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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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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출근

[한윤수의 '오랑캐꽃']<133>

사장님이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1년 더 일할 거지?"
수코타이(가명)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일 안 해요."
그가 계약 연장을 거부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월급을 제때 안 준다,
2. 토요일에 잔업을 해도 잔업수당을 안 준다.
3. 점심시간이 30 분밖에 안 되어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다.

다음 날은 5월 1일 노동절로 황금연휴가 시작되어 닷새를 내리 쉬고, 6일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날 사장님은 수코타이를 또 한 번 불러서 물었다.
"계약할 거지?"
"안 해요."
문제는 그 다음날인 5월 7일에 일어났다. 기숙사와 공장은 약간 떨어져 있었는데 수코타이가 기숙사에서 공장으로 출근하자마자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차갑게 내친 것이다.
"재계약 안한 사람은 일거리 없어. 수코타이 일하지 마."
그는 황당해서 물었다.
"일거리 없으면? 이젠 출근도 하지 말아요?"
"아니, 출근은 해야지. 일할 준비도 매일 하고."
다음날 8일. 수코타이는 기숙사에서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역시 일거리를 주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는 만 1년이 되는 5월 27일까지 매일 출근했다. 하지만 출근하면 퇴짜를 놓고 모욕을 주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출근 안 할 수도 없고 출근하면 창피를 주어 돌려보내는 것, 그것은 잔혹한 출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어서 잔혹한 출근도 21일 만에 끝났다.
그러나 1년 만기가 되는 날 아침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사장님이 수코타이가 보는 앞에서 출입국에 전화를 건 것이다.
"일 안 하고 도망가면 불법체류자 맞죠?"
".....?"
"도망갔던 외국인 근로자가 여기 와있어요. 잡아가세요. 국적은 태국, 이름은 수코타이."
그쪽에서 뭐라 대꾸를 하는지 통화가 무척 길었다.
마음이 급해진 수코타이는 회사를 빠져나와 당장 출입국으로 달려갔다.
"저 도망 안 갔어요. 기숙사에 있었어요."
출입국 직원은 웃기만 했다.
"괜찮아요. 안 잡아갈 테니까."
수코타이는 겨우 안도했다.

퇴직 후 수코타이가 받은 돈은 5월 월급으로 하루치 3만 9050 원을 받은 게 전부다. 퇴직금도 못 받았다.
해고도 안 시키고 일거리도 안 주었을 뿐 아니라, 한 달 월급으로 *하루치를 지급한 것은 드물게 보는 황당 사건이다.

너무나 억울해서 발안으로 찾아온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말아요, 다 받아줄 게. 수코타이 잘 견뎠어요."
이렇게 인내심이 강한 태국인이 있다니!
나는 그에게 감탄했다.

*하루치 : 5월 한 달 동안에 5월 6일 하루 일했다고 해서 하루 임금만 지급한 것은 위법이다. 왜냐하면 5월 1일부터 5일(어린이날)까지는 연휴로 유급휴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5월 7일부터 27일까지 정당한 이유 없이 일을 안 시킨 것도 위법이며 최소한 통상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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