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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 공멸의 네트워크' <상>

[미디어악법 물렀거라]<5> 신학림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

한·미·일 3국의 경제 위기와 지배 구조 비교

작년 금융위기에서 출발한 미국의 경제위기는 1929년 세계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능가할 정도로 미국과 전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위기는 1980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 강대국의 초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가 막을 내리는 것,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것 아니냐는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함께 대안 모색에 관한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시장 만능주의'와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자본에 무한대의 자유를 허용한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국가의 기능과 시장 개입, 자본 통제 등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자리매김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위기라는 점에서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는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던 일본은 100년만의 경제침체(위기)라고 한다. 미국의 경제위기 여파의 영향도 있지만, 일본의 경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장기간의 내수 부진과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활력 약화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상대적인 수출 감소폭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한국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데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표현되는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로 인해 한국 사회도 심각한 정치·경제·사회적인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근본적인 한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 미국, 일본 등 세 나라의 지배체제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유사점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미국 : '군산복합체'와 5개 복합미디어재벌의 나라

1990년대까지 미국은 거대한 군수산업체와 이들과 직간접으로 이어진 보수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그 세력을 정치학 교과서에서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 불렀다.

재미있는 사례 중의 하나가 부시 정권의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Richard Bruce "Dick" Cheney)다.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내다, 빌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자 공직에서 물러나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 최대의 석유기업으로 일컬어지는 핼리버턴(Halliburton)이라는 회사의 회장겸 CEO로 지냈다. 핼리버튼이라는 회사는 전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영업활동을 하면서, 중동 지역의 전후 복구사업 등을 싹쓸이 해 온 회사로,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을, 몇몇 거대 재벌들이 미디어를 지배한 것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지난 20여년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미국 공화당의 '장기집권'으로 이제 미국 사회는 5개의 거대한 복합미디어그룹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고, 이제 이 거대한 5개의 복합미디어그룹을 빼 놓고 미국 사회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Ronald Reagan: 1981-1989 재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중요 언론사는 50개 정도였다. 그런데 아들 부시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할 무렵인 2003년 경에는 이것이 5개의 거대한 복합미디어그룹으로 축소, 재편되었다. 그야말로 '미디어 독점(media monopoly)'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디어 모노폴리> (벤 바그디키언 저, 정연구 옮김) 참조)

'미디어 공룡'이란 용어로도 부족할, 이 거대한 복합 미디어 재벌들은 전통적인 언론의 영역뿐만 아니라 출판사, (뉴스)통신, 케이블 방송, 유선 통신 및 인터넷, 영화(영상), 오락, (테마)공원, 리조트 등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에 현지법인과 지사 등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같은 거대한 복합미디어재벌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1996년 제정된 텔레커뮤니케이션법(Telecommunication Act)이다. 이 법을 통해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계기로 언론사와 통신회사의 겸업과 겸영이 가능하도록 소유규제를 대폭 풀어주었던 것이다. 이 법을 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 지금은 은퇴하고 'American Solutions'라는 싱크탱크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 전 하원 의장이다.


일본 : 중의원(지역구 국회의원) 세습의 나라

"일본 제1 야당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전격 사임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비서가 체포된 지 달포 만의 일이다. 자민당은 오자와 대표의 도중하차가 총선에 득이 된다고 판단되면 선거 일정을 대폭 앞당길 태세이다.

반면 열세가 호전되지 않는다고 보면 총선 일정을 여름 이후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최종 시한은 중의원 의원 임기가 만료하는 9월 말이다. 일본은 지금 "백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당연히 경기부양책이 차기 중의원 총선거의 최대 초점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기 부양보다는 '세습 제한'과 '정치헌금 규제'를 양대 초점으로 부각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의원직 세습 문제'가 선거전의 승패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요미우리 신문이 집계한 것을 보면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우리나라의 지역구 국회의원에 해당) 303명 가운데 이른바 '세습 의원'이 3분의 1을 넘는 107명이다. 여기서 '세습 의원'이란 형제자매·부모·조부모 등 3등신(3대) 이내의 혈족과 배우자가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배우자의 형제자매·부모 등 2등신(2대) 이내의 인척을 국회의원으로 둔 사람을 말한다."


(<시사IN> 2009년 5월 23일자, 제88호 "의사당 가득 메운 '세습 의원'을 어찌하오리까"에서 인용)

'의원 세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현 아소 다로(麻生 太郞) 내각에서 17명의 장관 중 무려 11명이 세습정치인인 것이다.


집권 자민당 중의원들만 세습하는 것이 아니다. 자민당만큼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제1 야당인 민주당 중의원 중에서도 지역구를 물려받은 정치인의 비율이 14.4%에 달한다.


일본 사회의 장기침체의 원인을 수상과 장관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과 여야 국회의원들의 세습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한국: 재벌+족벌신문+(정치)권력의 혼맥이 지배하는 나라

우리나라도 아버지, 할아버지 등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거나, 뒤를 이어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집권 자민당 소속 중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세습하는 일본과 비교할 때, '국회의원 세습'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한국은 아직 일본 만큼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국회의원의 세습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는 반면, 재벌과 족벌신문 그리고 (집권)정치세력이 결혼으로 얽히고 설킨, 완벽한 하나의 복합체(complex)다.

다른 한편으로, 거대한 5개의 복합미디어재벌이 보수 정치세력과 연대해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익을 챙기는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상황이 미국 못지않게 훨씬 심각하다. 미국과 달리, 이들 수구반동복합체를 견제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 신문(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한 족벌신문(사주)들이 지상파 방송과 보도전문채널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방송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재벌기업들과 이중삼중의 혼맥으로 얽혀있고, 정부와 여당은 '마지막 남은 공공의 영역'인 공영방송마져 파괴하고 장악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지금 정부·여당이 펼치고 있는 신문과 방송의 겸업(겸영 혹은 교차소유)을 허용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통과시켜 거대한 5개의 복합미디어재벌 탄생의 길을 연 당시 상황과 유사하다.

지상파 TV,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등은 한국 사회가 끝까지 지켜야 할 '공공성 중의 공공성'이다. 만약 정부여당이 그들과 한 몸체인 조중동과 재벌에 방송을 넘겨주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미래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 갈등과 폭동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방송을 장악하려고 혈안이 돼 있는 수구반동복합체를 '부패와 공멸의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기사 이어짐)


▲ 조선일보사, 중앙일보사, 동아일보사의 사옥. ⓒ프레시안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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