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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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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역사 속으로'

[현장] 현충원서 조촐한 안장식…"우리가 그 뜻 이어받도록 하소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저녁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됨으로써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23일 오후 4시 50분께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영결식을 마치고 여의도 민주당사, 동교동 사저, 광화문, 서울광장, 서울역을 거치며 국민의 배웅을 받은 김 전 대통령은 현충원에 마련된 장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유족·측근 등 조촐한 안장식…이희호 여사 '오열'

약 2만 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영결식과 달리 안장식에는 이희호 여사 등 직계 가족과 민주당 관계자, '국민의정부' 국무위원, 동교동계 측근, 장의위원회 위원 등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었던 약 100명 만이 참석해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외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와다 하루키 동경대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오후 4시 50분께 국립현충원에 도착한 운구 행렬은 묘역 하단 도로에 영구 차를 세우고 김 전 대통령의 영정, 훈장을 앞세운 채 태극기가 덮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관을 봉송했다.

앞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국민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이희호 여사도 며느리의 손에 의지한 채 연신 눈물을 닦으며 뒤를 따랐다. 주변에서 탈진을 우려해 이 여사에게 휠체어를 권했으나 이 여사는 이를 거부하고 직접 걸음을 옮겼다. 파킨슨 병을 앓아 거동이 어려운 김홍일 전 의원도 휠체어를 타고 장지까지 함께 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1000여 명의 일반 시민들이 더운 날씨에도 몰려와 먼발치에서 조용히 식을 지켜봤다. 일부 시민은 이희호 여사가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몸도 좋지 않으신 분이…"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행렬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관을 봉송하는 의장대 뒤를 유족들이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김 전 대통령의 유지와 유업을 우리가 이어가도록"

이날 안장식은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진행됐다. 천주교 의식은 함세웅 신부의 집전 하에 진행됐고, 불교는 조계사 주지인 세민스님, 기독교는 이해동 목사, 원불교는 이선종 서울교구장 등이 진행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이기도 한 함세웅 신부는 "저희는 지금 김 전 대통령을 마음에 묻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고인의 뜻을 이어 정의와 통일을 실천하는 평화의 사도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저희 모두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고 큰아들 홍일을 진심으로 보살펴 달라"고 말했다.

또 신군부의 법정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섰던 이해동 목사는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어른의 뜻을 받드는 것 뿐"이라며 "몸은 우리가 헤어지지만 뜻으로 믿음으로 그 어른과 함께 살고 그 어른의 유지와 유업을 우리가 함께 이어가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종교 의식에 이어서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 홍일, 홍업, 홍걸 씨가 연이어 헌화, 분향했다. 또 민주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대표와 국민의 정부 때 장관을 역임했던 인사들, 권노갑, 김옥두, 한화갑 한광옥 등 동교동계 측근, 역대 비서진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하관식이 거행되고 있다. ⓒ뉴시스

▲ 이희호 여사가 가족들과 함께 허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반 사람들의 향나무 관에서 잠들다

6시 분향식을 마치자 국방부 의장대가 김 전 대통령의 영면관을 묘역으로 봉송했다.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든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 등 유족만이 그 뒤를 따랐다. 이들은 안장식에 참석한 내빈이 아래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30여 개의 임시 계단을 올라 하관식을 진행했다.

의장대는 묘역에 이르자 영결식에서부터 영면관을 싸고 있던 가로 5미터, 세로 3미터 크기의 대형 태극기를 풀었다. 이들은 하관 직전 태극기를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 유족에게 전달했다.

향나무로 제작된 영면관은 길이 2미터 , 높이 44센티로 검소했던 김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특별 제작이 아닌 일반 관을 사용했다. 대신 뚜껑 부분인 천판과 옆 부분에는 대통령 문양인 봉황무늬를 금박으로 그려넣었다. 하관식에서는 검은 십자가를 수놓은 흰 천을 덮었다.

영면관 위에 태극기를 올리고 무궁화와 봉황 무늬가 그려진 7개의 상판으로 관을 덮고, 봉분에 앞서 관 위에 흙을 뿌리는 허토 의식이 진행됐다. 허토 의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각에서 가져온 흙이 사용됐다. 이희호 여사가 가장 먼저 카네이션을 헌화했고 이어 장손 김종대 씨와 함께 허토를 마쳤다. 휠체어를 탄 김홍일 전 의원도 직접 카네이션을 헌화했고 유족들도 한 사람씩 허토를 이었다.

김 전 대통령 묘역의 봉분 높이는 2.7미터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현충원 측은 김 전 대통령측이 친환경적인 묘지 조성을 요구해 묘두름돌은 세우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멀리서나마 가는 길 응원하자" …1000여 명 시민들 모여

이날 국립현충원 안장식장 바깥에는1000여 명의 시민들이 몰렸다. 일반 시민들은 안장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하얀 천이 둘려진 식장 바깥에서 삼삼오오 모여 안장식을 지켰다. 이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토했다.

안장식을 지켜보던 허광행 씨는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대선 때 나의 첫 투표에서 한 표를 던졌던 사람"이라며 "현 정부 들어 김 전 대통령이 생각했던 인권의 가치가 소수 1%를 위한 인권으로 변질되면서 고인에 대한 애도의 감정이 북받혀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안장식을 찾은 임모 씨는 "예전에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었는데 노 대통령 서거 이후 현 정부에 할 말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오해가 풀렸다"면서 "이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역주행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대중-노무현 시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65세의 한 할아버지는 "멀리서나마 가는 길 응원해드리려 나왔다"면서 "김 전 대통령은 젊어서부터 고초를 겪었으나 정치 보복이라는 것을 몰랐던 화합의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세상 온갖 고생스러운 일 모두 잊고 편안하게 쉬웠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또 미국에서 유학하는 19살 학생이라는 정모군은 "국민 통합과 민주주의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던 분"이라며 "그 분이 남긴 민주주의 정신 계승하며 살겠다"고 말했고 이창훈 씨는 "누구보다 서민을 사랑했던 대통령이었다"며 "편안히 쉬셨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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