 모으기 위해서는 파격적으로 많은 돈을 걸어야 한다. 1등 50만원은 이래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금을 많이 걸면 부작용도 심해질 게 뻔하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틀림없이 그 센터로 외국인이 몰릴 것이다. 하지만 다음 주에는 어떻게 하려고? 매주 1등 50만원씩 걸어? 그 정도로 돈이 많다면 좋다. 하지만 만일 실탄이 부족해서 돈을 그 이하로 걸면 그래도 외국인이 올까? 절대로 안 온다!
돈으로 외국인을 모으는 것은 *외국인을 타락시킬 뿐 아니라 자신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또 돈으로 외국인을 모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돈만큼만 모을 수 있으니까,
외국인을 오게 하려면 외국인이 필요한 일을 해주면 된다. 떼인 돈을 받아주고, 폭행당하거나 성폭행당한 사람을 위하여 가해자를 고발하고, 직장을 옮겨주고,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고,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사람을 회복시켜주어 봐라. 외국인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아무리 먼 데서라도 전국적으로 구름같이 몰려온다. 그들의 땀 냄새가 센터에 가득 차서 숨이 막힐 정도로 떼 지어 온다!
요컨대 그들이 필요한 일을 해주면 되는데 그러진 않고, 자신에게 편리한 일만 하면서 외국인을 모으려니까 할 수 없이 돈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승부를 걸면 실패하기 쉽다.
세계 제일이었던 미국 GM 자동차가 왜 망했나를 생각해보라.
연비가 낮고 고장도 잦아 품질이 엉망인데, 품질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5년간 무이자로 대출해주면서 그 돈으로 차를 사라고 했다. 말하자면 돈으로 승부를 건 것인데 돈이 떨어져 망한 것이다.
GM 같은 외국인센터가 되어선 안될 것이다.
도요다가 안되면 최소한 현대 기아차라도 되어야지.
*실적 : 실적은 전부 숫자로 되어 있다. 몇 명이 참석했느냐가 중요한 실적이다.
*외국인을 타락시켜 : 그 퀴즈대회에 나가 1등상과 2등상을 탄 것은 결국 우리 센터 한글학교의 학생들이다. 두 사람은 각각 50만원과 30만원을 받아서 힘든 노동보다 훨씬 손쉽게 수십 배의 수입을 올렸다. 나는 이 노동자들이 대회마다 찾아다니며 상금을 노리는 전문 퀴즈꾼이 될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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