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1955년 이래 10개월(1993~94년 사이)을 제외하고는 54년간 계속된 자민당 시대를 종식시키고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게 됐다. 제1야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교체하는데 성공한 것은 1947년 이후 62년만의 일이다.
일본 공영방송 <NHK>의 개표 방송에 따르면, 중의원 투표가 치러진 다음날인 31일 오전 7시 현재 민주당은 총 480개 의석 중 단독 과반수(241석)를 크게 웃도는 308석을 확보했다.
반면, 여당인 자민당은 119석을 얻어 현재 의석수의 3분의 1 가량으로 쪼그라들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21석을 얻었고, 그 뒤를 공산당(9석), 사민당(7석), 국민신당(3석), 무소속·기타(13석)가 이었다.
민주당이 확보한 308석은 중의원의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고 전 상임위원회에서 여당 위원이 야당 위원보다 많은 절대안정다수 의석(269석)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이는 또한 지난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정권에서 자민당이 얻은 최고 의석 기록(300석) 보다 많은 것이며, 현재 민주당 의석(115석)의 3배 가량을 얻은 대약진이다.
▲ 일본 정치에서 '민주당 시대'를 연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왼쪽)과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오른쪽)이 당선자 이름표에 꽃을 붙여주며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민주당의 승리' 보다 '자민당의 패배'
이에 따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 대표는 일본의 차기 총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토야마는 이날 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 뜻이 마침내 결실을 보아 정권교체를 이루게 됐다"고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반면 자민당의 총재로 패장이 된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자민당에 대한 불만을 씻어내지 못했다"면서 사실상 패배를 선언하고 총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간사장 등 당 3역도 사의를 표명했다.
일본 국민들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집권 능력을 상실한 채 10여 년을 버텨온 자민당에 결국 등을 돌렸다. <아사히신문>은 자민당이 "역사적인 참패"를 당할 것이라고 평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밀어붙이며 소득간·도농간 격차를 확대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 고용불안을 야기한 자민당은 민심의 이반을 극복하지 못했다.
또한 일본인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후임자였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잇따른 중도 사퇴, 그리고 아소 현 총리의 무능에 신물이 난 결과 '바꿔' 열풍에 휩싸인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국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우애' 중시
일본의 새 역사를 쓰게 된 민주당은 '우애혁명'을 기치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뜯어 고치고 새로운 일본식 모델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토야마 대표는 31일 '정권이행팀'을 구성하고 곧바로 정권 인수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그는 내달 15일 경 열릴 특별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하토야마 대표는 또한 예산 낭비 등 자민당 정권의 각종 문제점을 청산하고 민주당 정책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행정쇄신위원회도 출범시키는 등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대외정책에 있어 민주당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총선 결과는 동북아 정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역사 갈등을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어서 한일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긴밀하고 대등한 외교'를 천명하고 있기 때문에 미일관계의 향방도 주목된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이 미일관계를 급격하게 재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당 정권은 또한 자민당과는 다른 대북정책을 취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내년에 참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에 급격한 정책 변화는 어렵다 하더라도, 자민당의 대북 강경책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진전 기미를 보이고 있는 북미관계와 더불어 한반도 정세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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