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목욕탕에 욕쟁이가 하나 있는데
내가 그를 호랑이 보듯 피하는 것은
아침부터 귀가 더럽혀질까 봐서다.
그가 한증탕에 들어가자 다들 안 들어가고 밖으로 빙빙 도는데
웬걸,
이 호랑이가 금방 나온다.
옳다 됐다 하고 우르르 들어갔는데
눈썹 시커먼 노인이 홀로 앉아 있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 스토브는 어제 저녁부터 때는 건가, 오늘 새벽부터 때는 건가?"
"새벽부터 때요."
하고 아는 체를 하자
"그래서 열이 안 올랐군요. 그러나저러나 저는 오늘 성공했습니다."
"뭐가요?"
"아까부터 물어봐도 아무도 대꾸를 안 해주더라구요. 심지어 화내고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고. 잘하면 싸움나겠습디다. 그런데 선생님이 대답을 해주시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니 제가 오늘 성공한 거 아닙니까?"
"예에."
"미국 같은 데 가보면 그 사람들은 하이! 하고 인사도 잘하고 대꾸도 잘해주는데 한국 사람들은 안 해요. 동남아 애들은 더하고! 내가 직원을 내외국인 합해서 백 명 가까이 데리고 있지만 얘들이 하도 인사를 안 해서 매일 아침 양옆으로 세워놓고 내가 먼저 90도 각도로 굽혀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그대로 따라 하라고 시켰어요. 한 1년 꾸준히 하다 보니까 아무나 보고 인사를 잘하더라구요."
"......"
"내가 왜 이렇게 인사에 대해서 강조를 하느냐 하면, 인사 잘하는 사람은 이미 인생의 반은 승리했다고 봐야 하거든요. 우리 딸도 어렸을 때부터 동네 어른들보고 꼬박꼬박 인사 잘하더니 지금은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유명한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지만 걔가 원래"
자랑이 딸에서 아들로 번지자,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급기야
"우리 마누라도"
하자 옆에 있던 사출공장 사장이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도 눈으로, 그러게 말입니다 아까 호랑이가 나갈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못 놀겠네요 하고 일어섰다.
다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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