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직권 상정이라는 일촉 즉발의 위기에서 여야가 다시 막판 협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7시간의 마라톤 회의 결과 속속 전해지는 내용은 적지 않게 실망스럽다. 본질을 비껴가는 양보안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노력을 하였으나 합의가 어려웠다'는 한나라당식 명분 쌓기의 벽돌만 더 모아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한나라당 '명분' 훼손된 지 오래…'협상'이 아니라 '포기'가 맞다
지난 12월 촉발되어 현재까지 이어진 미디어법 논의를 잠시 돌아보자. 언론운동진영은 초기부터 이 법안의 본질이 '재벌방송, 조중동방송 만들기'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는 보수권력을 공고히 하고, 여론의 다양성을 훼손하며,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소리를 높여왔다.
현재 이 모든 주장은 사실로 증명되고도 남는 수준이다. 모든 언론은 대기업과 보수신문의 방송뉴스 진출 허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김형오 의장조차 법 개정의 핵심 쟁점은 '조중동의 방송 진출'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박근혜 전 대표의 중재안도 결국 여론 다양성 훼손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막대한 비용을 투여해가며 '일자리 창출' '산업 활성화'라는 법안 홍보에 열을 올려왔으나 주변에서조차 동의를 구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국민은 법안 내용을 모르니' 여론조사조차 불가하다더니, 쟁점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위치에서 터져 나오는 반대의 목소리는 과연 무슨 논리로 방어할 것인가? 더구나 최근 폭로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 조작 사실로 그나마 남아있던 근거 자료의 기반마저 완전히 붕괴되었다. 도대체 더 이상 무슨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 정도 되면 한나라당은 그동안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것에 대해 사과하고, 법안 처리 자체를 유보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법안을 폐기하기는커녕 매체 점유율 합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명분을 앞세우며 기존 안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협상에서 기대할 것이 남아있나?
'합의 처리'와 '살태 조사'만이 협상 대상이어야
상황이 이러한데 한나라당의 명분 쌓기나 거들어주면서 말씨름을 이어가는 민주당의 태도에도 적잖은 실망감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근거자료조차 없는 상황에서 소유 지분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근거 자료 조작 성명은 왜 발표했으며, 단식과 농성을 이어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여야 협상은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식의 협상이 아니라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두 가지 원칙에 합의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중 하나는 반드시 합의 처리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반대 여론이 높은 만큼 그 우려를 해소시킬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충분하게 논의를 모아간다는 전제다.
다른 하나는 법 개정에 앞서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신문의 방송뉴스 진출 허용에 앞서 신문시장 실태, 여론시장 실태를 조사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제대로 된 근거자료 하나 없이 어떻게 여론 다양성을 운운할 수 있나?
실태조사로 '근거' 만드는 일이 유일한 대안
틈만 나면 여론 독과점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실태조사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여당의 무책임함을 드러낼 뿐이다. 보수 신문의 방송 진출이 여론다양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는 측이나 여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의 간극을 좁히는 데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다.
모든 근거가 사라졌음에도 허공에 뜬 수치로 공방을 거듭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국회의 수준을 의심케 만드는 일이다. 제대로 된 근거를 만드는 일부터 합의하는 것이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는 유일한 대안임을 여야는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