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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방송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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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방송을 만든다"

[키워드 가이드를 만나다] '40년' 라디오 방송작가 심상덕 씨

<키워드 가이드>에서 '라디오 구성작가' 키워드를 연재하는 심상덕 작가는 올해로 라디오 방송작가를 시작한 지 42년째가 됐다. 요즘의 직업 풍토는 물론 '라디오'라는 장르 특성을 염두에 둬도 흔치 않은 일. 한 방송 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이름 앞에 '전설'이라는 말을 붙이고 그가 집필해 온 라디오 프로그램을 분석하기도 한다.

"1967년 CBS <미스터 컴퓨터>로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해 TBC <FM대행진>, DBS <행복의 구름다리>를 집필했다. 1980년 언론 통폐합 후 KBS로 자리를 옮겨 <가로수를 누비며>, <통일열차>, <세월따라 노래따라> 등을 집필했고 1990년부터 TBS <서울야곡>, TBN 부산교통방송의 <부산야곡> 등 자신만의 색채를 담은 프로그램을 집필해 라디오 구성 프로그램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현재 TBN <오승룡의 길따라 노래따라>, TBS <서울이야기>를 집필 중이며 지난 4월부터 '키워드 가이드'에 참여해 '라디오 방송 작가'에 대한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발행하는 <방송작가> 5월호에서 정리한 그의 약력이다. 지난 3월 제21회 한국PD대상에서 라디오작가상을 수상한 심상덕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도 "내가 요새 '키워드 가이드'라는 것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활동을 소개했다. 40여 년이 넘는 자신의 방송작가 경험을 키워드 가이드에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는 심상덕 작가를 만났다.

▲ 심상덕 라디오 구성작가. ⓒ프레시안

프레시안 : '키워드 가이드'가 내세우는 대표 가이더 중 한 분이시다. 키워드 가이드에 참여하게 된 계기라면?

심상덕 : 프로그램 대본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 인터넷을 하다보면 '가위표 정보'가 참 많다. 차라리'틀린 정보 찾기' 클럽을 만들고 싶을 정도다. 특히 외국 사람들의 출생 연도나 어원 같은 것은 한 군데가 잘못되면 10가지 자료가 다 틀린다. 다들 자기가 연구한 것이 아니고 그냥 퍼다 쓰니까 그런데, 그간 누구 하나 신경 안쓴다. 이전에도 '이쪽으로 유능한 사람이 있으면 전문가와 토론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그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키워드 가이드'와 맞아 떨어졌다.

인터넷으로 기자든 작가든 일이 쉬워진 것도 있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먹거리들이 올바른 먹거리여야 하는 것 아닐까. 인터넷 전반을 두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종종 너무 저질스러운 정보가 나타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각자가 아는 영역에서 할 수 있는 한 바로잡는다면 문화로 정착되지 않을까.

프레시안 : '키워드 가이드'를 시작한 이후 이메일로 라디오 방송작가 지망생들의 메일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심상덕 : 보통 후배들이 옆에서 묻는 것과 같은 내용의 궁금증이 많다. 사실 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나 그러한 궁금증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빼고는 99%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만든 커피만이 제일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경험이 있고 오래 주방장을 해온 사람이 만들면 좀 다르지 않을까. 가령 인터넷에 "라디오 방송작가를 하면 TV 작가로 자리 잡을 수 어렵다"는 식의 이야기가 올라오는데 전혀 다르다. 오히려 오디오를 아는 사람은 TV 쪽으로 가면 자리매김을 잘한다. 라디오는 감성에 호소하는 매체이고 TV는 이성과 사실적인 화면으로 보여주는 매체라 오히려 TV를 먼저 배운 친구들이 라디오에 오면 자리를 못잡는다.

프레시안 : 40년 넘게 집필해 온 심상덕 작가의 경우가 매우 특이하게 여겨질 정도로 방송작가는 '오래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적다. 왜 그럴까?

심상덕 :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생활에 책임을 질 수가 없어서 그렇다. 방송국에서도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작가 양성을 해야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게다가 방송이라는 특성 자체가 일회용, 소모품 같은 성격이 있어서 '오랜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 "나의 40년 라디오 방송작가 비결? 나만의 브랜드, 상표를 만들어 낸 것."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런데 이렇게 오랜 기간 방송작가로 일해온 비결을 꼽는다면?

심상덕 : 간단히 말하면 나는 내 브랜드, 상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서울야곡>처럼 지나간 시간에의 향수나 추억을 담은 프로그램이 나의 브랜드고 상표다. 우리는 누구나 그리움을 품고 산다. 사람이 사는 매커니즘은 누구나 똑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고 출근해서 나오다가 거울 한번 더 보고. 버스타고 나와서 일하다가 다시 집에 가고, 가다가 친구 만나서 기분 좋으면 술 한잔하고, 다 똑같다.

그런 똑같은 매커니즘 속에서 누가 그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려내느냐는 문제다. 지금 그의 머리 속에 가장 핵심적인 것,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다. 누구나 가족, 엄마, 할머니, 동생, 오빠, 애인, 남편, 자식들을 답하지 않을까. 사람은 이런 매커니즘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으로 청취자의 코를 꿰어야 한다. 그러면 성공하는 거다.

프레시안 : 예전에 라디오는 생활밀착형 매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라디오의 특성이기도 한 것 같다.

심상덕 : 그렇다. 라디오는 감성으로 청취자를 꿰뚫을 수 있다. 만약 지금 나에게 '방송작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인간을 연구하는 직업이라고 하겠다. 어떤 드라마를 하든 방송 프로그램을 하든 그 이야기가 청취자를 어떻게 움직일까를 보는 거다. 추석이나 명절이라고 하자. 한 남자가 돈은 없는데 살 것은 없고 집에도 내려가야하고 누구네 집 강도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주머니에 칼을 품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추석이고 하니 고향,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고 힘이 잔뜩 들어갔던 손이 빠지고 그럴 것 아닌가. 그래서 그 사람이 착한 마음 착한 표정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야지. 이게 라디오다.

방송작가가 자신만의 상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지금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공통분모가 무엇인가를 계산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이것이 방송의 특성이고 자기 상표를 붙이는 기초다. 지금은 나의 이야기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기본 스텝을 잘 익히면 서양 무용을 하든 한국 무용을 하든 방향은 정하기 나름 인거다.

프레시안 : 많은 이들이 1990년 서울 교통방송에서 방송한 <김성원의 서울야곡>을 심상덕 작가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꼽는다. 이 프로그램도 진행자가 3명이 바뀔 동안 9년 간 집필해오셨는데…

심상덕 : 누군가가 '방송작가를 오래한 비결'을 물으면 나는 '운이 좋았다'고 답한다. 나는 좋은 PD와 좋은 성우, 좋은 연기자를 만났다. 물론 항상 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나도 혈기가 넘칠 때는 '이 자식 유리창으로 집어던져 버릴까' 이런 일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나 모르는 사이에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일 있었을 것이고 마냥 상대만 탓할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것은 있다. 방송 시스템이 대부분 'PD 밑에 작가'라는 식이 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송 제작 시스템은 그렇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여러가지 버릇이 잘못된 PD들이나 작가들에게 뭔가 ,바라거나 여성 작가들에게 이상한 접근을 한다거나 하는 PD들과는 딱 잘라서 일을 안했다. 또 한편으로는 작가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PD들과의 의리는 반드시 지켜줬다.

▲ "이제 후배들이 폼이 나야하는데…시대가 너무 급히돌아가다 보니 '로맨스'가 없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요즘 들어 특히 방송작가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40년 차 선배로서 남다르게 보일 듯하다.

심상덕 : 나는 경로 우대증을 받는 나이가 됐다. 이제는 누가 나를 보고 '이제 쉬세요' 그래도 할 말이 없는 때가 됐다. 이제 후배들이 폼이 나야하는데 폼들이 안난다. 후배도, 친구도, 선배들도 그렇다. 우리 방송작가만이 아니라 이 시대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폼이 안난다. 우리 젊었을 때 보면 '로맨스'라고 할만큼 머리 허연 영감들이 괜찮았거든. 그럴듯 했다. 그런데 그 색깔이 안나온다. 시대가 각박해져서 그렇다. 너무 급히 돌아가다 보니까, 좀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굴러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회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가운데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나가 떨어진다.

방송은 그런 것을 달래는 역할을 해야지. 나는 나잇살이 있어서 그런지 이 시대의 아픔들을 자꾸 들여다보게된다. 시사평론은 아니니까 심각하게 접근해도 안되는 프로니까 설렁설렁 딴 소리 해가면서 '그때 그 친구들은 잘 되고 있나 모르겠네. 연락 한번 해보셨소' 위로 한번 건네고 하는 거다.

프레시안 : 요즘 방송은 '독함'이 코드라고 한다. 요즘 방송을 보면 어떤가.

심상덕 : 요즘은 따뜻한 구석이 없다. 나는 집에선 '햐얀 손수건을 늘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니까'(채널 선택권이 없어 언제든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 집사람이 TV를 볼 때 흘낏 보는게 단데 나는 TV 화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TV에서 나오는 표정과 마주하는게 싫어서 그렇다. 감정이 없이 싸늘하지 않나. 귀로만 들어도 겁이 난다.

사실 라디오에서는 그런 따뜻함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라디오도 전부 말장난으로 흘러가서, 이건 방송 하는 친구들이, PD나 방송사 사장이 국민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독함'도 몇번 반복되면 학습이 되어 시시하게 보인다. 왜 방송에서는 일상의 따뜻한 모습들을 볼 수가 없나. 그런 감성이 참 없다.

프레시안 : 앞으로 키워드 가이드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심상덕 :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송을 대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방송을 만드는 사람, 특히 작가가 참 중요한 것이 이들이 행복하지 못하면 방송도 행복해질 수 없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요즘 방송이 따듯하지 않은 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아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무조건 따듯하게 입히라는 것이 아니다. 차가운 것은 얼음처럼 차갑게, 냉정하게 관찰해야하지만 사실에 대해 분석하는 단계에서 작가의 생각이 따듯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씨앗을 뿌릴 수없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봐도 우리가 정확해야 하고, 정확한 것을 뿌려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키워드 가이드'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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