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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극복의 이면…'놀라운 신세계'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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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환위기 극복의 이면…'놀라운 신세계'가 기다린다

[한국호는 왜 침몰하지 않았나⑤·끝]위기 탈출 해법,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국호는 왜 침몰하지 않았나]라는 이번 기획 시리즈 마지막 회는, 지난 1년 사이 겉으로 보기에 환율이 요동친 것에 불과한 해프닝처럼 극복된 경제위기가 왜 일어났으며, 그 극복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극복 대책의 빛과 그늘은 무엇이며, 나아가 이번 위기가 향후 어떤 대책도 내놓을 수 없는 시스템 붕괴 위기의 전조일 가능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지난해 9월 이후 한국경제가 침몰할 것처럼 보였던 가장 큰 이유는 과거 IMF 사태처럼 외환위기였다. 당시 900원대에서 800원대로 간다던 환율은 갑자기 1600원대로 육박해 갔다.

시장 예측과 거꾸로 간 환율

이러한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위기가 닥칠지 예측하지 못했다. 거꾸로 막상 외환위기가 닥치니까 적지 않은 경제전문가들이 아예 대한민국이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꼭 1년전인 지난해 9월15일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온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이 있었다. ⓒ로이터=뉴시스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순식간에 확산된 계기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한 지난해 9월15일이었다. 꼭 1년 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던지, 한국은 해를 넘기기도 전에 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외국 경제전문가나 주요 외신들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경제 회복 조짐을 보이는 나라로 찬사를 받고 있다. 환율도 1200원대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 경제연구소들은 연말에는 환율이 1100원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2분기 2.6% 성장(전분기 대비)했다. 1분기(0.1%)에 이은 2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이다.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5.1%였다는 점, 그리고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전분기 대비 1% 이상의 탄력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는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목받을 만한 성과다.
▲ 지난해말 경제 위기 이후 분기별 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가파른 반등세를 보였다. ⓒ한국은행
한국경제의 가파른 반등세, 그 비결은?

이에 따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급속히 상향 조정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2%로 내렸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높인 뒤 최근 정부 내에서는 0%대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도 당초 -4%에서 -1.8%로 올렸고,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3%에서 ―0.7%로 높였다.

주식시장도 지난 1년의 위기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본적인 경제여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는 듯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코스피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지수 1478을 지나 1600선을 넘었다.

한때 2000억 달러 붕괴 우려까지 보였던 외환보유액은 8월 말 현재 2455억 달러로 금융위기 직전(2432억 달러)보다 오히려 많아졌다.

지난해 10월 국가 부도 위기 지표로 주목받았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만기 5년)의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은 6.99%포인트까지 치솟았으나 최근 1.20%포인트로 하락했다.

이런 지표들만 보면 경제위기는 이미 지난 일이 된 것 같다. 우리 정부가 어떤 비책을 썼기에 이처럼 경제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것일까. 그 비책은 재정지출 확대 및 사상 최저 금리로 상징되는 통화팽창 정책이었다.

한국은행에서는 정부의 재정정책 효과는 1분기 GDP 성장률을 1~1.5%포인트 끌어 올렸으며, 이 정책이 없었다면 전기 대비 -0.6%를 기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재정지출이 크게 늘면서 재정수지 적자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IMF는 한국의 올해와 내년 재정수지 적자가 각각 GDP의 6.7%와 7.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국가 부채 증가율이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다.

실물경제 동반한 경제회복 아니다

실물경제가 받은 타격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7월 기업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비 18% 감소하는 등 10개월 연속 마이너스이며, 실업자 수는 경제위기 직전인 지난해 8월 76만4000여 명에서 지난 7월 92만8000여 명으로 21% 증가했다.

신규 취업자 수도 매달 감소했다. 신규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3월 -19만5000여 명, 4월 -18만8000여 명, 5월 -21만9000여 명 등 감소세를 이어가다가, 희망근로사업이 본격 실시된 지난 6월 4000여 명으로 반짝 증가세를 보였지만, 지난 7월 -7만6000여 명으로 감소세로 다시 돌아섰다.

일각에서는 신규 취업자 수 감소세가 완화되고 있다는 것을 고용시장 개선의 증거로 내세우지만, 고용의 질이 악화된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다. 지난 6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체감 실업률도 11%로 공식 실업률보다 3배나 높았다.

이런 지표들은 실물경제 회복이 동반되는 진정한 경제회복은 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물경제가 살아나려면 재정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자금이 생산 부문에 유입돼야 한다. 그래야만 투자가 촉진되고 소비가 살아난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수백조 원에 달하는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품을 형성하는 사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41조4000여억 원에 이른다. 7월보다 무려 4조2000억 원 증가한 액수다.

지난해 10월 31일 1조860억 원까지 떨어졌던 신용거래융자잔고(신용잔고, 주식투자 목적으로 증권사에 빌린 돈)는 지난 3일 4조5000억 원 선을 넘어섰다. 신용잔고가 4조5000억 원 이상으로 오른 것은 지난 2007년 12월 24일(4조5129억 원)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의 수습 국면은 또다른 더 큰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는 경고가 따라 다닌다. 하지만 지난해말 시스템 붕괴가 임박했다는 예측, 올해 초 주가가 500선 이하로 추락할 것이며, 부동산은 폭락할 것이라는 사이비 전문가들의 경고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조만간 언제 어디서 파국을 맞을 것처럼 경고하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예언이다. 현실적으로 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내포하고 있는 대가는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또다른 외환위기, 언제든지 발생 가능
▲ 지난해 10월 30일 한미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당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뉴시스

이번 외환위기에서 2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는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질 경우 며칠짜리에 불과할 만큼 방어막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고환율로 인한 일부 대기업의 수출 호조로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지만, 한미통화스와프가 아니었다면 제2의 IMF 사태는 불가피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달러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미국이 어떤 필요에 의해 '구원의 동앗줄'을 내려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펀더멘털이 좋다고 해도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는 허약체질이라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 패권이 지속되고, 달러에 대한 한국 경제의 의존도가 지금처럼 높은 상황에서는 제3, 제4의 외환위기는 언제든지 발생할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만이라도 중국의 위안화, 일본의 엔화 등으로 아시아머니펀드(AMF) 구축 등으로 달러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만이 외환위기에 대한 방어벽을 보다 튼튼히 쌓는 일이라는 처방도 나와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런 구상을 반대하고 있으며, 기축통화시스템의 변화는 수십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조기 대책이 되기는 힘들다.

오히려 향후 수십년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패권이 뿌리채 흔들리고, 금융위기가 반복되면서 그 심각성도 증폭될 것이라는 경고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예측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가 바로 하이먼 민스키다. 주류경제학이 철저히 외면해왔던 그의 '금융불안정성 이론'은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그리고 서프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한 현행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민스키의 이론은 지난 1998년 퍼시픽투자회사의 펀드매너저 폴 매컬리가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로 금융위기를 설명한 것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으며, 지금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당대 금융위기 최고 권위자들이 이론적 출발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민스키 모멘트'는 금융시장에서 과도한 부채를 짊어진 채무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건전한 자산까지도 팔아치울 수밖에 없게 되고, 그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자산가치가 폭락하는 시점을 뜻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내재된 '민스키 모멘트'

지난해 9월 이후 한국의 외환위기도 미국 등 주요 금융시장에서 '민스키 모멘트'가 발생해 일거에 달러가 회수되고 차입이 중단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민스키 모멘트'는 어쩌다 한 번 일어나고 마는 해프닝이 아니다. 민스키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민스키 모멘트'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주택가격 등 특정 자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 이에 투입될 금융 수요가 늘어난다. 금융 공급도 따라서 늘어난다. 금융기관들이 신용을 공급할 때 자산을 담보로 잡아 자산가격이 높다면 그만큼 신용도 더 많이 공급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리가 수요 공급의 조절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금융위기가 내재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스키의 '금융불안정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은 본질적으로 호황과 불황의 파괴적인 주기를 형성한다. 중앙은행은 통화 수요를 관리해 이런 파괴적 주기를 보다 바람직하게 조정하는 임무를 띤다.

병주고, 약주는 중앙은행

하지만 현실의 중앙은행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호황과 불황의 파괴적 진폭을 키운다. 특히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선제적인 수요관리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제적 수요 관리는 앨런 그린스펀이 FRB 의장 시절 주창한 것으로, 공세적인 통화정책으로 경제성장을 지원하거나,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금융시스템을 운용하는 정책이다.

흔히 이처럼 진폭을 키우는 통화정책을 중앙은행이 반복하다가 마침내 이번처럼 대형 금융위기가 터지면 '정책적 실패'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재화 및 서비스 가격 안정을 위해 인플레이션율을 관리하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삼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달과 세계화로 인해 재화 및 서비스 가격은 하향 안정화됐다. 이때문에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방만하게 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최근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의 저자 조지 쿠퍼가 "중앙은행의 기능에 물가안정 뿐 아니라, 금융안정도 추가해야 한다"며 중앙은행 개혁을 주장한 것은 이때문이다.
▲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은 20t세기말 이후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근원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역사와 구조를 살펴보면, 중앙은행의 정책적 실패 역시 자본주의 속성상 내재된 것일 뿐 실천가능한 개혁방안은 기대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이 어떻게 금융시장에 등장하게 됐고, 중앙은행이 원래 수행할 임무와 실제 임무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자유로운 상품과 서비스 시장은 수요 공급의 원리로 적정한 가격을 찾아간다는 '효율적 시장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공급이 제한적인 시장이나 자산시장에서 이런 수요 공급의 원리는 현실 경험상 작동하지 않는다. 희소가치를 노린 '투자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특히 자산시장에서 투자 수요를 자극하는 것은 가격 자체가 아니라, 가격의 변화율이다. 이 시장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부족이 수요를 자극한다.

중앙은행이 필요한 것도 금융시장에 본래 내재하고 있는 이러한 불안정성 때문이다. 쿠퍼는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듯, 20여 년 동안 형성된 거품과정을 통해 축적된 부채더미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음이 거의 확실하다. 이제 이 부채더미는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과히 유쾌하지 않은 세 가지 선택지를 남겨놓고 있다"고 말한다.

통화팽창과 인플레이션으로 일단 막고보자?

첫째, 효율적 시장 이론에 맞추어 유동성 위축과 자산 디플레이션이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두번째, 또다시 막대한 부채를 지며 재정 및 통화팽창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G20(주요 20개국)이 합의한 정책이다. 이런 방법은 문제를 증폭시키고 해결을 늦출 뿐이다.

세번째, 국가에서 돈을 찍어 그냥 나눠주는 직접적인 방식이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지출 정책을 펴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금 차입자들에게 '빚 감옥에서 벗어나는 카드'를 쥐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저축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이뤄진다. 쿠퍼는 "이런 전략 또한 상당수 사람들로부터 불평과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가능한 선택지 중에서는 이것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쿠퍼 스스로 뾰죽한 대안이 없다면서 내놓은 이런 궁여지책들은 이미 현실에서 채택되고 있다. 쿠퍼는 "미 달러화의 가치는 하락하는 반면, 석유와 금, 농산물 가격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그 확실한 신호"라고 말한다.

쿠퍼가 유일한 탈출구로 제시한 비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두번째, 세번째 방법을 일단 쓰고 보는 수밖에 없지만, 그 뒤에 곧바로 올바른 통화 및 거시정책을 펴기 위해 풍부한 정보를 모아 이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역시 실천 가능성에 의문이 들거나 장기간에 걸쳐 이뤄질 변화다.

리먼브라더스는 버리고, AIG는 구제한 이유

오히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공황 2.0 불가피론'에 따르면, 쿠퍼의 대안은 한가롭게 들린다. 재정지출 확대 및 통화팽창으로도 막을 수 없는 '괴물' 같은 부실이 지금 시한폭탄처럼 폭발시기만 남겨두고 있다는 경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CDS 부실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됐다는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순식간에 확산된 배경도 사실은 CDS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전체 금융시장에서 그 비중이 몇 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난해 초만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고 보는 '1차원적인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각종 채권들이 '금융공학'적 확률 계산에 의해 리스크를 분산시켜 증권화되고, 이런 파생상품들은 부도 위험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원금 보장 능력도 없이 세계 최대의 보험사 AIG를 비롯한 금융업체들이 CDS를 마구 판매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 연방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 일으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리먼브라더스는 파산시켰어도, 불과 이틀 뒤 원칙을 어기고 AIG는 파산시키지 못한 이유다.

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어떤 식으로든 수습이 가능하지만, AIG 파산은 수습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파괴력이 큰 AIG의 CDS 부실조차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슈퍼버블의 붕괴>의 저자 아사쿠라 케이에 따르면, CDS 시장에서 총 보증액은 58조 달러로 추산된다.

AIG는 그 중에서 5000억 달러를 보증하고 있으며 최소 20%의 부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방정부가 85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투입하는 등 총 1500억 달러의 자금을 지급한 것과 맞어떨어지는 규모다.

AIG는 보험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 전체 CDS 시장에 AIG의 비율을 적용하면 최소한 총 12조 달러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왜 당장 금융시장이 붕괴되지 않는 것일까. AIG는 상장회사로서 결산 공개 의무가 있어서 부실을 감추기 어렵지만, CDS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헤지펀드는 이런 의무가 없다. 헤지펀드는 높은 레버리지로 사실상 부실이 발생하면 원금 상환 능력은 거의 없다.

이때문에 아사쿠라 케이는 "미국 정부의 정책은 헤지펀드의 문제를 일단 감추고, CDS 시장이 당장 붕괴되지 않도록 시간을 벌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거대한 숨겨진 부실이 아니라면, 설혹 더블딥이 발생한다고 해도 자본주의가 갑자기 붕괴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아사쿠라 케이의 주장대로 엄청난 부실이 숨겨져 있고, 인플레이션으로 뇌관이 터지는 것을 막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일각에서 제기하는 '자본주의 붕괴' 경고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인플레이션 등을 통해 숨겨진 부실이 자본주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해도, 그 사회는 극심한 양극화로 상징되는 '놀라운 신세계'가 될 것이다.

부채로 연명하는 자본주의가 초래할 '놀라운 신세계'

<달러>의 저자 엘렌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투기는 미친 짓이다. 하지만 투기를 하지 않으면 비참해진다." 이 말은 이른바 '부채화폐' 시스템인 현행 금융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과 기업이 처해있는 딜레마를 표현한 것이다.

'부채화폐'는 현행 화폐시스템이 금 등 실물과 교환할 수 없는 불태환 화폐이기에 사실상 빚이며 가공의 자산이라는 의미다. 미국의 경우 지금과 같은 재정적자가 지속된다면 2014년 세수의 40%를 정부부채에 대한 이자로 지불해야 한다.

'양털깎기' 반복되는 '부채화폐 시스템'

경제성장을 계속 하려면 더 많은 빚을 져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더 많은 빚을 져야 한다. '부채화폐 시스템'이 발달한 나라는 정책 기준금리가 낮다. 더 많은 빚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이자율은 낮지만 총부채와 총이자는 갈수록 늘어난다.

주택 등 자산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산 중산층과 서민은 이런 부채화폐 시스템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곧 한계상황에 몰려 담보를 빼앗기면서 곧바로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은행들이 쉽게 대출해주는 시스템은 이번 경제위기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양털깎기'에 불과하다. 자산을 담보로 잡아 마치 도박 판돈을 싼 이자에 빌려주고 전체 판을 키운 다음, 경제위기가 닥쳐 원리금 내기가 힘들어진 채무자의 담보 자산을 처분하는 것이다.이러한 어두운 그늘을 감추기 위해 흔히 '부채화폐'는 '신용화폐', '부채화폐 시스템'은 '신용창조 시스템'이라는 용어로 포장된다.

이번 금융위기처럼 사태가 터지고 나면 기업들이 차입을 출이고, 대출 기준은 높아지는 등 규제가 강회된다. 문제는 이 반대의 과정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개인들과 중소기업은 파산하고, '파산시키기에는 너무 큰' 기업들은 혈세로 구제를 받았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도 타격을 주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재정지출로 인위적인 수요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바로 전세계가 현행 경제위기를 극복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약자에 속하는 개인과 기업들은 처절하게 몰락했다. 급증한 국가부채는 두고두고 후대의 부담으로 남고, 특히 자산을 갖지 못한 자들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남발한 통화증발이 가져올 인플레이션의 패자가 되어 경제위기를 반복해서 거칠수록 양극화가 심화된다.

"중앙은행의 목적은 신용창조 시스템 유지"

이런 '사악한 시스템'이 유지되는 배후에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중앙은행이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인디펜던트> 등 세계 주요 금융전문지들이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이론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한 책'으로 격찬하며 소개한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의 저자 조지 쿠퍼는 "중앙은행의 본래 목적은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믿음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용창조 시스템의 금융안정성을 보장하는 일"이라고 폭로했다.

쿠퍼에 따르면, 금융불안은 신용화폐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라면 어떤 시스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 여부와는 무관하다. 금융불안에서 벗어나려면 금본위 통화제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움직임이 일부 문제를 치료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것이 금융안정의 황금시대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통해 명백히 볼 수 있듯 중앙은행의 탄생 이전에도 금융불안은 늘 있어왔다. 금융시장이 효율적 시장이론의 예측과 달리 움직이는 것이 중앙은행 탓인지 아닌지, 그 해답에 대한 실마리를 1907년 미국의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중앙은행이 출현하기 전부터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중앙은행이 금융불안을 낳은것이 아니다. 거꾸로 금융불안이 중앙은행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중앙은행은 거품 경제를 키워내 금융불안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03년 8월29일 미국 와이오밍 주 잭슨 홀에서 '불확실성 아래의 통화정책'을 주제로 이뤄진 앨런 그린스펀(당시 미 연준 의장)의 강연은 이번 금융위기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FRB의 선제적 통화정책

그린스펀은 예상되는 경제 위축을 선제적으로 막기위해 공세적인 통화팽창 정책을 썼다. 이것이 위험관리 패러다임이다. 그의 강연은 "걱정하지 말라, 우리 최종대부자는 당신네를 도우러 갈 것이다. 우리한테서 돈을 꾸어 써야 할 지경에 이르기 전에 말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관리 패러다임의 참여자들이 적절한 선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달러를 무제한 찍어내 인플레이션의 이득을 누려왔다. 기축통화로서 이 이득은 자제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금융업계는 경쟁적으로 위험한 투자를 일삼았고, 이런 투자에 동참한 투자자들도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에 의존하는 모럴 해저드에 빠져있었다. 특히 대형은행이 파산 위기에 빠지면 이들이 다른 업체와 투자자들과 긴밀하게 얽혀 있기에 파산시키지도 못하게 됐다.

더 문제는 중앙은행이 점점 공세적인 수요 관리를 한다는 점이다. 쿠퍼에 따르면, 대공황 때 메이너드 케인즈가 빚을 져서라도 재정 및 통화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하라는 주장한 것은 원래 이미 경기침체에 빠져있을 때 쓰는 수세적인 차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중앙은행은 경기후퇴를 피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재정과 통화정책을 쓰고 있으며, 이를 옹호하는 이른바 신케인즈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해 경제 성장 지원은 물론, 경기침체도 사전에 막으려는 특효약은 장기복용하기 힘들다는 결정적 약점을 갖고 있다. 엄청나게 큰 부채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을 거듭하면 결국 만성적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부의 양극화를 격화시킬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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