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의 숙원 사업인 '수신료 인상'을 두고 한나라당과 이병순 사장 등 KBS 경영진, KBS노동조합의 '3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는 모양새다. 13일 이병순 사장은 '수신료 현실화 본격 추진'을, KBS 노동조합은 '공영방송법 쟁취 본격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KBS는 대표적 공영방송"이라며 이에 호응했다. (☞관련 기사 : 안상수 "공영방송법, 여당에서 다뤄야")
KBS "3년만의 흑자, 수신료 인상해야"…한나라당 "오케이"
KBS는 13일 "경비 절감 등 지속적인 경영 개선 노력으로 올 상반기 32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며 "이같은 흑자는 지난 2006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KBS는 "2009년 상반기 경영 수지를 점검한 결과 수입 6338억 원, 비용 6000억 원으로 세전이익 338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KBS는 '친 정권 방송', '정권 우호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은 데 이어서, 최근엔 비정규직 대량 해고에 앞장서면서 시민사회와 언론계로부터 '공영방송 맞느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그러나 KBS는 이런 비판은 외면한 채 '경영 흑자'를 "수신료 인상의 도덕적 명분으로 삼겠다"는 주장이다.
KBS 이병순 사장은 이날 상반기 수지동향 회의에서 "경영 개선과 흑자 전환은 KBS 수신료 현실화의 가장 실질적인 기반이자 도덕적 명분"이라며 "이를 국민과 시청자의 공감과 국민적 동의의 발판으로 삼아 하반기에는 수신료 현실화 추진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현행 방송법이든 이른바 공영방송법이든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신료 현실화의 논리와 공감대 확산을 위한 절차 점검과 설득에 나서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다음날 안상수 원내대표는 "국가 정체성을 담보하는 대표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회의 중심추 역할을 하고 있다"며 KBS와 한나라당의 '각별한 관계'를 과시했다.
한나라당 공영방송법 '독소 조항' 가득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위원장 정병국)가 지난 2월 밑그림을 내놓은 공영방송법 제정안은 △KBS1TV, 2TV, EBS를 공영방송으로 규정하고 △공영방송은 광고 수입이 전체의 20%를 넘지 못하게 하며 △재원의 80%는 수신료로 운영하고 △사장은 '공영방송 경영위원회'를 통해 선임하는 등의 내용으로 알려졌다. 당초 한나라당은 '2월 중 발의'를 예고했으나 여론의 반대가 거세자 일단 물러선 상태다.
이러한 '공영방송법'에는 '수신료 인상'이 전제된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KBS 노사가 인건비를 절감하고 퇴직금 누진제를 없애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자구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며 "방송 광고 시장이 갈수록 축소되는 상황에서 수신료는 1981년 2500원으로 정해진 이후 29년간 단 한차례도 현실화 된 적이 없다"며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거론되는 수신료의 인상 수준은 4000원 정도. 정병국 의원은 지난해 "1단계로 4000원 정도로 올려 재원의 60% 정도를 충당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5000원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라고 구체적인 범위를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공영방송법은 △KBS와 EBS만을 공영방송으로 규정해 'MBC 사영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KBS에 대한 정치권의 간섭을 제도화 할 수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KBS노조는 △특정 정당 추천 비율 25% 제한 △수신료-광고 비율 탄력적 운영 등 '독소 조항'을 뺀 "KBS 민주적 지배구조 확보와 공영성 강화를 위한 안정적 재원 구조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KBS노조는 미디어법 반대 총파업을 한다? 안한다?
문제는 '신문-방송 겸영 허용', '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 관련 법의 통과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공영방송법' 통과와 '수신료 현실화'를 공언하고 나서는 것이 언론계의 반대를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일단 KBS 노조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직권 상정을 시도할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며 13일부터 사실상 총파업 모드에 들어간 상황. 강동구 KBS 노조위원장은 "KBS 노조는 앞으로 KBS 경영진이 공영방송 KBS를 살리겠다는 명확한 의지와 행동을 보일 때까지 강도높은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이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미디어악법 날치기 저지를 위한 대외 투쟁도 가열차게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KBS 노조는 전국언론노조와 같이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시도할 때'를 파업 돌입 시점으로 잡고 있으나 언론노조와 일정 공조 등 특별한 연대 움직임은 없는 상황. 또 언론노조는 "미디어 악법 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KBS 노조는 "공정방송법 쟁취"에 비중을 싣고 있어 시각차도 있다.
이 때문에 언론노조에서는 KBS 노조의 언론계 총파업 동참 수준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언론노조 문화방송(MBC) 본부 관계자는 "KBS노조는 국회에서 공영방송법이 상정 혹은 추진이 될 경우 파업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며 "KBS 노조 관계자들이 찾아와 '연대'를 제안했으나 파업의 목적이 너무 달라 무산됐다"고 밝혔다.
류성우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KBS노조가 내세우는 '정권으로부터의 독립' 등의 주장은 동의할 만하나 과연 KBS노조가 내부적으로 '공정 방송', '편집권 독립' 등을 위해 얼마나 싸우고 있느냐를 보면 이러한 주장의 진정성에 회의적"이라며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통과가 목전인 상황에서 전술적으로는 KBS 노조와의 연대가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KBS 노동조합은 이러한 시선에 반발하고 있다. 최성원 노조 공정방송 실장은 "MBC나 YTN 등 다른 방송사에 비해서도 KBS 노조는 '공정방송'과 '편집권' 독립을 위해 가장 가열차게 싸우고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 우리 처럼 파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쪽도 없을 것"이라며 "KBS 노조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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