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1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거꾸로 가는 방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토론회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전면적 통제와 검열이 방송 프로그램 콘텐츠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그는 "각 프로그램에서 치명적인 독립성, 자율성의 실패가 나타나고 있고 제도적 실패, 낙하산 인사의 문제보다는 이로 인한 대중의 지지 철회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적 방송 콘텐츠의 쇠락, 심각한 지경"
전규찬 교수는 △청와대, 검찰, 방송통신위원회, 방통심의위원회, 자본 권력 등의 '치안 제' △이러한 외부적 통제와 밀통하는 방송사 내부의 '관료 통제' △ '관료 통제'와 '치안 통제'의 결과로 현장 기자와 PD의 '자체 검열'을 공영방송을 두고 벌어지는 '통제 및 검열의 메커니즘'으로 꼽으면서 "통제 상황에서 비롯된 저널리즘의 위기는 공영방송이 자임하고 사회가 위임한 '공공성'의 위기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KBS를 중심으로 팽배한 반동적 분위기가 매우 위험스럽다"면서 "KBS는 독립성을 찬탈코자하는 권력과 정권의 폭력적 일방주의를 안이하게 방관하면서 조직의 이득을 챙길 것인지, 아니면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제작 자율성을 복구하고 서비스 정당성을 회복하는 '인정 투쟁'에 나설 것인지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할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KBS의 프로그램 가운데 <시사기획 쌈>을 놓고 "KBS의 국영 방송화를 입증하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미디어비평>도 "양시양비론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고 질타했다. 그는 "문제는 KBS 저널리즘의 붕괴가 보도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KBS스페셜>, <추적60분> 등 'PD저널리즘'도 대중의 비판적 정치의식 및 사회적 모순을 기피함으로써 사회적 교통 가능성'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라고 질타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편이한 해법, 확실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자율적 생산 활동으로 자율적 방송 문화를 재구축하는 일, 권력 네트워크에 의한 다각적 통제 메커니즘 극복 노력을 방송 현장 제작자들이 스스로 행하는 것을 제언할 수밖에 없다. 자율 의지를 확고히 하고 외부와 연대·연합의 네트워크를 맺는 것 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 "거꾸로 가는 방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전규찬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 |
"KBS, 교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 통제 이뤄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PD와 작가들은 이런 지적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통제에 갇힌 무기력한 현실을 토로했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지금 우리가 가장 크게 실패한 부분은 노조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자, PD가 보도위원회, 편성위원회 등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편성규약은 그 상부구조인 노조가 제작자 의견을 대변할 의지가 없다보니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고 밝혔다.
김덕재 협회장은 "KBS PD들이 일선에서 마주치는 제작 환경도 자율성을 극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고발했다. 그는 "과거의 경우 거의 3단계 정도의 결재면 의사 결정하고 제작을 추진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3배 정도, 좀 복잡하면 10단계까지 결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 때문에 많은 제작자들이 제작 과정이 아니라 회사와의 논의, 기초적인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대부분 지쳐 나가떨어지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협회장은 "이러한 통제에도 제작자가 '고집'을 부리다보면 이유 없이 예산이 깎여 도저히 제작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또 '심의'도 언어 사용 등의 문제가 아닌 방향성이나 내용에 대한 심의가 많이 이뤄진다"며 "굉장히 교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는 "전 교수가 지적한 '자체 검열'은 언론인으로서 자세가 부족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러한 작동 메커니즘 속에서 일을 할 수 없어서 생긴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MBC, 정부·수구언론의 줄기찬 공격에 '내부 균열' 생겨"
문화방송(MBC)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오동운 MBC PD는 "MBC는 정부 권력, 수구 미디어 권력 등이 <PD수첩>, <100분토론>, <뉴스후> 등 특정 프로그램과 김미화, 손석희 등 특정 진행자의 성향을 '좌빨', '빨갱이' 등으로 왜곡시켜 공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러한 공격은 각각의 프로그램과 진행자뿐 아니라 다른 제작자들에게도 위축 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 PD는 1년 넘게 이어진 '공격'이 MBC 내부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이런 공격이 길어지면서 타깃이 된 이들이 소외와 고립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 역시 공격자이 노리는 목표인 듯하다"며 "검찰의 <PD수첩> 압수 수색 시도를 MBC 전체 구성원이 막아낸 것은 정당성과 신뢰를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나 1년 가까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경영진과 제작진 일선, 부문 간, 세대 간 심리적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PD수첩>의 경우에도 끊임없는 수구 언론의 왜곡된 기사가 반복되면서 '<PD수첩>은 결함이 있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설정되게 만들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구성원 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과거에는 일상적이던 의견 교환이 프로그램 압박, 감시, 검열을 의식하게 되고 부딪히는 증폭 효과로 나타나게 됐다"고 진단했다.
'프리랜서'인 작가들 역시 전면적인 방송 통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재홍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는 "요즘 방송 작가들은 김은희 작가에게 가해진 '마녀 사냥'을 통해 법을 가장해 불법과 폭력을 작가에게 가하는 '파시즘'의 사례를 목격했다"며 "예전엔 어떤 아이템을 잡는 것이 중요한가,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한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떤 아이템을 잡아야 문제가 없을까'를 스스로 검열하게 됐다"고 고발했다.
정재홍 이사는 "제도도 문제이나 결국 사람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어떤 국장이 와서 '저 작가는 통제가 안 된다, 말을 안 듣는다'식으로 하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며 "그래서 방문진이나 사장, 국장에 대한 인사가 잘 검증된 가운데 들어오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힘들다'는 불평이 전부인가…밥값 좀 하라"
방송 현장에 있는 제작진들의 다소 무기력한 분위기에 시민사회에서는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를 던졌다.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제작진들의 기본 결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계신 분들이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임에도 자각이 없다"며 "민주주의가 전면적인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제작자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끝까지 고민하고 있는가에 회의적"이라고 질타했다.
강혜란 소장은 "제작자들은 현장에서 외부 세력과 경영진의 '딱지 붙이기'에 따라 자기 검열을 하거나 '내가 문제일지 모른다'라는 혼돈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옳다면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 있는 모습들이 하나하나의 사례로 축적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제작자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어떤 연대의 노력도 의미가 없다"고 질타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도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PD들의 불철저함에 분노한다. 밥값 좀 하시라.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혀서 접는다고 할 수 있느냐"며 "자기들이 힘들 땐 '연대'를 말하고 잘 나갈 때는 '방송은 우리 것'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힘들면 시민사회와 시청자와 연대하고 같이 뚫고 나와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했느냐"고 질타했다.
그는 "이러한 지상파 구성원들을 믿고 '지상파 방송 사수 투쟁'을 해야 하는지 정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본인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경영진과 이사회와 노동조합이 썩었다면 본인들이 나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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