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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흥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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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흥분한 이유

[한윤수의 '오랑캐꽃']<135>

일요일은 통역한테도 무지하게 바쁜 날이다. 방문한 노동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상담테이블로 안내하고 통역하느라 다른 일을 할 짬이 없다. 그런데도 태국 통역 솜짜이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뭔가 태국어로 된 문서를 만들고 있다.

오후에 완성된 문서를 보여주는데 보니 태국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호소문이다. 주요 내용은 첫째 거짓말하지 말라, 둘째 혹시 다른 센터에 들린 일이 있으면 꼭 알려달라는 것이다.

왜 솜짜이가 이 호소문을 만들었는지 짐작이 갔다.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거짓말 사건.
개요는 이렇다.
외국인노동자는 직장 이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한 태국여성이 아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이런 경우 산재가 될까? 그녀는 산재가 안될까봐 노심초사하다가 나를 찾아왔다. 내가 물었다.
"돈 받았어요?"
정식고용은 아니더라도 돈을 받았다면 산재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녀는
"아니요. 돈은 안 받았어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사장님이 <안 받았다>고 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불법 아르바이트를 감추기 위해서 거짓말을 종용한 것인데 그녀는 그걸 앵무새처럼 내 앞에서 되뇌인 것이다.
태국인도 참 답답하다! 자기를 도와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더구나 자신한테 결정적으로 불리한 거짓말을 왜 할까?
덕분에 나는 그녀의 거짓말 때문에 무지하게 고생했다. 어쨌든 그녀는 산재보험을 받았는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식으로, 누군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산재보험을 받게 해준 것으로 오해를 받아 나는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돈을 안 받았다>고 주장하는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받았으니 기관에서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결과적으론 노동자가 *돈을 받은 게 확인되어 산재보험 수급이 정당하다고 인정받았고 나에 대한 오해도 풀렸지만, 나는 나대로 상처를 입었다.
그런 해프닝이 있었기에 솜짜이는 모든 태국인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제발 거짓말하지 마세요."

또 하나는 방랑시인 김삿갓 사건.
개요는 이렇다.
태국 남자 삿갓(가명)은 서울의 건설회사에서 일하다가 지난 5월 중순에 퇴직했다. 하지만 마지막 달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가 체불임금을 받아달라고 U시의 외국인센터를 찾은 것은 5월 말이었다. 그러나 6월 중순이 되어도 돈을 받지 못하자 그는 다른 센터를 찾아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일이 빨리 진행되는 것 같지 않자 또 다른 센터를 찾아갔고. 이런 식으로 흘러흘러 찾아간 센터가 모두 6군데나 되었다. 그렇게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떠돌아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우리 센터에 온 것이 7월 26일.
그러나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 돈을 받아주기 위하여 7월 30일, 9월 1일, 9월 3일, 세 차례에 걸쳐 회사와 접촉했다.
9월 3일 마지막으로 접촉했을 때 회사의 경리담당자는 그날 안으로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내가 몰랐던 숨은 얘기를 해주었다.
"왜 그렇게 전화를 많이 하죠? 거기 말고도 6 군데 센터에서 전화가 왔었다니까요."
나는 경악하여 즉시 그 사건에서 손을 뗐고, 최초로 그 사건을 맡았던 U시의 외국인센터에 사과했다.
그 일 때문에 통역 솜짜이는 모든 태국인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다른 센터에 간 적 있으면 꼭 얘기해 주세요."

*돈을 받은 게 확인 : 노동자의 통장에는 아르바이트를 시킨 회사 명의로 두 차례에 걸쳐 임금을 지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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