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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이들 앞에서 '나라의 품격' 말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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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이들 앞에서 '나라의 품격' 말할 수 있나"

[강연] '싹둑싹둑 민주주의' 첫 강연, 정연주 전 KBS 사장

"내가 평생 살면서 가장 존경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안병무 박사는 1970년대 후반 긴급 조치 이후 학계, 언론계, 노동계 등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쫓겨나는 것을 두고 참 부끄러운 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치(恥)'는 귀(耳) 옆에 마음(心)이 가 있는 형상이다. 안 박사는 제자리에 있지 않고 엉뚱한 자리에 가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라고 해석했다.

저도 아직 KBS 사장 임기가 끝나지 않았으나 쫓겨났다. 앞으로 이 자리에 나와 강연할 진중권, 최문순. 김정헌도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쫓겨났다. 이것이 부끄러움이다. 이 정권의 부끄러움이고 우리 사회, 국가의 수치다. 이명박 정권에도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부끄러움을 안고 나라의 품격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 팬카페인 '내친구 문순c'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첫 번째 '싹둑싹둑 민주주의' 강연을 열었다. 일주일마다 열릴 연속강연의 첫 강연자는 정연주 전 KBS 사장. 이날 강연에는 70여 명의 시민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최문순 의원은 "지난해 KBS 앞에서 촛불을 들었던 여러분과 정연주 전 사장을 만나는 자리에 소개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고된 정연주 전 사장은 수십년간 언론 민주화에 몸바쳐오셨다. 지금의 모든 언론 운동은 동아투위의 재해석이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정 전 사장을 소개했다.

"미디어법이 인류 역사를 거스르는 '악법'인 까닭"

정연주 전 사장은 "인류 역사의 발전을 이해할 수 있는 몇가지 키워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폐쇄된 사회에서 개방된 사회로, 경직성·획일성에서 유연성·다양성으로, 타율에서 자율로, 집중에서 분산으로"가 인류 역사가 발전하며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것. 그는 언론의 역할도 여기서 찾았다.

그는 "언론의 역할은 바로 사회 안에서 다양성을 확대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면서 "물론 히틀러 치하 언론은 나치즘의 프로파간다 역할 밖에 안했지만 언론의 긍정적 역할은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넓히는 공간, 열린 자리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디어법이 악법인 가장 심각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 여론의 다양성을 죽인다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은 조·중·동 뿐 아니라 경제지 등 대부분의 신문들이 거의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득권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과 그렇지 않은 신문의 비율이 거의 9대 1이 되지 않았나. 이렇게 심각하게 편중된 사회에서 방송까지 더해지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것이다."

▲3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싹둑싹둑 민주주의' 강연에 나선 정연주 전 KBS 사장. ⓒ프레시안

"'정치권력'의 화려한 복귀, 후퇴한 민주주의"

문제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를 저해하고 여론의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시키는 주된 요인이 바로 정치 권력이라는 것. 정연주 전 사장은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고될 당시를 떠올렸다. 정연주 전 사장은 동아투위의 '막내'다.

"1970년 가을에 동아일보에 입사했는데 금방 현실을 깨달았다. 탄압받고 머리채 잡히고 똥물을 뒤집어쓰는 사람들, 있는 사실을 하나도 보도할 수 없었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사용 못해 '어느 재야인사'라거나 '동교동 인사'라고 쓰고 '물가 인상'이라고 쓰지 못해 '물가 현실화'라고 쓰던 시대였다.

우리 나이로 올해 63세인데 동아투위 모임에 가면 내가 여전히 막내다. 동아일보 입사한 다음해에 동료 하나가 부당하게 해직돼서 나와 내 동료가 연판장을 써서 당시 김상만 사장에게 전달을 했더니 '괘씸죄'가 적용돼 해직될 뻔했다. 간신히 해직은 면했지만 사장이 그 뒤로 기자를 안 뽑았다. 그래서 75년 쫓겨날 때까지 후배기자가 없어서 막내였다. 75년 3월 해직이 돼 동아투위를 구성했는데 동아투위가 기자를 뽑을 수 없으니 지금도 막내인 것이다."


6월 항쟁 이후 '정치 권력'은 '언론자유 침해' 요인으로 거의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다시 과거의 악명을 되찾았다. 정연주 전 사장은 한국언론재단에서 신문·방송, 인터넷 매체 기자 1040명을 대상으로 "누가 언론 자유를 가장 침해하는가"를 물은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이 여론조사에서 신문·방송 기자 28.6%, 인터넷 매체 기자 31.1%가 언론 자유 침해 요인으로 정부와 정치 권력을 뽑아 1위로 나왔다. 정 전 사장은 "지난 1년 8개월 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뒷걸음질 쳐버렸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 정연주 전 KBS 사장이 1936년 1월 1일 <조선일보>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제호 위에 일장기를 그렸던 조선일보는 이날 신년사에서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레시안

그는 정치 권력 외에도 '광고주'로 표현되는 자본 권력을 언론자유 침해 요인으로 꼽으면서 "미디어법으로 조·중·동 방송이 생기고 종합편성채널이 늘어나면 광고주의 파워는 커질 수밖에 없다. 광고 파이는 정해져 있으니 기존 방송사와 새로 진출한 방송사가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하지 않느냐"면서 "언론의 자유가 크게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또 하나 언론의 자유를 왜곡시키는 것은 언론 기관 종사자들이 스스로 이념적, 정치적인 이해집단·권력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조·중·동이 어떤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얼마나 무수한 노력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언론이 관찰자가 되고 감시견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경기장에 들어간 플레이어가 된 지 오래다. 이런 경우에 비판적 기능이나 공정·객관의 언론 자세를 지킬 수 있을까."

"지난 2년 간 사건들 잊지말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그는 "어떻게 보면 '이 새끼 기분 나쁘다'며 잡아가고 구속시키던 옛날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이 구질구질하지 않았다"고 말해 청중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글을 두고) 집사람이 요즘 '당신 너무 세게 쓰지마, 겁나. 또 잡혀갈까. 무슨일 당할까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슬프고 끔찍했다"고 했다.

"요즘 우리 주변에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들고 있다. 차라리 나는 KBS 사장이라며 재판 받을 때도 변호사들이 많이 도와주고, 사회적으로 관심도 받았지만 이름 없는 시민들, 촛불집회 갔다가 약식기소로 법정에 넘겨진 분들이 1000명이 넘는다. 이런 이들이 다 잊혀지고 '친서민, 중도 실용'이라는 이미지전에 묻히고 있다. 전교조 시국선언 탄압사건, 용산사건, 쌍용차 사건 모두 잊혀져서는 안된다"

그는 "우리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깨어있는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라며 미국의 '무브온'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여기 어디에도 추상적이거나 원론적, 관념적인 이야기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 추상, 관념으로 서로 상처를 내는 경우도 많은데 내 주변에서부터 폭을 넓혀 무엇인가 구체적,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까 말한대로 '9:1'의 한국의 언론 지형에서 진보 매체는 거의 죽기 직전이다. 이제 조중동 방송이 생기면 더 심각해질 것이다. <프레시안>,<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신문> 모두 큰 기업 광고 없어지거나 확 줄었다. 이들 매체가 보도하는 내용을 모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그 목소리마저도 없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그 매체들이 살아나도록 어떻게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 찾아야 한다. 작년 촛불집회에 나온 그 거대한 시민 속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엄청난 가능성과 불꽃을 보았는데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인터넷 매체가 유료 후원회원을 모으면 3000명, 5000명 밖에 안나온다. 이것은 아니지 않나. 이런 일부터 1인 미디어를 운영하고 '댓글'을 열심히 달아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까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 때다."


"신뢰도 떨어진 KBS, 떳떳하게 수신료 인상 할 수 있을까"

이날 강연에서 한 시민은 KBS 수신료 인상 문제에 대한 정연주 전 사장의 생각을 물었다. 현재 KBS는 '올해 안'이라는 시한까지 정해두고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최근 KBS의 보도 태도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수신료 거부 운동'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정연주 전 사장은 "수신료가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고 공영방송답게 되기 위해서는 공적 재원이 더 커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며 "그러나 객관적으로 KBS가 신뢰도가 떨어지고 KBS가 다수 국민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데 쉽게 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장으로 있을 당시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KBS 수신료는 1981년에 책정되어 거의 29년째 동결이 되어 있다. '공영방송' 이라는 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 중 KBS가 공적 재원의 비율이 가장 낮다. 거의 29년째 동결이 되어 있으니 정상화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두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하나는 사장 재직 당시 수신료 인상에 지독하게 반대했던 세력이 지금 취하는 태도다. 한나라당, 조·중·동, 뉴라이트 등인데 지금은 거꾸로 그 집단이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당시 자기들이 내세운 주장은 '공정방송 안된다'. '구조조정 제대로 안됐다'는 것이었다. 과연 지금 그들이 떳떳하게 그 답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다른 하나는 '수신료 인상'의 숨겨진 노림수다. KBS 수신료를 올려주고 2TV의 현재 광고 수입 6000억 원을 조중동 방송, 새 종합편성방송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수신료 인상 동기가 진짜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파이를 키우는 데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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