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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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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Ⅰ

[한윤수의 '오랑캐꽃']<94>

노동부에 출석할 때 외국인 노동자 혼자 가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법도 모르는 외국인이 어떻게 노련한 한국 사장님을 당하겠는가? 더구나 회사 쪽에서는 사장님 혼자 오는 경우란 거의 없고 노무 담당자와 통역과 이 방면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 즉 해결사가 따라오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고립무원의 외국인 노동자는 감독관 앞에서의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다. <정의의 용사> 감독관을 만나지 않는 한! 하지만 정의의 용사를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만화영화라면 또 몰라도!

그러므로 외국인 노동자가 노동부에 출석할 때 우리 센터에서는 *반드시 한국인 직원이 보호자로 동행한다. 누구든 한국인이 옆에만 있어줘도 그들에겐 큰 힘이 되니까.

태국인 차이안과 프라싯은 불법체류자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노동부에 갈 때 우리 센터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G주임이 동행했다.

회사에서는 사장을 대신하여 상무가 나오고 특별히 고용한 태국인 통역과 통역의 후견인처럼 보이는 한국 여자와 사장의 친척이라고 자칭하는 해결사 등 모두 4명이 나왔다.
그리하여 2 대 4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먼저 회사 측에서 온 태국인 여성 통역이 <친구끼리 얘기하겠다>며 태국인 노동자를 복도로 끌고 나가 회유를 시작했다. *갈치가 갈치 꼬리 무는 식이다.

"나 노동부에 수백 번도 더 왔어. 한 푼도 못 받고 가는 사람도 많아."
"그래요?"
어리숙한 프라싯의 눈이 동그래지자, 통역이 은근히 겁을 주며 프라싯을 계속 코너로 몰고 갔다.
"내 생각엔 조금이라도 받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프라싯이 물었다.
"얼마 줄 건데요?"
"백만 원이라도 받아. 안 그럼 받기 힘들 텐데."

프라싯이 받을 돈만도 6백만원이 넘으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프라싯은 흔들렸다. 한 푼도 못 받고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으니까.
하지만 G주임이 복도로 나가서
"통역이 통역이나 해야지, 왜 유도 심문을 해요?"
항의하고는 노동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G주임은 프라싯에게
"백만 원이 말이나 돼? 제발 좀 가만히 있어요."
하고 주의를 주었다. 그 말을 듣고 해결사가
"백만 원이건 천만 원이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 왜 제 3자가 액수 가지고 참견이야."
하고 투덜거렸다. G주임은
"금액이 너무 차이가 나면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고 되물었다.

▲ ⓒ한윤수

회사측은 퇴직금 액수를 줄이려고 근무기간이 5년이 아니라 2년 밖에 안된다는 둥, 아웃소싱업체에 외주를 주어서 정식 근무를 한 게 아니라는 둥, 여러 가지로 아전인수식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완벽한 기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다툼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해결사가 G주임을 밖으로 불러냈다.
"나 좀 잠깐 봐."
"왜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혹시 봉담 사람 아니야?'
"맞는데요."
"그렇지! 너 G형님 아들이지?"
"그런데요. 저희 아버지가 G짜이신데요."
"맞지! 이 자식, 너 나 몰라? 비봉 사는 K야, 인마. 너희 할아버지 초상 때도 갔었구."
"몰라요. 저는. 그리고 나이 많으시다고 함부로 이 자식 저 자식 하지 마세요."
"야, 많이 컸네. 너 말이야. 외국 아이들한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 얼굴 좀 봐주라. 백만 원 선에서 처리하자구."
"그런 액수로는 처리할 수 없습니다."
"야, 니가 금액에 신경 쓰면 안되잖아."
"왜 안되요? 제가 위임받은 사람인데요. 저한테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화가 난 해결사가 노동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얘들 불법체류자 맞지?"
G주임이 노동자들을 보호하듯 막아서며
"그래서요?"
"출입국 단속반에 잘 아는 동생이 있는데 지금 당장 잡아가도록 해줄까?"
"어디 그렇게 해보시지요. 연락하실 거면 연락하십시오! 근로자들은 잡혀갈 각오하고 짐까지 꾸려 왔습니다. 그렇지만 신고하면 사업주도 피해 좀 봐야 할 걸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감독관이 나섰다.
"왜들 이러십니까? 출입국에 신고할 거면 나도 손 떼겠습니다,"
잡혀갈까봐 겁이 난 노동자들이 빨리 가자고 G주임을 잡아끄는 바람에 그날은 일단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한국인 직원이 보호자로 동행 : 보호자로 동행하여 외국인 노동자를 대신하여 회사측과 다퉈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솔직히 이 문제 때문에 우리 직원들의 이직이 잦다. 평균 3개월! 하지만 그렇다고 동행을 그만둘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센터의 고민이다. 누구라도 억울한 꼴을 당하면 안 되니까.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 : 일제 시절 일본인 형사보다 한국인 형사 보조가 한국인들을 더 괴롭혔듯이, 태국인을 괴롭히는 것은 역시 동족인 태국인 통역들이다. 그들은 건수가 있을 때마다 회사에 고용되는데, 한 번 노동부에 출석하여 동족을 회유하는 대가로 보통 10만원을 받는다. 실제로 G주임은 통역이 해결사에게 '이제 가야 하니 10만원 주세요."하고 말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회사 측에서는 10만원을 써서 몇 백만 원을 절약할 수 있기에 이런 방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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