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점에서 그는 전직 대통령 클린턴과 참 많이 닮았다. 92년 선거 과정에서 수없이 터지는 스캔들로 최측근들마저 '이제는 진짜 끝'이라며 짐을 쌀 때, 그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의 별명은 '컴백 키드'였다.
집권 후 탄핵 정국에서도 클린턴은 대통령을 갈아치우려는 깅그리치 하원의장을 비웃으며 어김없이 귀환했다. 그래서 그는 주지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간 자신을 정치적으로 죽이고자 하는 극우진영들을 향해 자기는 맞으면 맞을수록 더 강하게 튀어 오르는 펀치백 같은 존재임을 모르고 있다고 조롱하곤 했다.
9일 연설로 돌아온 오바마도 역시 대단한 펀치백임을 증명했다. 연설이 있기 전 한동안 미국이나 한국의 친구들로부터 오바마에 대한 실망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한다. 어떤 이는 너무 준비 없이 집권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정치적 스킬이 부족하거나 너무 유약하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부는 미국 정치 내부의 복잡한 지형에 대한 통찰에 근거하기보다, 인상 비평에 그치기도 한다. 오바마만이 아니라 클린턴도 자신 진영으로부터 공정한 비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부당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9일 의회 연설 장면 ⓒ백악관 홈페이지 |
클린턴과 오바마에 대한 오해
오바마의 멋진 의회 연설을 지켜보면서 아마 가장 기뻐한 이는 클린턴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바마는 이날 마치 16년 전 클린턴의 의회연설처럼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참주선동과 비난들에 맞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비전을 토로했다.
만약 클린턴에게 다시 그곳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94년 의료보험 실패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부당한 비난들에 대해 오바마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설하며 국민들을 감동시키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클린턴에게 쏟아진 비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왜 의회를 무시하고 백악관에서 모든 법안을 만들어 타협의 여지를 줄였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클린턴은 무척 억울해한다. 그는 최근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격정적으로 자신의 소회를 토로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클린턴은 흔히 지적되는 것과 달리 사실은 오바마와 똑같이 의회가 법안을 주도하도록 요청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의회의 막강한 행위자였던 하원 세입, 세출위 위원장 로스텐코우스키는 만약 백악관이 완전한 형태의 법안을 보내지 않으면 절대로 이를 다루지 않겠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후 클린턴 정부는 의회주의 정치력을 발휘할 생각은 안하고 오만하고 아마추어적으로 수백 페이지짜리의 완성된 법안을 보내 스스로 파멸을 자초했다고 두고두고 논객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오바마는 정반대의 의미로 비난을 받아왔다. 즉, 클린턴의 오류를 너무 심하게 학습해 의회에 지나치게 많은 주도권을 주었다고 비난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공정한 비판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클린턴이 인터뷰에서 지적했듯 93년 당시 상원에서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 수는 '55 대 45'였다. 민주당 의원 숫자가 공화당의 의사진행 방해를 저지할 60석에서 상당히 모자란 현실에서 공화당은 마음껏 백악관의 안(案)을 유린했다.
하지만 최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서거 전 60석에 육박했던 민주당의 유리한 지형 등을 감안한 공화당은 93년과 달리 자꾸만 협상하자고 달라붙고 있다. 클린턴으로서는 부러운 상황 전개인 셈이다.
이러한 지형 변화에 힘입어 오바마 진영은 최대한 초당적 모양새를 갖추면서 공화당을 압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화당 안을 50% 수용하는 정도로 초당적으로 합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내심 있게 의회와 여론의 펀치를 맞다가 결정적 분기점에 도달한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공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그 시기인 것이다.
공화당은 매우 공세적인 동시에 초당적으로 들리는 오바마의 연설과 의료보험 지지율의 급상승에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 연설 직후 진행된 각종 여론 조사는 부동층 사이에서까지 지지도가 증가하는 것을 보여줬다.
일단 성공해야 한다고 믿는 오바마
오바마의 연설과 클린턴 대통령의 최근 인터뷰는 다음의 3가지 영역에서 그들이 정확히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첫째, 이제는 행동주의의 시기라는 점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대선에서 오바마를 선택한 것은 "다양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이를 침착하고 지성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시대정신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이제 오바마가 집권한 현실에서 시민들의 기대치가 달라졌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오바마가 자신의 약속을 단호하게 집행해(stand and deliver) 나갈지를 검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명운은 바로 이 '실행'(deliver) 능력 여부에 달렸다고 클린턴은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화당이 무슨 짓을 하든 무시하라고 조언한다. 대신 실행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 모든 것을 걸라고 호소한다.
오바마는 역시 클린턴 정신의 탁월한 계승자였다. 오바마 연설의 핵심도 바로 이 실행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클린턴은 현실주의 정치가이고 오바마는 이상주의자라고 대비하곤 하는 데, 사실은 둘 다 진보적 꿈을 가지면서도 그 꿈을 가장 현실주의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좋아하는 실용적 진보주의자들이다.
오바마가 연설에서 백악관 안의 핵심을 공적 보험 유지로 파악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강한 비판을 퍼부은 것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 보험 포함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라 오바마 정부가 실행력을 보여주는가 아닌가 임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인터뷰에서 오바마 정부의 핵심 과제를 '일단 무조건 성공해라, 문제점은 그 후에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96년 재선을 앞두고 복지 개혁에서 여러 독소 조항을 포함하면서도 공화당과의 타협을 추구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미국의 많은 진보 논객들은 클린턴의 무조건적인 성공주의에 강한 비판을 퍼부었다.
하지만 재선에 성공한 후 클린턴은 약속대로 독소조항을 고쳐나갔고 그의 복지 개혁은 오늘날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 현실 지형에서 오바마에게 의료보험 이슈의 핵심은 일단 성공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이슈를 넘어 자칫하면 오바마 시대는 잃어버린 세월 취급을 받기 쉽다. 클린턴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오바마는 앞으로 몇 주간 진보의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이 입법의 성공과 실행력을 보여주는 것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하원의 진보파들도 앞으로 몇 주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올 것이다.
'초당주의' 환상은 없다
둘째, 그들은 초당주의자라는 근사한 브랜드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클린턴의 의료개혁안은 극우진영에서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달리 선택과 경쟁을 가치로 한 중도적 노선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공/사 보험 시장에서의 경쟁을 추구하는 오바마의 안은 어느 논객의 지적처럼 보수의 아성인 헤리티지 재단의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과거 공화당 보수 대통령인 닉슨의 전 국민 의료보험안은 오바마 대통령의 안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두 안이 객관적으로 중도적이라는 것과 실제로 중도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93년 당시 공화당의 지도자는 품위를 가진 노정객 밥 돌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클린턴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클린턴과 함께 초당적으로 법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96년 대선을 겨냥하고 있는 대선 후보였다. 당시 극우적인 네오콘인 빌 크리스톨이 무슨 수를 써서든 의료개혁을 좌초시키자고 하는 제안 문건을 돌렸을 때 이 제안을 그가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수십 년간 불임정당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공화당은 혹시 오바마 임기를 지금 좌초시킬지 모른다는 흥분에 전율하고 있다. 94년 사실상 의원내각제 스타일의 총리를 꿈꾼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이제 다시 대선후보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바마는 흔히 오해하듯 초당적 환상에 사로잡힌 서생이 아니다. 그는 언제 초당적이어야 하고 언제 당파적이어야 하는지를 안다. 그는 9일 연설에서 깅그리치 공화당원들에게 매우 강한 톤으로 경고하고 있다. "나는 의료보험 개혁을 시도한 첫 대통령은 아니지만 마지막일 것"이라는 이야기는 공화당이 대안이 아닌 반대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시대를 끝내겠다는 가한 의지의 표현이다.
오바마는 '햄릿'인가?
마지막으로 클린턴의 인터뷰와 오바마의 연설로 그들은 역시 로버트 케네디, 에드워드 케네디의 정신을 잇는 '자유주의의 사자'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미국 민주당은 거칠게 나누자면 두 가지 전통이 있다. 하나는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하였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지성주의적인 정치인 중 하나인 아들라이 스티븐슨의 전통이다. 대선에서 쓴 잔을 마신 존 케리나 앨 고어는 이 계보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암살의 비운을 맞은 바비 케네디와 같이 열정적인 정치지도자의 전통이다. 2004년 대선에서 쓴 잔을 마신 하워드 딘이나 얼마 전 서거한 에드워드 케네디 같은 이들이 그러하다.
예외적으로 이 두 전통을 잘 융합시킨 이들도 존재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한국의 경우를 비유하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러하다. 사실 클린턴은 정치 초기에는 지나치게 지성주의자에 가까워 대중들과 거리감을 가졌지만 점차 이 양자를 원숙하게 조화시켜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 기질은 지성주의에 더 가깝지만 치열한 노력으로 대중성을 획득해간 경우이다. 오바마도 기질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지성적이고 성찰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때로 너무 냉정하고 햄릿처럼 생각이 너무 많다고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9일 연설은 그가 클린턴의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고 에드워드 케네디의 마지막 편지를 언급하면서 사회적 정의야말로 민주공화국의 핵심임을 호소했다.
클린턴의 핵심 측근이었던 조지 스테파노플러스는 이 연설이 지금까지 오바마의 취임 후 연설 중 가장 감성적이라고 평가했다. 정치평론가 이제이 디온은 오바마가 이제 냉정한 스티븐슨이 아니라 전투적 해리 트루만 전 대통령에게서 역할 모델을 발견하는 것 같다고 촌철살인의 논평을 내놓았다.
클린턴의 낙관론이 암시하는 것
의료보험 논쟁은 수많은 잽을 교환하다가 이제 드디어 본격적 격투기의 막이 올랐다. 의료보험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한 오바마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도 다양한 세력들 나름의 손익 계산이 다차원적으로 맞부딪치며 첩첩산중의 장애가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상원에서 단순 과반수 통과의 절차적 정당성과 그 가능성 여부를 둘러싼 여야와 집권당 내부의 치열한 전투와 여론 전쟁이 가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클린턴은 패배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 인터뷰에서 자신은 패배했지만 오바마는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에서 가장 정치적 안테나가 발달된 이로 평가받는 클린턴이므로 그의 과학적 전망, 혹은 희망 섞인 격려는 민주당 진영에게 큰 힘을 줄 것이다.
비록 이후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강경보수들이 말하고 일부 생각 없는 진보들이 수용하는 소위 '잃어버린 8년' 패러다임에 대한 전직 대통령의 치열한 투쟁과 미래를 위한 현직 대통령의 대담한 도전은 아직은 미국에 작지만 소중한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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