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벤 버냉키 미국 연준(FRB) 의장이 금융위기 1주년인 15일(현지시간) 기념 연설에서 "기술적으로 경기침체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선언한 것이 가장 신뢰할 만한 긍정적 발언이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 역시 향후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내년까지 실업률이 안정되지 않을 것이며, 신용경색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성장세는 비교적 느릴 것"이라고 우울한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1년을 맞아 향후 경제전망을 우선적으로 경청해야할 전문가는 따로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한 극소수의 학자 중 대표적 학자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금융위기 1주년을 맞아 내린 평가는 어땠을까.
▲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로이터=뉴시스 |
루비니 교수의 진단은 너무 잔인한 표현이어서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전날 미국의 증권전문방송 <CMBC>와의 인터뷰에서 루비니 교수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대해 "1000번의 칼질을 당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면서 "금융시스템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이 얘기는 은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 1000개 이상의 은행 파산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1000번의 칼질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살점을 조금씩 1000번을 도려내 서서히 죽이는 '능지처참'이라는 형벌을 의미하며,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이처럼 서서히 죽어가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이렇게 끔찍한 표현을 내린 근거를 이렇게 말했다.
"더 많은 은행들이 파산하고 주택가격이 추가 하락할 여지가 있다. 상황이 끝나기 전에 1000개 이상의 금융기관들이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 주택가격은 내년에 12% 더 하락해서 고점 대비 40%나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주택 소유자 절반 정도가 주택가격보다 많은 주택담보대출을 갖게 될 것이다. 주택 수요 공급의 격차가 너무 커서 재고를 소진하려면 1년 동안 신규 주택 공급을 중단해도 될 정도다. 주택가격 조정은 향후 1년이 지속될 것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붕괴로 인한 타격 커지고 있다"
비정부 채권은 투자자들의 외면에 시달리고 있으며, 증권화 시장은 거의 죽었으며, 신용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으며, 소비자들은 소비로 성장을 뒷받침하기보다는 계속 저축에 매달릴 것이다. 소비자들은 지출을 멈추고,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붕괴로 인한 타격이 커지고 있어, 향후 미국 경제는 어려운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더블딥' 형태의 경기침체가 닥치거나 기껏해야 U자 형의 느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존의 예측도 반복됐다.
루비니 교수는 미국 정부가 리먼브라더스를 파산시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다고 비난하는 많은 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금융시스템은 리먼브라더스를 파산시키지 않더라도 위기를 맞았을 것"이라면서 "당시 이미 우리는 매우 심각한 위기 한가운데에 서있었다"고 말했다.
"리먼브라더스 구제했다면 만사 O.K? 허튼소리"
그는 "리먼브라더스에게 구제금융을 투입했다면 만사가 O.K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허튼소리"라면서 "리먼브라더스는 위기의 징후였지, 위기의 원인이 아니었다"고 일갈했다.
나아가 그는 미국 정부가 또다시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때와 똑같은 실책을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해 반복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심각한 곤경에 빠져있는 부문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경제에 큰 타격을 줄 문제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금융위기 발발 당시 혹독하게 비판했던 벤 버냉키 FRB 의장에 대해서 "나는 위기 이전에 그가 한 많은 실책들에 대해 비판한 것"이라면서 "강력한 조치들로 금융시스템의 완전한 붕괴를 막아 또다른 대공황을 모면하게 해준 그의 대책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대공황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던 루비니 교수의 예언은 버냉키 의장은 사후 대책으로 간신히 빗나갔다. 이제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라는 루비니의 예언은 누가 빗나가게 할 것인가. 이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라면, 루비니의 예언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하기 싫을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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