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다 같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고 둘 다 선진화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소위 '여의도'와 '캐피탈 힐'에 대한 대통령의 대접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다니 말이다.
국회는 비록 교착상태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서민 행보'를 시작한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보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변화의 행보야말로 한국의 현 정치가 가진 문제의 핵심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매우 이념적인 법안을 여의도에 툭 던져놓고 이와 거리를 둔 채 '민생 제스처'(최저임금조차 삭감하려고 하면서)를 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회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장에서 악수할 시간은 있어도 의원들과 대화할 시간은 없다는 것일까?
아웃사이더도 의회주의자일 수 있다
야심에 찬 모든 대통령들은 시간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면서 역사에 업적을 남기려고 하다보면 의회를 성가신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과거 '상원의 현자'로 불렸던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이 증언했듯,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대통령은 어느 당이냐를 떠나 의회를 성가신 방해물로 간주했다.
사실 미국의 상하 양원이야말로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가신 존재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건국의 시조들(Founding Fathers)'이 상원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 등 수많은 방식을 통해 의회를 일부러 '느리고 성가신' 기관으로 만들어 잘못된 실용과 효율이 주는 위험성을 예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토록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생각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조차 사회보장연금 삭감 등 수많은 핵심 아젠다에서 의회의 굳은 장벽에 직면해야 했다.
더구나 한국의 현 이명박 대통령처럼 여의도 아웃사이더 출신들은 더 그러했다.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공화당은 물론이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민주당 의원들과 자주 냉전 기간을 가졌다. 심지어 카터 정부 실패의 일등공신은 민주당 진보파 의원들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클린턴 등과 유사한 아웃사이더 출신이면서 상원 초년병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바이든 부통령을 놀라게 할 정도로 의회 중심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의 멧 베이 기자는 특집기사에서 오바마가 자당의 전직 대통령들보다 공화당의 레이건 전 대통령을 더 벤치마킹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오바마는 선거 기간 동안 민주당 진보파들의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레이건을 높이 평가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그 발언은 그저 중도파를 겨냥한 쇼가 아니라 그의 초당적인 면모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레이건은 공화당판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이자 동시에 집권 초기 당시 민주당 지배 의회를 존중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5일 백악관에서 대선 경쟁자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오른쪽) 등 의회 지도자들과 이민법 개혁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오른쪽은 '상원의 현인'으로 불렸던 바이든 부통령 ⓒ로이터=뉴시스 |
4개월 만에 320명 하원 의원 백악관 방문
베이 기자는 오바마가 레이건 스타일 행보를 보인다는 한 증거로 개별 의원들과의 밀착 외교를 든다.
사실 클린턴 정부는 의회 지도부와의 '거래적 관계'를 너무 중시했다. 예를 들어 클린턴은 집권 초기 민주당 의회 지도부들과 선거자금 개혁 포기 등을 둘러싸고 거래를 추진했다.
반면 오바마는 클린턴 시대의 지도부 패러다임에서 의원 개별 외교 패러다임으로 바꿨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오바마가 소토마이어 대법관 후보자 선정 과정에서 법사위의 모든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그들을 놀라게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 찰스 그래슬리는 공화당의 출신 정당을 떠나 이런 전화는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이것이 일회적 이벤트가 아님을 보여주듯 이미 5월 중순에 320명의 하원과 80명의 상원의원이 백악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배이 기자는 또한 그 만남의 방식에서도 보좌관 배석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과 일대일로 면담을 가져 방문한 의원들이 놀랐다고 전했다.
이러한 일대일 외교의 내용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상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지배적 심리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 부통령이 잘 묘사하고 있듯 민주당의 일반 의원들은 대통령들은 흔히 자기들을 희생시켜 대통령의 아젠다를 관철하려고 한다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클린턴 1기 개혁 아젠다 투쟁 과정에서 정치적 손해를 감수한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의회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상호 이익을 강조하면서 보다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젠다 추진 방식에서도 오바마는 클린턴보다는 레이건과 더 유사하다. 이는 세부 사항까지 완벽히 묘사된 서양화와 여백의 멋이 있는 동양화의 차이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미 그려진 서양화 모델로 클린턴은 의료보험 개혁 투쟁에서 공화당 의회의 협조를 받지 못해 실패했고, 유연한 여백이 있는 동양화 모델을 채택한 레이건은 민주당 의회와의 타협을 통해 세금 개혁에 성공했다.
오바마는 전략적 모호성을 통해 상하 양원 혹은 양원 내부의 유연한 타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양화 모델이다.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은 "유일하게 (의회와의 관계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는 원칙은 (그 타협안이) 성공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나머지는 다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비록 절충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개혁안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과거 클린턴 행정부의 아마추어리즘에서의 탈피라는 점에서만 보면 긍정적이다.
정치인 출신이라는 자긍심으로 무장한 백악관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대통령에서부터 대(對) 의회팀 전반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의회주의라는 가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이 가치가 스며들어 있는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 이매뉴엘 비서실장의 삼각 축은 모두 의회 출신으로서 의회를 성가신 장애물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의 중요한 한 축으로 내면에서부터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는 그들이 특히 의회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아니라 강한 긍지를 가지고 있는 사실에서도 연유한다. 베이 기자는 바이든과 이매뉴엘이 아직도 자신들의 의원인 양 의회 건물에서 운동하거나 식사하면서 의원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을 놀랍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들 삼두마차 이외에도 백악관 주요 포스트들은 의회에서의 수십 년간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가진 백전노장들로 촘촘히 짜여 있다. 대표적인 두 인물만 들라면 오랫동안 톰 대슐 상원의원의 비서실장 생활로 '101번째 상원의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피트 로즈 백악관 선임 자문관, 의회예산국(CBO) 국장 출신인 피터 오재그 백악관 예산국장이 그러하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의 의회주의가 반드시 모든 사안을 의회와의 대화로만 해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고등학교 교과서적 원칙을 믿을 정도로 오바마는 천진난만한 사람이 아니다.
공화당 지도부의 이념적 강경함은 물론이고 집권당 의원내의 다양한 이념적 성향은 심의적 대화를 통한 생산적 결과를 극히 어렵게 한다. 미국 정치의 실제적 작동은 의회와의 대화와 직접 시민들과의 소통(going public)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잘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는 다가오는 의료보험 대전투를 앞두고 의회에서의 초당적 행보와 함께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운동의 정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만약 오바마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 낸다면 다가오는 의료보험 대혈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대전투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역동적인 한국 정치의 특성상 누구도 승부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정치에 있는 '철의 법칙' 하나는 분명하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그리고 어떤 영역이든 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견제와 균형을 파괴하는 것은 민주공화국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곧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법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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