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때 얘기다.
닭고기 가공공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추석 대목이라 닭고기 주문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 한국 노동자 7명은 집으로 가버렸다. 연휴기간인데도 닭고기 주문은 계속 밀렸다. 덕분에 태국 노동자 3명은 평소보다 몇 배 힘들게 일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20키로 짜리 닭고기 상자를 8층으로 쌓는 작업은 저녁 늦도록 계속되었다. 3사람은 하루에 13,000 키로를 쌓기도 했다. 무려 13톤이다.
연휴 마지막 날 저녁에 드디어 일이 터졌다. 피곤에 지친 태국인들이 잔업을 거부한 것이다. 공장장은 화가 나서 말했다.
"당장에 그만 둬!"
공장장은 다음날부터 태국인들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13일간!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태국인들은 지극히 단순해서 그만두라면 진짜로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들은 닭고기 공장을 그만두었으므로 아무 거리낌 없이 다른 공장으로 가버렸다.
아농낫과 그녀의 남편은 새 공장으로 가서 일했다. 그런데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가자마자 그 공장이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서 두 사람은 인천출입국에 구금되었다. 남편은 불법체류자이므로 당연히 태국으로 추방되었다.
문제는 아농낫이었다. 그녀는 합법체류자여서 추방되지는 않았다. 다만 직장을 무단이탈하여 다른 곳에서 일한 죄로 벌금 100만원이 부과되었다. 벌금 낼 돈이 없자 아농낫은 닭고기 공장으로 연락했다. 그러자 사모님이 달려와서 벌금을 대납했다.
여기까지는 회사에서 참 잘해준 것이다. 그러나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회사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아농낫과 그 남편에게 13일간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인천출입국을 왔다 갔다 한 모든 비용을 임금과 퇴직금에서 공제했다. *교통비, 수고비, 숙식비 등의 명목으로. 그렇게 마구 공제하다 보니 아농낫과 남편은 퇴직금이라고 받을 건덕지가 아예 없어져버렸다.
미치고 팔짝 뛰게 된 아농낫은 도와달라고 여기저기 쫓아다녔다. 그러나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곳이 없었다. 아주 복잡한 문제였기에 처리가 곤란했던 탓이다. 우리 센터에 왔을 때는 이미 두 군데의 단체를 거쳐 온 뒤였다. 다른 단체나 기관에서 시작한 일은 간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에 나는 그녀를 일단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끈질기게 찾아왔다. 두 번이나 퇴자를 놓았는데도! 어느 일요일 아농낫은 또 찾아왔다. 그날은 굉장히 바빠서 40건 이상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사건을 접수했다.
뒤늦게 알고, 다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아농낫이 우는 바람에 차마 돌려보내지 못했다.
"나 서울로 보내지 마세요. 거긴 통역만 해줘요."
나는 그 큰 센터에서 통역만 해준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욕을 먹더라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출입국에 부탁해서 출국기한이 다 된 아농낫의 비자를 연장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시간이 넉넉하고 잠자리가 안정되어야 협상에 유리하니까.
회사에 전화하자 사모님이 센터로 달려왔다. 사모님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실 회사쪽에도 억울한 점이 있었다. 잔업을 거부하고 직장을 이탈하고. 바쁠 때 노동자들이 이러면 미치지 않는가. 그러나 회사가 잘못한 점이 더 많았다.
양쪽 말을 다 들어보고 나서 공제할 것 공제하고,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보니 아농낫과 남편 합해서 받을 돈이 약 390만원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실제로 받을 금액을 가지고 다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노동부 평택지청까지 갔는데, 노동부에서도 열흘 이상 줄다리기를 한 끝에 타협이 이루어졌다. 305만원만 받기로!
통장에 입금된 것을 확인한 아농낫은, 자기 일처럼 도와준 우리 직원을 힘껏 껴안았다.
"언니, 못 잊을 거에요."
다음날 아농낫은 비행기를 탔다.
*교통비, 수고비, 숙식비 : 교통비는 평택 공장에서 인천출입국까지 왕복한 차량의 기름값, 수고비는 인천까지 왔다갔다 하느라 일을 못한 사장님 이하 직원들의 과다계상된 인건비, 숙식비는 몇 사람이 인천까지 와서 잤는지는 모르지만 호텔비와 식대. 만일 이런 식으로 마구 공제하는 것을 내버려두었더라면 아농낫은 한 푼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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