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고자 벼르는 미디어 법은 <PD수첩> 탄압 사건의 '글로벌화된 미래형이라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게도 나름의 '선진화'의 의지는 분명히 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PD수첩> 제작진을 두고 "외국에서 일어날 일이라면 경영진이 사죄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일"이라며 몸소 둘 간의 '징검다리'까지 놨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미디어 법이 통과되면 이명박 정부는 굳이 <PD수첩>을 기소하고, 제작진 이메일까지 공개하는 1960년대에나 유행한 촌스럽고 우악스러운 방법을 통하지 않더라도 반대 여론을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선망해 마지 않는 '글로벌'에는 그러한 사례들이 산재해있다.
장행훈 언론광장 대표가 낸 <미디어 독점>(한울 아카데미)과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벤 바그디키언의 <미디어 모노폴리>(프로메테우스)는 이러한 권력이 아니라 자본을 통해 언론을 짓누르는 '세계의 사례'와 그에 맞서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
"미디어 산업의 정치권 로비가 세계적 추세"
▲ <미디어 독점>(장행훈 지음, 한울 펴냄). ⓒ프레시안 |
"공공청렴센터는 1998년에서 2004년까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산업이 의회와 백악관을 상대로 지출한 정치 헌금, 로비 자금, 기타 지출을 추적한 조사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했다. 이에 의하면 로비 액수는 무려 11억 달러에 달한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1998~2004년까지 총 로비비용은 9억 5700만 달러이며 2004년 가을까지 선거자금 기부금은 1억 4560만 달러이고 2000~2004년 여행경비 지원은 450건에 총액 70만 4229달러였다."
그리고 미국의 미디어업계는 뿌린 만큼 성과를 거두었다. "과거 10년 동안 연간 수익은 놀랄 정도로 높았으며 유례없는 기업 집중화가 이뤄졌다. (…) 연방통신위원회, 법무부 및 의회는 일반적으로 미디어 회사가 토끼처럼 짝짓기를 하고 합병하는 것을 허용했다."
장행훈 대표는 "미국에서 연방통신위원회의 미디어 소유 규제 완화와 신문·방송 겸영 허용에 대한 국민의 반대와 저항은 대단히 강하다. 그런데도 국민의 의사에 반대되는 결정이 내려진다"면서 "이는 대자본과 거대 미디어 그리고 이들과 이해를 같이 하는 국회의원 간의 뒷거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도 거대 미디어와 연방통신위원회 결정을 지지하는 보수 정치인들은 이런 법률을 빙자해서 소유 규제 완화와 신문·방송 겸영이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추세를 빙자해서 다시 소유 완화와 겸영 확대를 더욱 요구한다. 자본, 보수 언론, 보수 정치인 간의 '시너지' 작용이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어 가속화한다"고 지적했다. 2009년 한국에서 보이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
"언론인들을 해고하거나, 자본이 알아서 관리하거나"
▲ <미디어 모노폴리>(벤 바그디키언 지음, 프로메테우스 펴냄). ⓒ프레시안 |
그는 이러한 미국의 미디어 과점 상태가 사실상 '독점' 상태와 다름 없다고 진단한다. "5대 기업은 유사한 형태의 이사회를 갖고있으며, 같은 벤처 회사에 공동 투자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서로 자금을 빌려주고 상호 이익이 발생했을때 소유물을 교환하는 일을 실제로 하기도 한다.결국 독점력을 갖기 위해 단일 기업이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 없다"
한 기업이 지역이나 신문·방송을 가리지 않는 독점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귀가 솔깃할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벤 카르디언은 미국에서 가장 큰 신문 체인인 개넷이 마구잡이로 사들인 지역 신문의 논조를 어떻게 통제했는가를 알린다.
"체인 신문은 뉴스에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매시간마다 많은 양의 결정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간섭은 불가능하다. 그 대신 체인에는 정책이있다. 바로 지역의 편집자들과 발행인들의 고용과 해고가 가장 명확한 지배메커니즘이다."
복합 미디어 그룹이 늘어나고 독점의 수준이 더욱 높아지면 '해고' 등의 충돌도 필요가 없다. "미디어 복합기업이 미국 경제에 주요 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월스트리트는 미디어 산업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을 보였다. 월 스트리트는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뉴스 예산을 삭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많은 미디어 기업들의 정책을 조절할 수 있는 손쉬운 접근 방식을 찾아냈다. 이러한 경제 활동으로 인해 번번이 올바른 뉴스가 희생되었다."
이를 두고 <미디어 모노폴리>를 번역한 정연구 교수는 "미국 월가의 붕괴는 언뜻 보기엔 미디어 기업과 관련이 없어보이나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도산이 월가에 종속된 나머지 무한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을 더이상 감시하고 비판할 수 없게 된 현대 미국의 미디어 기업 탓이었다"고지적했다.
"이제 세계적 추세는 '미디어 다원주의' 강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복합 미디어 기업과 '독재'를 꿈꾸는 보수 정치권력은 애초부터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 벤 카르디언은 미디어 기업의 속성에서 이를 설명한다.
"거대 미디어 복합기업은 더 많은 정치·사회적인 다양성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다양성으로 인해 자신들의 시청자가 적어지고 그 결과 전례 없는 이윤율을 만들어 줄 광고에 대해 그들이 요구할 수 있는 요금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열심을 기울여 그들의 폐쇄적인 정책을 바꾸려는 의회와 연방기구들의 움직임을 물리쳐왔다. 나아가 가들은 전국 시장에 새로운 미디어가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내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들 세력은 미국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우측으로 옮기는데 작용한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권력과 기업의 결탁에 맞서 장행훈 대표는 이제 오히려 '미디어 다원성' 확보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는 흐름이라고 지적한다. 틈만 나면 '외국 사례'를 외치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이러한 흐름도 인식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2000년대에 들어 벌써 두 차례나 미디어 기업들의 경영 입법화 시도가 국민의 저항으로 무산됐다. 오바마는 미디어의 겸영에 반대하고 미디어 소유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대통령이다. (…) 유럽의회는 2000년 12월 미디어 다원주의 보장을 규정한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을 새로 채택했다. '유럽 인권 협정'도 미디어 다원주의를 보장하고 있으며 유럽 인권 재판소는 다원주의를 사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제 유럽의 미디어 다원주의 강조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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