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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 발언의 이중성, 퇴로 열기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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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캠벨 발언의 이중성, 퇴로 열기 위한 첫걸음"

[정세현의 정세토크] '포괄적 패키지' 표현에 담긴 美의 속내

남북 교류·협력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무장을 도와줬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지난번 정세토크에서 반론을 제기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스톡홀름에서 또 그런 취지의 말을 했기 때문에 그 얘길 좀 더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마침 당시 <조선일보> 기자의 칼럼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도 200만 톤 정도의 대북 식량 지원을 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 칼럼은 핵무장 지원론은 아니고 투명성을 문제 삼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만...어쨌건 미국도 많이 주었더군요.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북한에 지원한 만큼 주었으니까.

중국과의 교역에서도 북한은 사실상 매년 한 7~8억 불 정도의 흑자 아닌 흑자를 누려 왔습니다. 조중무역에서 중국은 기장무역이라고 해서 북한한테 받아야 할 외상값을 장부에 적어놓고 무역을 계속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그걸 탕감해주는 방식으로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지난 10년 동안 적게는 연간 2~3억 불, 보통은 7~8억불 외상이 깔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역은 계속되었습니다. 작년에는 12억 8000만 불 외상을 졌습니다. 그 정도의 돈을 중국이 사실상 북한에 지원해왔다는 얘깁니다.

남북교역과 협력을 통해 북한이 이득을 봤다는 액수를 보수 언론이 챙기고 챙겨서 종합한 게 10년 간 69억불이에요. 인터넷 매체 데일리엔케이에서 그런 통계를 냈더라고요. 현금 29억 불, 현물 40억 불 정도가 넘어 갔다고. 현물 지원 속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개발을 위해서 길과 땅에 깐 것도 다 포함시켰죠. 어쨌든 불리고 불려서 얘기한 걸 그대로 인정한다 쳐도 1년에 6억9000만 불이 간 거 아닙니까?

그 정도라면 중국도 그만큼 북한에 보태줬다는 거죠. 거기다가 미국에서도 200만 톤 쌀이 갔으니까 우리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간 준 거랑 비슷합니다. 중국과 미국에서 이렇게 갔는데 거기엔 눈 감고 우리의 대북지원이 핵무장에 쓰였다는 건 북한의 대미, 대중관계를 너무나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핵무장 비용 전용론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반론이 바로 지난주에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미 의회 입법조사국(CRS)에서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를 연구한 래리 닉쉬 박사가 14일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이란과의 거래만으로도 연 20억 불 씩을 벌고 있다는 것을 미국 정부가 알고 있다는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이거 어떻게 된 거죠?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한 우리 대북지원의 핵무장 전용론, 설명력 있습니까?

또 인도 델리대학에서 한국학을 하는 산디프 미슈라(Sandip Mishra) 교수란 분이 최근 한국을 다녀갔어요. 한반도 문제를 전문으로 보는 분인데, 이런 얘기를 했어요. '햇볕정책 기간 동안에 북한이 핵 개발을 한 걸 가지고 한국에서 자책론이 나오는데, 제3국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된다. 햇볕정책을 안 했으면 북한은 핵 개발도 안 하고 미사일 개발도 안 했겠는가?' 핵과 미사일 문제는 햇볕정책 이전부터 북한의 외교 카드로 개발돼 왔는데 어떻게 그런 얘기가 나오냐는 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북한에 10년간 돈이 많이 갔는데 북한의 변화는 없었다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 한 마디만 더 보탠다면...미국의 7월 5일자가 뭐라고 했냐면...지난 10년 동안 북한에서 개혁이 진행됐는데, 최근에 북한의 군부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중단돼버렸다. 이런 얘길 했단 말예요. 이건 무슨 소리냐...뒤집어서 말하자면 지난 10년 간 북한에도 상당한 개혁개방,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말 아닙니까?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은 뭐하는 거죠? 그런 정보가 있다면 대통령한테 입력을 시켜줘야 되거든요. '국제사회에서도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수위를 조절해서 발언하시라.' 이런 건의를 해야죠.

대통령은 폴란드에 이어 스웨덴에서도 '대북지원이 핵개발에 쓰였다는 의혹이 당연히 제기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했는데, 래리 닉쉬 박사하고 가 다 반박을 한 셈이 됐어요. 그러니까 이 정도 나왔으면 대통령도 그런 얘기 이제는 거둬들여야 합니다.

김영남 '6자회담 불참' 발언은 '조건절'을 보라

다음 얘기로 넘어갑시다. 지난주에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집트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서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는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또 대서특필이 되면서 뻔한 논리로 빠졌습니다.

'북한이 회담에 돌아오지 않을 거고, 그러니까 핵은 처음부터 협상카드가 아니었다. 북한의 본심은 핵보유였다. 북한이 핵보유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니 우리도 핵무장을 하던지, 아니면 대북제재를 더 강화해야 한다.' 뭐 이런 거죠.

그런데 북한의 말을 해석할 때는 그들 특유의 화법을 주목해야 돼요. 왜 그런 화법을 쓰는지는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내 생각엔 어떤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상대 쪽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상대방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니까.

2002년 말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구실로 대북 중유 지원을 중단했을 때도 북한은 '미국이 이러저러한 식으로 나가기 때문에 북한도 제네바합의를 지킬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김영남 위원장은 긴 전제를 달았습니다. "주권과 평등에 대한 존중 원칙이 부정되는 곳에서는 대화가 있을 수 없고 협상도 있을 수 없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 원칙을 포기했기 때문에 (회담은) 영원히 끝났다."

여기에는 우리 정부도 책임이 있는 게...6자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전에 5자회담을 하자고 했어요. 그 발상 자체가 북한을 동등한 상대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북한은 처벌 대상이고, 나머지 5국은 북한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처럼 비춰진 거죠.

특히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이행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 미국, 일본이 그야말로 스크럼을 짜고 덤비는 그런 상황에서 5자회담을 하자고 하니까 북한은 제재를 위한 회담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6자회담에 안 나가겠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하지만 김영남 위원장의 그 말은 뒤집어서 읽어야 합니다. 즉, 주권과 평등을 존중하는 입장이 분명해진다면 회담에 나가겠다는 말인 거죠. 화법이 원래 그래요. 그 사람들은 자기네 말이 거두절미돼서 악용될 수 있다는 걸 별로 인식 안 합니다. '이 말은 이런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토를 달아주지도 않죠.

2002년 10월 HEU(고농축우라늄) 문제를 가지고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빌미도 어쩌면 북한의 화법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어요. 북한은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평양에 갔을 때 상당히 논리적으로 말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주권국가이고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한 마당에 미국으로부터 간섭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HEU(고농축우라늄)프로그람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가질 수 있다. 왜 시비를 거느냐.' 이렇게 얘기한 거죠.

그런데 그걸 나중에 미국이 거두절미한 뒤에 'HEU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시인했다면서 대북 압박을 시작했죠. 그런 화법을 고치라고 해서 고치지도 않을 텐데, 북한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면 북한의 화법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6자회담은 끝났다"는 결론만 부각시키는 것은 옳지 않아요.

▲ 한국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연합뉴스

미국, 마침내 궤도 수정에 들어간 듯

그런데 다행이도 미국은 이제 그런 북한 화법에 조금은 익숙해졌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바마 행정부에서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된 커트 캠벨이 18일 서울에 들어오면서 하는 말을 보니까 그래요.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하는 '투 트랙' 얘기를 했고, 또 북한하고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ive Package)로 협상을 하겠다는 표현을 썼단 말예요.

그건 북한을 6자회담으로 불러내겠다는 말이고, 그걸 위해서 인센티브를 띄우는 거라고 생각되는데...그렇다면 협상 국면으로 곧 들어가겠다는 신호라고 봐야 합니다. 일본도 자민당이 정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북미가 협상으로 가는 걸림돌 하나가 없어진 셈이 되죠.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는 북한의 진의를 잘 읽어서 미북 양자협상, 또는 6자회담이 본격화되는 상황을 전제하고 대북정책을 서서히 수정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영남 위원장이 6자회담은 끝났다고 하면서 붙인 전제나, 4월 14일 북한 외무성이 성명을 발표해서 6자회담에는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 얘기나 다 같은 논리입니다.

4월 14일 외무성 성명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규탄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반발로 나왔어요.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자주권 존중과 주권 평등의 정신은 6자회담의 기초이며 생명인데, 로켓을 발사하니까 의장성명으로 우리를 비난했다. 결국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권 존중과 주권 평등의 정신을 짓밟은 거 아니냐. 그런 사람들과 만나서 무슨 회담을 할 필요가 있느냐.' 이런 말이었습니다.

이번 김영남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권과 평등이 존중되면 6자회담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캠벨은 그 속내를 읽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캠벨이 차관보에 취임하기 전에 즉, 대북정책의 실무책임자가 없던 시절에는 부시 정부에서 대북 강경책을 주도했던 실무자들이 국무부에 그대로 남아서 지휘자 없이 실무 차원에서, 관성에 의해 정책 건의가 이뤄져 온 바람에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대북 발언이 강하게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캠벨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궤도를 수정하는 조치를 시작한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봅니다.

우리 정부의 실무자들도 그렇고, 취재하는 기자들도 그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저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그쪽으로 가기 위해 궤도수정을 해야 돼요. '국제사회가 제재를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만 북한과 잘 해보자고 할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은 이제 옛날얘기가 돼버렸다 이겁니다. 그것도 캠벨의 한 마디에....입맛이 씁쓸하지만 이게 국제정치의 현실입니다.

청와대나 정부의 참모들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나도 정부에 있었고 청와대 생활도 4년 가까이 해봤지만,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은 대통령이 실수를 하지 않도록 챙겨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24시간 깨어있어야 해요. 새벽부터 나와서 밤늦게 까지 일하는데...하루가 다르게, 시간 단위로 변화되는 상황을 체크해야 됩니다. 정치만 생물이 아니라 국제정치도 외교도 생물이에요. 오전 다르고 오후 다릅니다.

미국의 발언에 중국이 따라 움직이고, 북한도 반응을 보이려고 하는 그런 상황에서, 왜 자꾸 구문(舊聞)이나 편향된 정보만 대통령한테 입력을 시켜가지고 국제 정세에 어두운 그런 대통령으로 비춰지도록 하느냐 이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문책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빨갱이 꼭두각시? 현 정부 요직 인사들은 뭡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합시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는 가급적 안 하려고 하는데 지난주에 해도 해도 너무한 말을 들어서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됐어요.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부산에서 지난 10년 집권세력은 빨갱이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다고 하는데...이건 남북관계, 대북정책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말을 해야겠습니다.

요즘은 자기네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그러고,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거 계속 이렇게 해야 됩니까? 친북하면 반미라고 단정하는 거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친북과 친미는 얼마든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북한하고 잘 지내면서도 미국하고도 아무런 불편이 없었어요. 그런데 반북을 안 하면 친북이라고 하고, 친북이니까 반미다, 이런 흑백논리, 단순논리...우리 국민들도 이제 이건 좀 구분해야 합니다.

민족화해를 위해서 북한을 적당한 수준으로 포용하면서 한미관계도 잘 꾸려나가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분단국가의 지도자들이, 또는 통일·외교·안보 관료들이 가져야할 입장이고 관점입니다. 정치권 지도자들도 그런 정도의 식견은 있어야 해요.

또 좌파 좌파 그러는데, 아주 철두철미한 신자유주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싸그리 몰아서 좌파라고 그러더만? 그것도 참 국제사정을 모르는 얘기예요. 그런 식으로 한다면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은 공산화가 됐다고 규정해야 합니다. 영국은 지금 노동당이 십 몇 년을 계속 통치하는데, 그럼 거긴 공산국가입니까?

지난 10년간 집권했던 세력을 빨갱이 꼭두각시라고 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분들이 이 정부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자리에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도 그런 건가요?

한승수 총리,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 하신 분입니다. 그 자격으로 유엔 총회 의장까지 했어요. 그것도 김대중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 했습니다. 빨갱이 꼭두각시라서 그런 겁니까? 윤증현 재경부 장관,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장이었습니다. 지금 청와대 경제수석, 김대중 정부에서 재경부 차관하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초대 산자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그분도 빨갱이의 꼭두각시입니까?

왜 그렇게 자기 발등을 찍는 소리를 하죠? 반북 아니면 친북이고, 친북이니까 반미다...서민과 소외된 계층을 옹호하고 보살피자고 하면 좌파다, 좌파니까 빨갱이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또 한나라당의 그 의원은 "좌파는 80%의 섭섭한 사람을 이용해 끊임없이 세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던데, 그건 80%가 이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거 아닙니까?

이 정부는 20%만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거고, 80%는 야당에 기대를 갖고 있다는 얘긴데...스스로 제 발등 찍는 소리를 자체적으로 거르지도 않나요? 그 국회의원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라 국민들만큼은 그런 단순논리에 빠지지 말자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우리가 10대 경제 대국이었는데, 현 정부 들어서 15등으로 떨어졌지만...우리 국민들은 그 정도의 경제력에 걸맞게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수준 떨어지는 얘기를 하면...아이고 그만합시다.

- 캠벨 차관보는 "북한이 중대하고 불가역적인 조처를 취한다면 북한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포괄적 패키지'라는 표현이 처음 나온 것은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의 선(先) 행동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궤도 수정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 '대화와 제재의 투 트랙 접근'을 말했는데, 북한은 '대화와 제재는 병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합니다. 미국이 변했다고 하는 건 좀 이르지 않나요?

나는 이렇게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커트 캠벨이 얼마 전하고 확 바뀐 얘기를 하면 그것도 자기 부정입니다. 퇴로를 조금씩 열어야죠.

4월부터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 쪽으로 가는 것 같았어요. 북한이 핵보유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고 강경하게 나갔다는 해석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북한이 5월에 핵실험까지 하니까 미국도 사실은 물러서기 어렵게 됐습니다. 제재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안보리 결의 1874를 만들어 놨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협조를 하지 않으니까 솜방망이가 되어버렸단 말예요.

근데 그렇다고 바로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없잖아요? 두세 달은 결의를 이행하는 척 해야죠. 최소 두세 달은 표정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캠벨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안 변한 것 같은 말을 하는 것, 소위 '이중성'이 나오는 건 그런 상황 때문이라고 봅니다.

캠벨 차관보는 이번에 동아시아를 돌고, 이번 주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겁니다. ARF에서는 외무장관급에서도 뭔가 조율을 하겠죠. 그 뒤에 '포괄적 패키지'의 내용이 나올 겁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번에 그런 걸 깔아놓았다는 건 궤도 수정을 하기 위한 일종의 신호입니다. 북한에도 그런 강한 메시지가 나가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여기서는 북한도 잘 해야 합니다. 상황 관리를 잘 해야 해요. 미국이 "정말 이제 안 되겠구나" 라는 식으로 포기하도록 만들지 말라 이거에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리언 시걸 박사가 미국의 대북협상 패턴을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이 도발적인 행동을 하면 미국은 처음에는 'denial' 거부를 하고, 그래서 북한이 더 강수를 두면 미국은 'anger' 분노를 합니다. 그러다가 북한이 더 강하게 나가면 결국은 'bargaining' 협상으로 들어가는데, 북한이 또 말을 안 듣고 계속 강수를 두면 미국은 'depression' 좌절을 하고, 그러다가 막판에 가서는 국제정치적 고려나 국내정치적 이유 때문에 결국은 북한이 해달라는 것을 다 수용하는 'acceptance'가 나타났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도 이 다섯 단계를 그동안 두세 바퀴 돌아 봤어요. 오바마 정부 출범해서는 그동안 'denial'과 'anger' 단계를 거쳐서 캠벨의 동북아 순방을 계기로 다시 'bargaining' 협상으로 들어가려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협상에 들어가도 'depression' 좌절하는 단계가 또 올 겁니다. 그러나 결국엔 'acceptance'로 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왜? 미국은 내년 5월에 NPT 검토회의를 주도해야 합니다. 그에 앞서 3월에는 핵보유국 정상회의를 하려고 합니다. 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봐서, 러시아를 겨냥해 폴란드·체코에 구축하려던 MD(미사일 방어망)를 지금 전면 재검토하고 있어요. 사실상 포기했다는 거죠.

또 미·러간에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도 협상을 시작했지, 오바마가 말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서....이러는 마당에 미국이 퇴로를 찾지 않을 수 있겠어요? 북한을 놔두고 그게 됩니까? 이란을 컨트롤하는 데는 러시아의 힘을 빌리고, 북한을 컨트롤하는 데는 중국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데, 그럼 이제 미국이 사인을 내놔야 합니다. '포괄적 패키지'가 구체적으로 나오면 중국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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