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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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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디어법,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미디어악법 물렀거라] 법 개정의 비정상성과 민주주의의 위기

불통과 허언, 그리고 숫자의 유희들

다수의 언론학자와 지식인, 언론인들을 포함한, 이미 수많은 이들이 그간 입술이 부르트도록 지적해왔듯이, 현재 정부와 여당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미디어 관련 법안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법안은 졸속으로 기안되고 정치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외면적으로 정부와 여권이 강조하고 있는 민생이나 경제회생과도 실질적으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려하던 대로 정치권력은 이제 더 이상의 의견수렴과 숙고 그리고 사회적인 합의 도출 등은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국회에서의 우월한 숫자를 무기로 조만간 이 문제적 법안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정부 들어서 무리수를 동원한 정연주 한국방송(KBS) 전 사장의 해임, 문화방송(MBC) <PD수첩>에 대한 일 년여에 걸친 검찰의 집요한 수사, 낙하산 사장의 등장과 KBS의 '순치' 등 방송판의 작동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이 숨가쁘도록 연이어 발생해왔다. 방송영역에 대한 권력의 개입과 압박, <PD수첩>을 촛불 시위의 주요 원인으로 몰아가는 언론플레이와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정치권력은 MBC와 YTN 노조에 대한 공방과 압력을 가하고 미디어법의 개정이 필요한 이유를 '편향된 언론의 문제, 여론의 '독점'의 문제로 공세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작년 말 자신들의 미디어 법안을 기어이 관철시키겠다는 시도를 보인 이후, 여권은 미디어법의 일방적인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이 중차대한 사안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시민과 사회단체들 그리고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지난한 사회적인 노력이 펼쳐질 수 있는 장을 활성화시키는 작업에는 도통 진정어린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사안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방송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드러내왔다. 과정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이미 예상되었었지만, 일정한 기대와 역할을 부여받았던 미디어발전국민위는 미디어법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논의하겠다는 여권쪽 위원들의 완강함과 내부의 소통부재로 항로이탈과 난항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여론과 민심을 폭넓게 아우를 조사 한 번 시도하지 않고 전체가 아닌 일부의 의견을 '최종보고서'로 내놓고는, 종료되었다.

MB의 '소통 불감증'과 '노웨이'론에 옮았나

'방송장악'의 위협이 피부로 느껴지는 불행하고 불온한 공기를 마시게 된 현 상황을 대하면서 한 명의 언론학자이자 문화연구자로, 네티즌이자 시민으로서 마음이 너무나 먹먹해지고, 앞날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밀려온다. 미디어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론과 여론의 장들이 입을 심대한 타격과 점증하는 위협을 걱정하는 수백의 언론학자들이 서명을 하고, 네티즌과 시민단체들이 문제제기를 해도, 시인에서 만화가, 종교인에서 학자와 영화감독에 이르기까지 수만을 헤아리는 시민이자 다양한 대중문화와 영상분야의 전문가와 지식인들이 미디어 악법을 반대해도, 여권의 정치인들은 묵묵답답과 무시하기로 응대하며, 동시에 불도저스러운 추진의 행보를 일관되게 보이고 있다.

이들도 대통령의 '소통불감증'과 '마이웨이 아니면 노웨이'론을 빼어 닮은 것일까. 아니면 방송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우군'이 방송시장에 진입할 때 얻게 될 과실과 보상을 생각하며, 이 정도 무리수와 강행은 권력이 바뀌었으니 이젠 행사해도 된다는 식의 아집과 오만함으로 집요하게 정치논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여권은 최근 민주당이 내놓은 대안에도 콧방귀를 뀌고 있으며,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제시한 보도영역이 제외된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선 대기업과 신문사의 참여를 허용하는 안을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면서, 이런 제안은 "특정 신문의 방송참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주장에 일부 단어를 새로 끼워 넣고 배열만 다시 한 언어의 유희"라고 성토했다.

그런데 누가 이제까지 사회문화적인 파장과 정치적인 영향이 지대할 미디어 법안을 둘러싼 논쟁과 논의 과정 속에서 대화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태도를 고집스레 유지해왔는지를, 또한 말과 숫자의 '유희'를 동원해왔는지를 되물어보자. 한나라당 주도의 미디어 법안이 제안되었을 때, 지지와 입안을 한 이들이 들고 나온 논리는 진입장벽을 대거 수정함으로써 대기업의 미디어 장으로의 진입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되고, 부가가치가 늘며, 자본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 맞는 경쟁력 있는 거대 미디어기업의 출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2만개가 넘는 일자리 창출이 이러한 미디어영역의 변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제공한 "방송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가 한동안 전가의 보도 마냥 여권의 인사들과 방통위 수장에 의해 (재)활용되었던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그런데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 속의 우리나라 GDP의 과다한 추정과 신뢰하기 어려운 통계를 사용한 오류가 드러나자, 대통령의 멘토이자, 현 정권의 실세인 최시중 방통위위원장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의 통계 조작논란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며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신문-방송 겸영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는 단선적인 - 혹은 일방적으로 '희망적'이라 해야 할 -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새로운 일자리들이 2만개 이상 생겨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보수언론은 이 매우 문제적이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보고서의 '진실'에 대해서는 흥미롭게도 침묵하고 있다. 그간 이 보고서의 내용을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전해오던 정부와 여권은 미디어 '산업론'과 일자리 창출론의 큰 '방향성'은 옳다는 식의 강변을 늘어놓고, 야당과 시민사회의 시각과 우려를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국회에서의 우월한 숫자로 반대여론을 돌파하려는 것이다.

미디어산업론 그리고 '관변 미디어컨텐츠학'의 문제들

필자 역시 미디어 산업론의 가치와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지만, 산업으로서의 미디어 제도의 변화를 강조하고 추구하기 전에 여권이 공공적인 포럼에서 논하고 있지 않은 우리 신문시장의 특수성이, 특히 언론권력의 보수성과 정파성 그리고 현실개입능력의 문제가 마땅히 심도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신문시장의 60-70% 이상을 장악하는 강력한 보수언론들이 존재하는 나라가 선진국들 중에 몇이나 있는가? 지난 수십 여 년 간 '유사국가기관'이자 상징권력으로 정치어젠다의 설정과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더불어 정치권력과 밀월을 누려온 이들 보수·족벌언론의 '전력'과 사주의 이해관계를 자사의 이해와 등치시켰던 일련의 사건들을 복기해보면, 여당 버전의 미디어법 개정 이후, 조중동이 가담하는 보도기능을 가진 종합편성채널은 신문시장에서 이들이 보여주었던 논조와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와 반영하고 재생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해 광장에서의 자발적인 촛불의 행렬에 '배후론'과 '폭력시위'의 이미지를 애써 덧씌우며 날선 공격과 왜곡을 제기하던 보수언론의 모습과, 이들의 용산사태 희생자와 전교조, 언론소비자단체, 그리고 노조에 대한 태도, 고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기까지 벌어졌던 조중동의 고인에 대한 집요한 흠집내기와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난을 돌아보며, 보수언론이 방송시장에 진입해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면 숨이 막혀온다. 한편 이들과 연합할 거대기업들이 방송시장에 진입하게 될 때, 정치와 자본의 결합이 가져올 궁합은, 공론장의 형성과 기능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재앙과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수언론의 '정파적 선정성'과 상업주의, 과도한 정치담론과 의제의 설정기능, 그리고 권력과의 '통교'에 관한 측면은 언론현실과 미래와 관련해서 매우 심대한 이슈임에도, 어떡하든 보수언론과 재벌의 방송참여를 허용하는 데만 관심이 가있는 여권의 미디어법 관련 담론들 속에서는 전혀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하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면, 정부와 여권은 해외에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컨텐츠의 제조능력과 경쟁력을 가진 거대미디어기업에 의한 국부의 창출을 거론하고 있다. 이 주장 역시 기실 구멍투성이이다. 단적으로 국내 수용자들에게 상당한 인기와 영향력을 주고 있는 이른바 '미드'와 '일드'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은 영상문화를 전공하는 학자나 생산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의 문화산업이 기대고 있는 광대한 시장과 영어라는 세계어를 사용하는 이점과 장기간에 걸쳐 계발되고 축적된 영상장르와 문화상품의 미학을 활용할 수 있는 자원과 조건들을, 우리의 문화산업은 결코 가지고 있질 못하다. 거시적으로 보면, 미디어산업론의 개화는 문화적 창발성을 실질적으로 발휘하는 생산인력을 장기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 창의적인 교육과 제도수준의 보상책, 컨텐츠생산 베이스를 강화할 수 있는 꾸준한 투자, 그리고 문화물의 부가시장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들의 결합을 통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문화산업론이 특정 언론이나 자본력을 가진 집단의 방송환경 내로의 진입을 위한 포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서, 설사 보도부문을 가진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이 새롭게 등장한다 해도, 현 국면의 경제위기와 광고시장의 부침 속에서 이들이 창출해낼 일자리는 현실적으로 수백 개 정도에 국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 우려되는 것은 옷을 갈아입은 지난날의 땡전뉴스와 용비어천가성 보도들, 정치한 비판과 따끔한 비평이 사라진 밋밋한 시사프로와 미디어비평들, 기계적 객관성의 외피만 두른 보나마나한 뉴스들, 이미 강력한 보수언론이나 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보도들과 더불어 흥미거리와 오락성이 과도하게 강조된 연성 내지는 막장 프로그램들이 양극으로 치우쳐 존재하는 텔레비전이 등장하게 될 가능성과 위험성이다. 그러기에 성급하게 문화산업론과 '소프트 파워론'의 역할을 장밋빛 필터로 투사할 일이 아니다.

언론은 공공의 자산, 또 다른 배제와 '삽질'은 제발 멈추기를

매우 문제적이고 몰역사적이고 오만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내장된 법안을 이른바 '민생법안'이라고 애써 강변하고 덧칠하면서, 미디어산업론과 '여론 다양성'과 같은 논의들을 편의적으로 혹은 전술적으로 바꾸어가며, 어떡하든 짧은 시간 내에 자신들의 복안대로 미디어 제도와 영역의 판도를 무리수를 쓰더라도 바꾸겠다는 이들이 과연 '언어의 유희'를 거론할 수 있을까? 미디어로 매개되는 공공성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누가 공공성 앞에 산업적 가치, 일자리의 허상을 꺼내들고 말장난과 일방적으로 설정된 단선적인 예측을 강변하고 있는가? 정부와 여권은 더 이상의 협의나 성찰성이 깃든 대안의 모색은 필요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데드라인에 맞추어 어떡해서건 이 문제적인 법안의 통과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무리수와 강박을 실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심대한 핵심 쟁점이며, 공론과 여론, 민주주의의 기반과 관련된 사안임에도, 일반적으로 장기간의 여유기간을 두고 여론과 언론의 구성원들, 그리고 다양한 사회집단의 입장을 아우르면서,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모색하는 '선진국'의 사례도 지금 여기에선 먼 나라의 딴 얘기 일뿐이다.

백번 양보하여, 현재 공영방송체계가 역사·정치적으로 퇴적된 문제를 안고 있다면 조급하지 않게, 자신들의 당리당약과는 거리를 두고, 동시에 공공선과 공익적인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전향적으로 해결책을 수렴하고 공동성찰을 시도하는 노력을 보일 일이다. 언론의 기반을 바꾸려는 어떤 정책도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나 전리품이 될 수 없다. 이 사안은 절차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논의의 수준에서 지루하리만큼 느껴지도록 장기간에 걸쳐 모색되어야 하고, 미디어 제도의 변화가 가져올 역기능과 사회적인 비용, 그리고 갈등을 계산해서 신중하게 진행할 문제이다. 미디어법안이라는 매우 갈등적인 사안을 앞에 두고, 강자의 입장에 있는 여권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명'에 대해, 독선을 버리고, 진정성과 성찰성으로 다시 숙고하고, 방송제도의 구성원들과 시민사회의 외침에 화답하기 바란다.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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