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대변인과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언론사의 경영진의 사퇴를 압박하는 행위는 선진국 국민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희한한 광경으로 비취질 것이다. 특히, 정부 정책에 반대되는 내용을 방송한 프로그램의 내용을 꼬투리 잡아 경영진의 퇴진을 압박하는 행위는 정부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감시 기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후진국이나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정책 비판'이 '명예훼손'이라고?
언론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전달하여 시청자와 독자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해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찬성과 반대 의견을 골고루 전달하기도 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나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는 등 이슈와 관련해 최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언론의 취재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취재내용에 대한 논란은 독자와 시청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언론의 감시와 견제의 대상인 국가기관이 나서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일이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제기하기 위해 방송한 주무부서 관리의 인터뷰 내용을 두고 그 방송사를 정부 관리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은 명예훼손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 일일 뿐더러 납득하기 힘들다. 방송사가 정부 정책에 대한 탐사보도를 위해 주무 장관이나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을 인터뷰한다면, 인터뷰 대상자인 주무 장관이나 공무원은 일반 자연인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국민에게 대신 전달하는 '공인'이다.
따라서 방송에서 제기하는 인터뷰 내용에 대한 비판은 자연인으로서의 주무장관이나 공무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국가정책의 잘못된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자연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명예훼손죄'를 두고 국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한 방송사를 처벌하겠다고 할 수 있는가. 명예훼손죄는 정부 또는 국가의 명예를 보호하라는 법이 아니다.
▲ 김영우, 강승규 의원 등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엄기영 MBC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
'취재원 보호법'은커녕 언론사 경영진에 사퇴압박
게다가 검찰은 이번 <PD수첩>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제작과정의 일부 실수를 방송 제작진의 의도적인 왜곡으로 몰고 가기 위해 작가의 개인적인 이메일을 짜깁기해 공개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왜 정부와 검찰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까지 공개하면서 <PD수첩>의 보도를 왜곡, 조작 보도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일까. 나아가, 왜 청와대 대변인과 여당 국회의원들은 검찰의 발표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검찰발표가 나오자마자 즉각 MBC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MBC 경영진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서는 것일까.
정부와 여당은 <PD수첩> 방송내용을 '의도적 왜곡'으로 몰아붙여서 미디어법 개정과 MBC 민영화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약화시켜 이번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번 미디어 법안의 목적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억압하고 언론을 장악하는데 있다는 것을 여실히 나타내는 것.
미국 의회 의원들은 언론자유 보장과 기자들의 취재원 보호를 위해 취재원 보호법을 제정하면서까지 언론인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언론사 경영진의 총사퇴를 운운하며 언론사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에는 언론의 탐사보도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대통령은 있지만 정부의 압력으로 물러난 언론사 경영진은 없다. 그리고 정부가 언론사 경영진에 사퇴 압력을 가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이것이 바로 언론에 대한 미국과 우리나라 정부의 시각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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