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제재와 도발로 치달아왔던 국면을 협상 쪽으로 돌리겠다는 북한과 미국의 의중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 2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태국 푸껫에서 한 차례 기싸움을 하며 대화의 문 앞에 서 있음을 알렸던 두 나라는 주말 동안 의미 있는 말을 한 번 더 주고받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북한이었는데, 방식이 특이했다. 뉴욕에 있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신선호 대사가 24일 기자간담회 형식으로 일부 외신기자들을 불러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례적인 모양새로, 준비된 메시지를 전한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한 제스처로 풀이됐다.
신선호 대사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공동의 관심사에 관한 어떤 교섭에도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 미국과 양자 대화를 재개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신 대사의 메시지는 북한 외무성의 리흥식 국제기구국장이 23일 태국에서 내놓은 것과 똑같았다. 리 국장도 "우리는 절대로 대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북한이 로켓 발사와 핵실험 이후 협상에 나설 수도 있음을 이처럼 분명히 밝힌 건 그때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북한의 같은 메시지가 잇따르자 언론 보도도 심상치 않았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6일 북한이 '뉴욕 채널'을 통해 미국에 직접 대화를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CBS> 방송은 신 대사의 말에 대해 북한이 대화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오바마 미 행정부에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3일 리흥식 국장의 발언이 나온 뒤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벽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한다면 완전한 북미관계 정상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보장, 상당한 에너지·경제 지원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19일 서울에서 말한 '포괄적 패키지'의 내용물을 공개한 것이다. 북한의 선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북한도 마냥 무시하긴 어려운 내용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유엔 대표부를 통해 포괄적 패키지에 대한 관심을 한 번 더 드러낸 셈이다. 더군다나 유엔 대표부는 현재 북한에 구속된 미국인 여기자 문제를 북미가 협의하고 있는 뉴욕 채널의 한 측이다. 메시지 전달 효과만큼은 만점인 곳이다.
북한이 이렇게 나오자 클린턴 장관은 일단 원칙적인 말만 했다. 26일 <NBC> 방송 '미트 더 프레스' 프로그램에서 "북한이 협상에 복귀하길 여전히 희망한다"면서도 복귀 자체만으로는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 이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태국 발언 보다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난 듯 보이는 클린턴의 말은 북한이 최근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오는 걸 보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5월 25일 2차 핵실험 이후 도발적 행동을 조금씩 줄여 왔다는 사실을 감지하면서 '포괄적 패키지' 같은 개념을 준비해 왔다. 따라서 8월이 되면 여기자 관련 대화를 더 깊숙이 진행시키면서 다른 문제로까지 대화 물꼬를 틀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자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특사 방문을 요구하며 빠른 해결을 시사할 경우 물살은 더 빨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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