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가(家)는 26일 성명을 통해 "우리가 깊이 사랑했던 남편이자 아버지, 할아버지, 형제이기도 했던 케네디 의원이 매사추세츠 히아니스 포트에 위치한 자택에서 25일 저녁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케네디가는 "대체할 수 없는 우리 가족의 구심점과 생의 활기찬 빛을 잃은 것"이라며 "그러나 그가 보여준 신념과 낙관주의 인내가 가져다준 영감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DJ 햇볕정책 적극 지지한 '지한파'
소식이 전해진 후 이희호 여사는 미국 대사관을 통해 유가족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케네디 의원의 별세는 저와 저의 가족들에게도 크나큰 상실"이라며 "유가족과 미국 국민들이 그분의 완전하고도 역동적이었던 삶을 기억하면서 위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이어 "저는 고인이 된 제 남편에 대한 케네디 의원의 지원과 친절함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케네디 의원을 처음 만난 이래 최근 서거 전까지 깊은 교분을 맺어왔다. 케네디는 김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노선을 지지하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대북 강경노선을 적극 비판한 지한파 정치인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2008년 8월 그의 뇌종양 투병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에서 "불굴의 의지로 병마를 떨치고 일어나 위대한 정치인으로 재기할 것으로 믿는다"며 쾌유를 기원한 바 있다.
1971년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로 미국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당신은 한국의 존 F.케네디"라며 지지를 표명했던 케네디 의원은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자 구명 운동에 앞장섰다.
1982년 12월 미국 망명 때 김 전 대통령을 위한 환영 리셉션을 열어주기도 했던 케네디는 1985년 2월 김 전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 그의 안전 귀국을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오바마의 후견인…끝까지 건보개혁 입법 도와
에드워드 케네디는 1962년 형인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50년 가까이 의원 자리를 지켜오면서 보건, 인권, 외교 부문 등에서 정치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69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된 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됐으나 여러 스캔들에 휘말린 끝에 대선 후보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줄곧 상원에 있으면서 미국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미 현대 의회사의 산 증인이 되어 왔다.
▲ 지난 4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에드워드 케네디를 만나 포옹하는 장면 ⓒ로이터=뉴시스 |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을 잃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가슴이 무너진(heartbroken)" 심정이라면서, 그의 사망으로 미 정계의 중요한 장(章)이 막을 내렸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케네디 의원이 "위대한 지도자"였으며, 모든 미국인의 시민권을 확대하고 보건 및 경제적 안정을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는 또 "우리 시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상원의원을 잃었다"고 말한 뒤작년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데 대해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케네디 의원은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상원에서 건강보험 개혁 입법안을 표결할 때 사표(死票)를 막기 위해 자신이 사망하면 후임자를 신속히 지명토록 주법 개정을 요청, 최후까지 오바마를 돕는 모습을 보여줬다.
민주당의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의 대부를 잃었다"며 "케네디 의원의 꿈은 건국의 아버지들, 그의 형제들이 꿈꿔온 것과 같으며, 그가 자유주의의 수호자로서 더 이상 포효할 수 없게 됐으나 그의 꿈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아일랜드 평화 정착에도 '역할'
케네디 의원의 타계 소식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애도를 표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케네디 의원이 "병마와 죽음에 직면해서도 그는 일생의 업적을 위해 싸우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그가 "공평함과 정의, 기회의 가치를 위해 헌신한 진정한 공인"이었다고 말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케네디가 "미국 정치에 특별한 헌신을 했으며, 세계에서 미국이 갖는 역할에도 특별한 기여를 남겼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코웬 아일랜드 총리는 "미국은 위대하고 존경받는 정치인을 잃었으며, 아일랜드는 진정한 오랜 친구를 잃었다"면서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코웬 총리는 케네디 의원이 1990년대 중반 북아일랜드 평화 정착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용감하게 일했다"고 평가했다.
그밖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등 중동 지역의 정상들도 케네디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미 공화당 내 인사들도 애도 물결에 동참했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WCVB> 방송에 출연해 "나는 늘 그가 보여준 확고부동한 공적 봉사를 존경했다"면서 애도했다.
그는 케네디 의원이 "미국 상원에서 발전적인 인물"이었다며 "약 47년간 주어진 임무에 응답하는 지도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상원 역사상 의미 있는 장이 막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그는 전 세계에 '상원의 사자(Lion of the Senate)'이자 사회 정의의 챔피언, 정치적 우상으로 알려졌다"면서 애도했다.
케네디 의원의 조카인 마리아 슈라이버의 남편이기도 한 슈워제네거는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경험과 충고를 듣고 도움을 받았으며 성장해왔다"고 덧붙였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은 "정치적 차이점은 있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로널드와 내가 케네디 일가와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를 보고 놀라곤 했다"면서 "테드(케네디 의원의 애칭)와 나는 줄기세포 연구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으며, 그를 동료이자 가까운 친구로 여겼다. 그가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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