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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지금 독일에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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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지금 독일에선 <하>

[김상수 칼럼]<60> 행사총책임자 모리츠 반 뒬멘과의 대화

인권, 자유, 민주주의의 평화혁명 <하>

(<상편> 보기)

김상수 - 행사의 책임을 맡은 당신은 아주 젊다. 1989년 장벽이 붕괴될 때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 당시 장벽 붕괴 때는 개인적으로 어떤 감상이 들었는가?

뒬멘 - 나는 그 때 막 18살이 되었다. 그 때 나는 독일의 서남쪽의 도시 자르브뤼켄(Saarbruecken) 고향에 있었다. 자르브뤼켄은 독일의 서쪽 주도(主都)로서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30분, 프랑스 파리에서는 1시간 50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이곳은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역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패전한 후에는 프랑스의 보호령이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프랑스의 국경에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나는 살고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베를린장벽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 동독으로부터 왔던 집안에서 알던 한 지인이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나는 직접 경험하진 못해도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리고 집을 찾아온 지인을 통해서 전해 듣는 이야기만으로도 장벽의 붕괴를 느낄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행사 총책임자 Moritz van Dülmen 모리츠 반 뒬멘Felixpark

김상수 - 장벽 붕괴 20년, 주간지 <슈피겔> 여론조사를 보니까 동독출신 사람들 중에는 동독시절이 좋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뒬멘 - 그건 동독 출신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서독 지역 사람들도 그 질문에 여러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과거 독일민주공화국(DDR)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개인적인 생활 여건이나 직업 관계나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른 얕은 판단이지 깊게 생각하지 않은 판단이라고 나는 본다. 이것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 시대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모든 어린이가 동독에선 한 푼도 돈을 들이지 않고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다면 어떤 이들은 그것은 좋았다고 바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커다란 시스템 안의 정말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정말 큰 문제는 이러한 질문들을 일관성 있는 맥락에서 보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개인적인 감정이나 기분만으로 말해버리는 것들이 문제다.

김상수 - 어떻게? 동, 서독의 갈등은 많이 치유되었다고 보는가?

뒬멘 - 많은 사람들이 독일통일 후에 지난 20년간 우린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 시대, 20년 전을 비교하고자 할 땐, 경제적인 상황과 이데올로기적 시대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동독의 정치 속에서도 시대마다 상황이 달랐듯이, 특히 1960년대와 장벽이 무너지기 2년 전인 1987년, 그리고 장벽이 무너진 1989년, 그 시대 성격이 달랐고 계속 변화해 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동독의 사람들에게 터닝 포인트, 말하자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의 삶이란 정말 커다란 변화였을 것이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그 순간은 무너짐이라고 느껴질 만한 것이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변했고 또 스스로도 변화해야 했었으니까. 그러나 그 시간에서 모두에게 제일 중요하게 필요했던 건 통일된 독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는 것이고 모두 관용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김상수 - 독일 통일 20년은 한국에도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 한국은 1950년 전쟁발발 이후 59년째 분단 상황이다. 독일인의 시각으로, 특히 장벽 붕괴 20년 행사를 책임 맡은 입장에서 볼 때, 분단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뒬멘 - 독일의 분단문제를 통해서 나는 한국의 상황을 유추해 본다. 당시 베를린은 소련과 미국의 속지로 나뉘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들로 인한 문제들은 시간이 흐르고 많은 부분이 해소되었지만 그래도 정서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앙금처럼. 그리고 그런 남아있는 여러 문제점들은 계속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단지 지리상으로 나누어졌던 동독, 서독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동독 서독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문제는 사실상 역사적으로는 방점을 찍었지만,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여전히 깊게 남아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여전히 분단인 상태로 남아있는 경우다. 상처가 깊고 너무 오래됐다. 나는 이런 상황이 빨리 종료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상수 - 며칠 전에 알렉산더 광장에 가서 다큐멘터리 전시를 봤다. 역사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뒬멘 - 알렉산드 광장에서의 다큐멘터리 전시는 1989년 당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의 자긍심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변화 속의 베를린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여기서 우리의 프로젝트 목표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함과 동시에 현재의 젊은이들, 경험을 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도 20년 전에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겠다는 의미다. 현재 60대가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20년 전 그 시절에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이 사건을 연대기별로 알리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친근하게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모든 세계에도 알리고 싶었다. 20년 전에 이곳 베를린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현재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아직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국을 지칭하는 것이면서 또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많은 나라들에게도 자극을 주게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

김상수 - 독일 통일 20년이 내년 2010년이다. 행사는 어떤 것들이 준비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개념과 시야(vision)로 준비되고 있나?

뒬멘 - 그건 아직 준비가 뚜렷하지는 않다. 통일 20주년은 2010년 10월 3일인데, 그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던 사건은 훨씬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시킬만한 것이 분명이 있다. 우리는 독일통일 기념일에도 거리축제를 진행한다거나 여러 가지 행사를 하게 될 것이다.

김상수 - 행사가 베를린 중심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독일 통일은 독일 전국토의 통일이고 독일 전체 국민의 통일이며, 오늘 날 유럽연합(EU)을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동력이 되기도 했다. 행사가 독일전역과 유럽, 그리고 세계를 대상으로 인류의 평화를 알리는 차원의 행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뒬멘 - 당신이 내년에 독일에서 실현시키고자 제안한 프로젝트인 '독일통일 20년, 빛과 소리의 반향(反響), 미디어 이동설치미술'에서 나는 그런 이상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고 봤다. 그런데 그 설치조형물에서 둥근 '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김상수 - 여기에서 '공'은 둥글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모니와 화해, 그리고 평화를 의미한다. 또 '공'은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를 뜻하기도 한다. 이 '공' 안에 설치되는 여섯 개의 카메라가 '공'이 베를린으로 굴려지면서 전 과정을 촬영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아주 중요한 건, 이 '공'들이 사람들의 손으로, 사람들의 힘으로만 직접 굴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기계나 모터장치가 아닌, 사람들의 협동으로 '공'은 16개의 독일 연방 각 주에서 출발하여 멀리는 몇 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해 베를린 브란덴부르그 문 앞으로 모여지게 된다.

아우에르스발트(베를린 시 홍보 담당관) -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사람들의 힘만으로 직접 '공'을 굴리면서 베를린으로 오는 의미는? 개개인의 사람들이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 때문인가?

김상수 - 그렇다. 그리고 '공'을 굴리는 것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서 또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 현재 어느 주의 '공'이 어느 지점에서 굴러가고 있는지, 그 상황을 볼 수가 있다. 이동을 하는 동안에 날마다 순간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들을 보게 되고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송하면 움직이는 '공'의 표면에 그 메시지가 영상으로 투사되기도 한다. 멀티미디어가 이동하는 것이다.

2010년 독일통일기념 김상수 프로젝트 '독일통일 20년, 빛과 소리의 반향(反響)' (20 Jahre Wiedervereinigung, Reflexion von Licht und Sound, 2010 Deutschland Projekt des Künstlers Kim Sang Soo)

'미디어 이동설치미술'

'2010 독일통일 20년 김상수 프로젝트 '빛과 소리의 반향(反響)' '미디어 이동설치미술' 기획서 표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예술가 김상수가 독일에 왔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 (20 Jahre Wiedervereinigung, Reflexion von Licht und Sound, 2010 Deutschland Projekt des Künstlers Kim Sang Soo) 는 김상수, 그가 독일 통일 20주년을 맞아 구상한 움직이는 미디어 설치미술이다.
김상수는 2000년 한국의 새로운 예술의 해(New year of art)에 한국의 국가 상징적 좌표인 광화문 경복궁에서 '빛의 사원'이라는 설치미술을 한 적이 있다.
거대한 구체 거울이 중심에 놓이고 사방으로 12개의 시계방향으로 직각의 거울을 세웠던 그 작품은 한국 분단의 오욕과 굴절의 현실을 깨치고 둥근 거울의 빛의 반사를 통해 역사의 '씻김'을 구현하였다.
구체의 거울은 포용과 원융 그리고 화해를 상징한다. 또한 둥글다는 구체의 이미지는 '하나'를 의미한다. 분열과 갈등에서 통합과 조화로운 상태를 담지한다.
16개 주청사앞에 1개월간 전시되고 1개월간 사람의 힘에 의해 베를린 Brandenburgertor으로의 이동되어 1개월간 전시 될 Hessen주의 공.

구체 내부에는 6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이동 중에 독일의 산과 강, 자연, 사람들을 촬영하게 된다.
통일 독일은 16개의 연방주로 구성되어있다. 이번작품에서는 10미터 높이의 은색(silver) 거울 표면의 16개 구체가 동원된다.
16개의 거울은 각 연방주 16개의 주청사 앞에 한달간 전시된다. 전시기간중 시민들은 독일통일 20년의 소감을 핸디폰 문자전송으로 보내어 구체 거울 표면에 문자가 영사된다. 독일의 각주(洲)를 상징하는 문장(紋章)이 찍혀있는 10미터의 구체거울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문자 영상 메시지로 표면이 채워지게 된다.
주청사 앞에서 한달간 전시가 끝난 구체거울은 자동차나 기계동력이 아닌 사람들의 힘에 의해 이동하게 된다.이 설치미술의 하이라이트는 사람의 노동으로 사람에 협동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점이다. 1개월의 이동기간을 통해 이 공들은 Brandenburgertor로 모여진다.이 프로젝트는 미디어(TV, WEB. 독립다큐멘타리스트)를 통해 1개월간의 주청사 앞 전시와 1개월간의 베를린 Brandenburgertor으로의 이동, Brandenburgertor에세의 1개월간의 전시기간 내내 중계, 추적, 기록된다.
이 인공의 미술은 빛의 반향과 울림이 보여주는 독일전역의 사람들에의해 움직이는 연속적인 스펙터클의 미술이다. 그러나 이 스펙터클은 '규모'의 측면보다는 거울의 속성인 '비춘다'라는 소통(communication)의 스펙타클이다. 10미터의 둥근 거울은 비춘다는 의미의 소통이자 다함께 비쳐보이게 한다는 의미에서 참여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독일의 산과 강, 시골길, 도로 등 모든 풍경과 심지어 이동시에 닥쳐지는 여러가지 장애까지 이 프로젝트의 대상이 된다.
이 구체거울은 오직 사람의 손에 의해서 독일의 숲과 강을 건너고 건물들 사이로 길을 따라서 Brandenburgertor로 모여진다.
지정된 날짜에 Brandenburgertor에 모여진 16개의 은색구체거울은 독일통일 20년 역사의 충정과 갱신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시(詩)이자 독일 전역 16개주 공간의 동시적 직조(織組)로 또다른 하이퍼텍스트이기도 하다.
둥근 구체거울의 표면에 쓰여진 수많은 문장들은 독일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있다.
1개월간 Brandenburgertor 앞에서 전시되고 펼쳐지는 16개 구체 거울의 파노라마는 햇빛을 받아 사방의 천공으로 울려퍼져 그 파장들은 빛의 화음으로 되돌아 온다. 이는 독일의 '하나 됨'과 '세계의 하나됨'을 상징한다.

1개월간의 16개 주청사앞에서의 전시
1개월간의 베를린 Brandenburgertor 로의 독일 16개 주 전역에서 이동
1개월간의 베를린 Brandenburgertor 앞에서의 전시

뒬멘 - 우리 베를린 주 만으로는 이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모든 독일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것인 만큼, 2010년 10월 3일 독일통일 기념일을 기점으로 16개의 연방주에서 같이 '공'을 굴리게 되면, 나라 차원의 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 개의 주라도 같이 참여하지 못한다면 이건 의미가 작아지는 것이다.

김상수 - 맞다. 이 프로젝트는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의미가 매우 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이유는, 내가 분단국가인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분단국가의 예술가인 내가, 평화의 메시지를 독일통일을 기해 유럽에, 세계에, 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의가 있다. 이 프로젝트를 끝내면 나는 그 '공'들과 영상들을 한국에 가지고 가서 전시를 하고 싶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독일 전역에서 굴러 와서 모여진 이 멀티미디어 '공'들을 통해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볼 때, 지금 행사로 하고 있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사람들을 단지 관찰자의 입장에서 구경꾼으로 그냥 머물게 하고 하지만, 사실 이 프로젝트 '움직이는 설치미술'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협력과 참여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뒬멘 - 문제는 16개의 연방 정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행사에는 반드시 모든 16개의 주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정말 복잡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자면, 여기 베를린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관련이 있던 5개의 주에서만, 이걸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김상수 - 나는 이 프로젝트를 베를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에 아주 놀라고 즐거워했다. 내가 만났던 어떤 젊은이는 이것에 아주 큰 관심을 가졌는데, 그건 전기나 모터 등을 사용하는 게 아니고,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공'이 굴러가고 옮겨지고 이동된다는 점을 아주 인상 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멀티미디어를.

뒬멘 - 나도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계속 진행시키고 싶다. 이것은 독일의 어느 지역의 차원에서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줄 것이다.

아우에르스발트(베를린 시 홍보 담당관) - 그렇지만 모든 걸 베를린 주나 베를린 시의 차원에서만 진행하는 건 어렵다. 연방정부 차원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뒬멘 - 나에게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구글어쓰(Google Earth)를 통해서 그 공이 굴러가는 것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전 세계의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 공이 베를린 브란덴부르그 문을 향해 더 가까이 오고 있는지, 확실히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식으로 이 프로젝트를 조직하고 진행해야 할지는 아직 확실한 아이디어까지는 나에게 없지만,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공'을 한 달 정도 이동시키게 되면, 누구나 인터넷으로 그걸 볼 수 있으니 참 흥미롭겠다.

김상수 - 문제는 이 '공' 프로젝트가 많은 경비를 들여야 한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뒬멘 - 나는 안정적인 구조에서 이 '공' 프로젝트가 진행되길 바란다. 그래야지만 프로젝트가 제대로 의미 있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문제는 금전적인 부분은 저희가 부담할 수 없는 부분이란 얘기다. 우리는 당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베를린 내의 정치, 행정적인 지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연방 정부를 설득한다거나 16개의 각 주를 이해시키는 부분이나 스폰서 부분은 직접 도울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일단 큰 스폰서가 나서주면 연쇄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고 우리 회사도 나설 수 있다.

김상수 - 나는 준비의 모든 분야에서 가능한 여러분들과 함께 진행시키고 싶다.

아우에르스발트 - 그렇게 하려면 지금부터 빨리 진행시켜야 한다.

뒬멘 - 이 '공' 프로젝트를 현실화 시키려면 먼저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부분의 충당이 있어야 한다. 일단 한 개의 주에서부터 베를린으로 이동시킬 '공' 하나를 먼저 만들고 진행을 하면 어떨까? 그렇게 진행이 되고 나면, 다른 스폰서들이 생길 가능성도 더 생기지 않을까.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베를린 주나 시 자체가 다른 연방 주보다도 경제적으로 불황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주된 스폰서 등이 상당히 부족하다. 물론 연방정부나 로또(Lotto) 등에서 나오는 일부의 금전적인 지원이 있긴 하지만, 지금 이미 시작된 프로젝트가 많은 상황이라 요청을 새로 하더라도 상황이 힘들 것이다. 이미 진행 중인

'도미노프로젝트'를 위해서도 계속 금전적인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금전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여러 아이디어들을 현실화하고 실행시킬 수 있다. 일단 그 부분에서 안정성을 찾으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모아 다른 부분까지도 실행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김상수 - 이 '공' 프로젝트의 진행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겠는가?

뒬멘 - 이 '공'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려면, 먼저 스폰서를 구하고 허가, 미디어를 통한 발표, 카탈로그제작 등을 한 후에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엔 일단 한국 정부에 문화부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독일 정부와 같이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

김상수 - 얘기를 바꾸어 베를린의 문화 예술이 확장 일로에 있다. '베를린 르네상스'라 할까, 베를린이란 도시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뒬멘 -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른 나라나 도시들이 베를린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또 베를린은 긍정적으로 발전해 갈 요소들도 많다. 그리고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고 베를린은 도시의 크기에 비해 현재 3백 5십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이건 다른 나라의 작은 도시의 인구정도여서 더 많은 가능성도 있고, 도시의 발전에 여유가 있다. 이런 요소들을 잘 엮어내는 효과적인 정치가 베를린에는 필요한 때이다. 다르게 보자면 세계화의 의미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베를린이 지난 10년 동안 세계화의 주역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통해 좀 더 흥미로운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김상수 - 베를린의 도시문화의 발전이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베를린 시 전체의 도시 정책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나?

뒬멘 - 베를린은 현재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 사람들로 인해 예술과 문화의 용광로 같다. 예술과 문화는 말하자면 창조적인 경제이다. 그것은 어떤 부분으로 말하면 우연적인 생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과 문화는 누군가의 의도로 인해 조절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분단되어 있었던 이 도시 베를린은 현재는 창조의 도시가 되었다. 이젠 구조적인 인프라를 구성하여 더 많은 창조가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그것이 여러 세계의 것들과 융합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나는 이것이 시간적으로 저절로 변화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노력해야 한다.

김상수 - 한국을 가 본적이 있나?

뒬멘 - 아쉽게도 아직 가보진 못했다.

김상수 - '장벽 20주면 붕괴 행사' 말고는 '문화프로젝트 베를린'은 올해 어떤 계획이 또 있나? 그리고 당신은 장차 베를린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나?

뒬멘 - 올해엔 우리 베를린과 파트너 도시인 이스탄불과 공동으로 커다란 전시 계획이 가을에 있다. 또 베를린은 올해를 '학문의 해'로 정하고 있다. 훔볼트 대학이 200주년이 됐다. 우리는 이것을 중심으로 잡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학문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나는 궁극적으로 이 '문화프로젝트 베를린' 회사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 하나의 문화 정치적인 시스템으로 확고하게 베를린에 기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베를린에서

김상수/ 작가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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