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국 총리대신에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국 총리대신에게

[김상수 칼럼] "어떻게, 무엇으로, 역사를 직시할 것인가"

안녕하십니까? 93대 일본국 총리로 취임하시고 첫 번째 공식 해외 방문국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하심에 멀리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축하와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작년 2008년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여기 <프레시안>에 칼럼으로 '일본 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모두 4편의 글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1.'망언(妄言)' 일삼는 아소 다로(麻生太郞)가 일본 차기 총리?/ 2.아소 다로의 '창씨개명' 망언과 쓰기야마 아끼히로(月山明博)/ 3.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과 MB, 누가 거짓말 하고 있나?/ 4.천황(天皇)도 왕따시키는 일본 극우(極右))

위 4편의 글에서 저의 일관된 문제제기는 '동북아시아 평화에 어떻게 일본이 실제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그리고 이웃국가인 한국, 그리고 중국과의 진정한 화해는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를 일본의 시민들과 같이 진지하게 모색하자는 내용이었으며, 다시 얘기하지만 일본이 극우적인 상황으로 내달리면 일본 자체도 위험하지만 한국도 아시아도 혼란에 직면하게 되니, 일본의 극우를 여하히 막고 일본이 보다 내용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확실하게 구현해 나가야하는 중요성은 꼭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으로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일자 칼럼에는 총리께서 일본의 야당이었던 민주당(民主黨)을 대표로 이끌면서 자민당(自民黨) 55년 체제를 끝내고 명실상부하게 민주주의 승리를 쟁취한 역사적인 날에 "일본의 선거혁명을 보는 눈"이란 제목의 칼럼으로, 일본도 이제 실질적인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한 그 전환의 기회가 왔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이는 반세기가 넘는 자민당 체제의 붕괴는 비단 정치세력의 교체 차원이 아니라, 지난 100년을 지배해온 일본의 지배세력과 민주주의 세력과의 힘겨운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며, 일본 사회가 경제규모에 맞는 실질적인 민주주의 실현을 과연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전환의 기회를 일본 스스로가 만들어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저는 그 칼럼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토야마 총리께서 주도했던 지난 선거운동에서 일본시민들의 '분노'와 행동(people power)을 견인(牽引)한 선거운동이 주효했음을 역설하면서 한국의 민주진영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금 총리께서는 취임하자마자 여러 가지 난제(難題)와 마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에 쓴 칼럼에서도 얘기했지만 '일본 기득권 세력의 개혁에 대한 반발, 우익세력들의 준동 등을 제압해 나가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위한 개혁을 하나하나 전개해 나가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리가 말하고 있는 ''우애'의 정신이란 바로 민주시민과의 강한 연대에 기초한 것이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의 대상이지 절망의 빌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저는 칼럼에서 말한바 있습니다.

지난 달 9월 24일 총리가 되고 나서 첫 국제회의인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중요한 발표를 총리께서는 하셨습니다. 그 날 있었던 유엔 연설에서 "일본은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서 기인한 역사적인 사정도 있어 아시아 지역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주저했다"면서 "새로운 일본은 역사를 넘어 아시아 각국의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틀 전에 있었던 22일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는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5% 삭감한다는 중장기목표를 '하토야마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14% 전후, 유럽연합(EU)의 13%를 훨씬 넘는 수치이며 이 구상을 기본으로 미국과 중국 등에 배출가스 삭감 동참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는 인류가 이제 어떻게 해야 만이 생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를 국가 간의 국제적인 실천정책으로 제안한 중요한 의제 제기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인인 저에게 민감하게 들려왔던 발언은 22일에 있었던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며 1995년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戦後50周年の終戦記念日にあたって)-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일본총리가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준 아시아 국가와 국민에게 통절한 반성과 함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사죄한 담화를 계승할 의지를 거듭 밝힌 점입니다.

익히 아시고 계시겠지만 무라야마 총리가 물러난 이후, 이 '무라야마 담화'는 거의 사문서화(死文書化)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4년이 흘러서야 이 '담화'가 다시 새롭게 하토야마 총리 귀하에 의해서 언급된 것입니다. 또한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는 말에서는 일본의 과거역사 책임에 대해 회피하거나 변명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저는 읽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직시"한다는 태도에는, 과거로 인해 결과 된 오늘의 '현실'도 정확하게 "직시"한다는 의미가 당연히 포함된 것이고, '오늘의 현실에서 과거를 정당하게 인식'한다는 태도의 표명이라고 저는 그 연설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묻습니다.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는 총리 귀하의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修辭)를 뛰어넘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어떤 내실 있는 내용의 그 무엇이 담겨져 있는 것인가를 나는 되묻게 됩니다. 14년 전의 무라야마 '담화'수준을 뛰어넘는, 보다 사실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일본의 행동'으로는 어떤 것들이 준비되어 있는가를 질문하게 되는 것이지요.

가령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중국의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에 대해 일본과 중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국제적이고 대대적인 진상조사가 이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먼저 나서서 진상조사를 제안하면서 그 참상의 과거에 대해서 진정으로 사죄를 할 의사가 있는지를 나는 질문합니다.

무엇보다도 40년 가까운 일본침략시대를 겪은 한국과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강제징용과 강제 수탈의 죄상에 대해서, 진실한 사죄와 적극적이고 타당하며 현실적인 배상을 제대로 다시 할 의지가 있는지를, 대한민국 국토와 근현대사 역사의 구석구석 요소마다 서려있는 식민통치의 죄상을 제대로 "직시"하면서 최소한 2007년 미국의회가 결의 권고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죄 결의안 채택 이후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를 나는 재차 질문합니다.

저는 거듭 말하지만, "과거"를 "직시"할 "용기"는 "현실"도 "직시"하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이치(理致)상으로도 그러합니다. 일본의 현실 모순을 혁파하기 위해서 55년간의 비정상적인 국가체재를 끝내게 하고 새롭게 집권한 총리께서는 논리적 사고와 비논리적 정서의 영역을 확연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그간의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妄言)들이 얼마나 아시아인들에게 수많은 상처와 모욕을 주었으며 일본국 스스로에게도 해(害)를 끼쳤는지는 일일이 부언(附言)하지 않더라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는 총리께서도 유엔에서 연설하신 내용에서 "일본은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서 기인한 역사적인 사정도 있어서..." 라고 말씀하신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더욱이 일본의 여러 정보기구나 언론보도 그리고 한국의 현지 정세보고를 통해서 한국의 오늘의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겠지만, 작금의 한국의 사회 정치적인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이며 반민주적인 실정이고 집권 세력이 대다수 한국국민들과 심각한 갈등 국면으로 계속 위기를 맞고 있는지는, 불과 수개월 만에 한국의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 김대중 두 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서 여실하게 증명되고 있음은 잘 아실 겁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한국인들은 국가 공동체의 일대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겁박(劫縛)하고 민주주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와 집회 시위의 자유를 파괴하면서 장차 일본 자민당식의 계속적인 권력 행사를 꿈꾸는 세력에 의해서 지금 한국인들은 그간에 피를 흘리고 쌓아온 역동적인 민주주의로의 사회적 변화는 지금 엄청난 시련에 빠져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식의 망언과 허언이 법적으로 한국의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서슴없이 나오는 무참한 지경이 오늘의 한국현실입니다.

너무나 자명한 얘기지만 "역사의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는 한국이나 중국의 특정 정파의 이해나 특정한 한 시기의 정치권력만을 상대하는 수준이나 그 정도의 차원에서 운위되는 말이 결코 아닐 겁니다. 총리께서 말씀하시는 "역사의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란 일본 국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내다보는 태도이며, 유엔 연설에서 "새로운 일본은 아시아 각국의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말처럼, 인류의 양심과 정의에 입각한 '새로운 일본의 전망'을 제안하고 있는 담대한 비전의 발언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독일 전 수상 빌리브란트(Willy Brandt), 이 한 장의 사진은

여기에 저는 총리께서도 너무나 잘 아시는 이 유명한 한 장의 사진을 새삼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사진은 나치독일이 가한 죄상을 폴란드 국민들에게 그리고 유럽의 국가와 국민들에게, 그리고 인류의 국가와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독일 전 수상 빌리 브란트의 유명한 사진입니다. 당시 폴란드의 정권이나 정치권력에 무릎을 꿇은 독일 수상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1970년 12월 7일, 당시 서독의 수상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깊은 회개와 사죄를 하는 뜻에서, 이 유명한 브란트의 행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간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아무도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이 광경은 침묵의 시간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오직 카메라의 셔터 소리만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 빌리 브란트. ⓒ김상수

이후 브란트는 "역사의 결단은 윤리적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의 모험입니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의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는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이자 인간의 역사적인 삶을 책임지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시대를 이끌고 나가는 정치인의 올바른 행동입니다.

브란트의 이 무릎을 꿇은 행동 이후, 전 세계인들은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를 지옥으로 몰아간 독일인에 대한 인상과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죄상을 참회하는 독일,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괴로워하는 유럽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독일 수상의 저 모습에서, 독일은 진실로 전쟁을 후회하며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이 메시지는 이후 구체적인 전쟁배상과 책임 있는 독일국가의 직접 행동과 정책으로 바로 연결되었습니다.

인류의 평화와 유럽의 안녕을 향한 독일인들의 의지가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촉발되었고 죄상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면서 구체적인 배상실천들은 유럽인들을 설득했으며 역사적인 2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의 강력한 견인력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다시 인용하지만 총리는 유엔에서 연설하기를 "새로운 일본은 역사를 넘어 아시아 각국의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희망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아시겠지만 "역사를 넘어"라는 표현은 두루 뭉실 과거사실을 이제는 덮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겠지요. 말처럼 "역사를 직시"하고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토대위에서 내일을 향하자는 의미이겠지요. 그저 몇 가지 상투적이고 정치적인 포우즈나 인상적인 말만으로는 영원히 그 희망은 "희망"만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액션이 요구됩니다. 하나하나 세세한 실천이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이제 제대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일본은 보다 자신 있게, 말씀처럼 "과거 역사를 직시할 용기"를 지니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배상과 사죄를 해야만 하겠지요.

▲ 베를린 시내 'Topographie des Terrors' 옥외 사진전ⓒ김상수
▲ 베를린 시내 'Topographie des Terrors' 옥외 사진전ⓒ김상수
▲ 베를린 시내 'Topographie des Terrors' 옥외 사진전 중ⓒ김상수
▲ 베를린 시내 'Topographie des Terrors' 옥외 사진전 중ⓒ김상수
▲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Berlin. ⓒ김상수
▲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Berlin. ⓒ김상수

총리께서는 과거에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적이 있으시겠지요?

총리가 되셨으니 조만간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방문하시겠고 독일의 통일 수도 베를린도 곧 방문하시게 되겠지요.

아시겠지만 베를린 시내 한 복판에는 유태인 학살 추념 위령 설치미술(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Berlin)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마치 도쿄 중심가 한 복판 사방 2킬로미터 크기에 당시 일본군국주의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들과 중국인, 숱한 외국인들을 위한 장대한 위령비가 서 있다고 상상하면 됩니다. 또 베를린 장벽을 남겨두고 있는 거리로 나가면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와 나치 친위 전투부대 SS가 자행했던 범죄와 테러에 관한 기록을 옥외에서 전시하는 "토포그라피 데스 테러스(Topographie des Terrors)"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장소가 바로 게슈타포와 악명높은 SS 친위대 사령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이렇듯이 독일이 유럽통일(EU)의 "가교"가 된 까닭에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꾸준하고 광범위하게 그리고 규모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과거잘못을 끊임없이 사죄하고 구체적으로 배상하고 그 죄상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 줄기차게 '행동'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말이 아닌 실재적인 행위로 말입니다. 마치 브란트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침묵 속에서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었듯이 말입니다.

파리에서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