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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나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정혜윤의 날아다니는 여행기] 런던에서 점퍼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1870년대가 넘어서자 사람들은 교외의 집과 정원 주택지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고 런던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은 켄싱턴 공원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사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문의 체면이 좌우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전원에서 진정한 잉글랜드를 찾고 싶어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사랑받게 된 화가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는 컨스터블이다.

컨스터블은 유명인의 초상화나 종교,역사화,유적지를 그린 화가가 아니고 시골길이나 농지,강물이 흐르는 잉글랜드 농촌와 그의 고향 잉글랜드 남부 스타우어 강둑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는 실제 자연보다 더 그럴듯하게 그리는 것을 거부했는데 아마도 그는 찬찬히 물레방아와 시골길을 관찰했을 것이고 하늘의 구름과 날씨와 바람을 꼼꼼히 일지에 적었을 것이고 그보다 더 오래 정성껏 그림들을 다듬었을 것이다.(이 박물관에는 그의 지갑이나 메모첩같은 소집품들도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그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 묻힌 터너와 동시대인으로 여러모로 그와 비교되곤 했던 것 같다. 살아있는 동안에 더 성공적으로 보였던 것은 터너였는데 두 차례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컨스터블의 입지가 더 확실해졌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영웅들에게 어울릴만한 집을 제공해 준다는 국가 정책이 추진 되었을 때 그의 그림 건초 수레에 그려진 오두막집 윌리 롯의 집이 모델로 선정되었고 토마스 쿡 여행사와 그레이트 이스턴 철도 회사는 컨스터블 지방으로 가는 여행 상품을 내놓기도 했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밀레를 바라보듯 영국 사람들은 컨스터블을 바라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소개하는 글 들 중 읽고 가장 좋았던 것은 박지향 교수가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이란 책에서 소개한건데,

'물레방아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 버드나무, 오래된 모습의 강둑, 나는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나는 그것들을 그릴 것이다. 그림은 감정의 다른 말이다.나는 부주의했던 소년 시절을 스타우어 강 강둑에 놓여있는 모든 것과 연결시킨다. 그것들이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였다.

부주의했던 어떤 시절, 내 옆에도 은행나무와 포도나무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미소를 짓게도 된다. 컨스터불 그림이 환기시키는 기억 속에서 시간은 항상 천천히 흘러가고 사위는 조용하고 마음을 다독거릴 일만 남았다. 제국의 몰락과 전쟁을 치른 영국 사람들은 삶이란 우리 모두에게 슬픔이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제부터 진짜 뭘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삶의 목표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 풍경 속에 버드나무가 수줍게 흔들리고, 구름이 떠다니고, 작은 집에 아이들 뛰고, 건초더미 쌓여 있고, 수수한 음식이 차려지고, 진실만을 말하고 가끔은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어쩐지 안심하게 되는…

▲컨스터불 그림이 환기시키는 기억 속에서 시간은 항상 천천히 흘러가고 사위는 조용하고 마음을 다독거릴 일만 남았다.

남진의 '저 푸른 초하늘에 구름같은 집을 짓고 살자'는 노래를 절규하듯 부르는 취객,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은 노래를 부르며 살짝 눈물을 비치기도 하는 내 푼수같은 선배들. 그 옛날 내 고향 푸른 하늘밑에 진짜 이쁜 여자친구를 두고 왔다고 주장하는 선배들, 그들 모두 이 앞에 세워주고 싶다. 나는 풍경화가 현대적 감수성이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월트 휘트먼의 내 자신의 노래를 잠시 같이 불러보자….

'...
풀밭에서 나와 함께 빈둥거리다… 네 목에 있는 마개를 열어다오
내가 바라는 것은 말도.음악도,시도 아니야…관습도 강의도,최고의 것도 아니지
단지 그 고요함, 네가 부르는 콧노래가 좋을뿐
그토록 영롱한 여름,유월의 아침에 우리가 함께 누웠던 일을 추억하네

너는 내 엉덩이에 머리를 올리고 내 위로 살며시 돌아누웠지
나의 갈비뼈를 감싼 웃옷을 벗겨 훤히 드러난 내 가슴에 혀를 대고
자꾸만 파고 들어 내 턱수염을 느끼고 내 두발을 감싸 안았지…

지상의 모든 논쟁보다 더 높은 평화와 지혜가 순식간에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졌고
나는 신의 손길이 나의 노련한 손임을
신의 영혼이 나의 맏형임을
태어난 모든 남자들이 나의 형제임을..
모든 여자들이 나의 여동생임을 연인임을,
그리고 창조의 근본이 사랑임을 알았네.'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가 소개한 이 노래도

한달에 천리라를 벌 수 있다면
난 정말이지 자신할 수 있어
온전한 행복을 찾을 거라고
난 그러 평범한 회사원이라서 많은 걸 바라지 않아

그저 열심히 일해서 마침내
온전한 평화를 찾고 싶어
교외에 있는 자그마한 집에서
바로 너처럼 젊고 예쁜 아내랑 살고 싶어
한달에 천리라를 벌 수 있다면
난 쇼핑을 많이 할 거야

내가 원하는게 있으면 가장 좋은 것들을
많이많이 사줄거야

(이탈리아 노래 -한달에 천리라를 벌 수 있다면)


1892년 한 영민한 소년이 배포 크게도 기숙사에게 친구에게 이런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현재의 평화로운 세상을 엄습하는 거대한 변화를 볼 수 있어
대격변, 소름끼치는 싸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전쟁
그리고 나는 너에게 런던이 위험에 처할 것과 런던이 공격당할 것과
내가 런던을 방어할 것임을 예언한다
내가 런던의 방어를 지휘할 것이며 런던과 제국을 재앙으로 부터 구할 것이라고
너에게 예언한다'


그 소년의 이름은 왓치맨도 베트맨도 아니고,바로 윈스턴 처칠이었다. 그의 예언은 반은 맞고 (그는 런던을 방어한다) 반은 틀린다.(제국은 구하지 못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죽고 2년 후부터 제국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역사는 팍스 브리타니카의 빅토리아 시대를 피루스 왕의 승리(승리했지만 결국은 얻은게 없는 승리) 라고 말한다.빅토리아 시대는 폭포와 도시에 이름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빅토리아 시절의 위기감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아무래도 우주전쟁으로 잘 알려진 웰스일 것 같다. 그의 소설 <타임머신>의 출발지는 영국 가정의 안락한 거실이다. 그날 그곳에 모여 차를 마시던 쟁쟁한 사람들은 집주인으로부터 시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듣는다. 대략 8일쯤 시간이 흐른 후 주인은 자기의 실험실에서 나와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는 80만 년후의 세계를 다녀왔다면서 인간은 인형같이 가냘프고 깨질 것 같이 작고 연약하고 하얀, 꽃같이 예쁜 엘로이 족으로 진화했었는데 엘로이들이 그를 보자 화환을 걸어주며 어찌나 뜨겁게 환영했던지 꽃으로 질식할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과일만 먹고 사는데 주위에 노동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몸도 가냘프기만 했다.그런데 시간 여행자는 곧 그들에겐 행복한 날의 한 떨기 불안함 같은 한가지 수수께끼가 있단 걸 알게 되었다.그들은 어둠을 무서워하고 밤만 되면 무서워 벌벌 떨며 모두들 모여 잔다. 시간 여행자는 얼마후 끔찍한 진실을 알게되었다. 도시 곳곳에 있는 우물 속에는 또 다른 종족,즉 흉측하게 생긴 야행성 괴물들이 사는데 그들 역시 엘로이처럼 인간들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노동을 하는 밤의 종족인 몰록들은 밤이면 몰려 나와 엘로이들을 공격하고 먹어치운다. 지상에 사는 아름다운 종족 엘로이, 지하에 사는 흉측한 종족 몰록. 타임머신의 주인인 시간 여행자는 두 종족을 지켜보면서 이것은 인류의 이기심에 대한 엄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수고롭게 일하는 또 다른 인간들의 등위에 올라 앉아 안락과 쾌락을 누리며 살아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런 결과를 맞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 준 후 시간 여행자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떠난 뒤 그 거실에는 그가 남기고 간 꽃 한 송이만이 시간 여행의 증거로 남아 있었는데 그 꽃은 시간 여행자가 사랑했던 엘로이 여인 위나가 고마움을 표현하며 그의 가슴에 꽂아준 것이었다.

▲ 웰스의 <타임머신> 표지. 빅토리아 시절의 위기감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아무래도 우주전쟁으로 잘 알려진 웰스일 것 같다. 웰스는 당시에 타임머신을 써서 '만약 세상이 앞으로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오?'란 질문을 던졌을 테고 그 글을 읽은 당시 사람들을 몹시 심란했을 것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과 힘이 사라진 뒤에도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인류의 가슴에 여전히 남아있을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처럼 그 꽃은 놓여있었다. 웰스는 당시에 타임머신을 써서 '만약 세상이 앞으로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오?'란 질문을 던졌을 테고 그 글을 읽은 당시 사람들을 몹시 심란했을 것이다. 어여쁜 엘로이들이 꽃을 던지며 햇살 아래 웃음을 터트리고 뛰어다니는 행복이란 몰록들이 잠잠한 동안에만 가능한 것이니,바로 행복한 날의 한 떨기 치명적인 불안함이었다..

그러나 '발칙한 1890년대'를 포함해서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는 성공과 탐욕에 눈 먼 위선자와 부채를 살랑살랑 부쳐대며 치맛단 사그락거리는 허영심 가득한 요조숙녀만 살았던 건 아닌 것 같다. 그 시기엔 (결정적으로 다윈의 등장 이후) 종교와 과학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으로 고정 관념이 허물어지는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자기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학자들도 함께 살았고 자본주의의 본산이자 자본주의의 아킬레스건인 런던발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도 함께 살았다. 윌리엄 모리스 같이 인간 노동의 소중함을 믿는 사람들도 살았고 찰스 디킨스처럼 구두쇠를 싫어하고 고아와 뒷골목에 애수를 느끼는 사람도 살았고 웰스처럼 쓴 소리를 해대는 사람도 살았다.

그래서,어쩌면 발칙하고 변화무쌍했던, 자본과 제국의 빅토리아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은 '우리보다 더 취한 나라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인간소외, 실업등 휘몰아치는 사회의 변화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해 가장 명예로운 답을 찾아내려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놓칠 수 없는 한 가지가 분명히 더 있다.

▲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은 빅토리아 시대 왕실 수집품의 박물관으로서도 의미 있는 곳이지만 산업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근대 이후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에도 너무나 의미있는 곳이다.
이곳은 빅토리아 시대 왕실 수집품의 박물관으로서도 의미 있는 곳이지만 산업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근대 이후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에도 너무나 의미있는 곳이다. 영국 출신 세계적인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코르셋 진열장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 의상 컨셉을 얻은 곳 바로 이곳이다. 오페라의 대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우리들은 현대의 역사도 한 때 그리스의 예술 작품을 창조했던 사람들과 동일한 인류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에게 단단히 납득시켜야 한다. 무엇이 인류를 근본적으로 변하게 했는가? 그리스인들은 예술품을 창조했는데 우리는 지금 왜 사치 산업의 제품들밖에 생산하지 못하는가?' 라고 개탄했는데 리하르트 바그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있는 곳도 이곳이다.

만국 박람회를 구경한 도스트예프스키가 '광고에 매달리지 않고 불안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언론과 전세계적인 소통,세계 박람회등을 생각하면 창조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지역적인 것이 온갖 이점과 함께 죽어버렸다.이제 어디서 예술가 창조자 시인들이 나올까? 아니면 이제는 단순한 비즈니스맨만 나올 뿐일까?'라고 개탄했는데 그 질문에 대한 해답 역시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을 방문했을 때 대대적으로 홍보 중이었던 것은 뮤지엄에서의 패션쇼였는데 그것은 스텔라 맥카트니가 디자인한 아디다스 스포츠웨어 전이었다. 과학과 돈이라는 삭막한 몸통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시와 노래의 대상이 될 만한 매력을 갖게 될 것인가? 나 역시 궁금하다.상업적 감각과 현실의 요청인 동시에 자기의 역량과 개인적인 고백이 되는 물건들이 어떻게 우리 시대를 대표하게 될 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커텐을 뜯어 만들었음직한 드레스, 오드리 햅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서 입었음직한 의상이나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 시대에 너무 많은 헤어스프레이를 뿌려대며 우리의 언니들이 입었던 과도한 어깨패드 의상이나 다이아나 비도 좋아했다는 베르사체 드레스같은 걸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돈나라면 겉옷으로 입었을게 분명한 속옷들, 스파이스 걸스도 소화 못할 아찔한 하이힐들. 핼무트 뉴튼이 찍었음직한 공격적인 모델들의 사진들… 그러나 이것들 모두의 본질은 그 상품들 뒤에 도시의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이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여학생이 빨간 신호등에도 결코 멈추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설 때, 태연하게 거리의 좌우를 둘러보기만 하는 태도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커다란 빌딩과 작은 입구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방식, 사람들 속에서 여자가 걸어가는 자태, 램프의 기름이나 필수품이 단지 코너를 돌기만 하면 살 수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주부들. 사실상 이런 생활 양식들이 사랑을 이루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욕망을 자극할 뿐이다. 시골길의 담벼락에 홀로 기대어 서서 한 남자의 피를 휘저었던 순진한 아가씨도 이 도시에서는 그의 눈길이라도 한번 끌게 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만약 그 여자가 높은 구두를 신고 가방을 흔들면서 대도시의 거리를 재빨리 걸어다닌다면 또는 차가운 맥주를 손에 들고 발끝으로 신발을 돌리면서 계단에 앉아있다면, 남자는 그 자세에, 차가운 돌 위의 매끄러운 피부에, 그 섬세하고 흔들 흔들하는 구두를 압박하는 빌딩의 무게에 반응해서 그만 매혹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돌의 조각과 가방의 흔들림과 햇빝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하이힐이 이루어내는 어떤 결합이 아니라 바로 그 여자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토니 모리슨 재즈 중에서)

그러나 나는 욕망 예찬론자이다.소유에 집착만 하지 않는다면 매번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욕망은 이런 사랑같은 거다. 그러니까 소유랑은 절대로 다르다.

'이따금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 보답없는 사랑에 열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울화가 치밀곤 한다.그러나 이제 보답없는 사랑이란 없는 법이고 무슨 수든 보답이 있기 마련이라고 난 생각한다' 휘트먼이 열렬했던 짝사랑이 쓸쓸하게 끝난 후 '이따금 사랑하는 이'와 란 제목으로 쓴 시다.

▲ 나는 사실 이곳의 인기 아이템중 하나인 엘리자베스 시절의 '웨어의 거대한 침대'를 보자 엉뚱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나는 사실 이곳의 인기 아이템중 하나인 엘리자베스 시절의 '웨어의 거대한 침대'를 보자 엉뚱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것은 니코스 카잔치키스가 소개해준 것인데 어느 날 욕망에 몸이 달뜬 못생기고 불운한 서른 살 노처녀가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 근교에 머물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의 방으로 들어선 그녀는 손에 두툼한 책을 한권을 들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설명을 좀 들으러 왔어요"라고 말했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두 사람의 무릎이 맞닿았다. 친구가 칸트책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의미들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노처녀는 상체를 약간 수그리고서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가 책을 홱 덮어버리고는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난 칸트보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존 어빙의 일년 동안의 과부에 나오는 장면인데 어느날 그 해의 살아있는 유부녀중 가장 아름다운 유부녀를 보고 사랑의 열병에 빠져버린 순수한 청년이 그 유부녀에게 짝사랑을 고백한 다음, 둘이 처음 만났던 날 입었던 옷을 그대로 달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은 이 문장이다 "이틀 뒤, 에디는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커피가 끓는 동안 그는 침실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메리언이 누워있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다만 그녀의 핑크빛 캐시미어 가디건이었다. 다만 그녀는 단추를 열어두었고 스웨터의 긴 소매 뒤로 돌려놓았다. 마치 가디건 안의 보이지 않는 여자가, 보이지 않는 머리 뒤로, 보이지 않는 두 손을 맞잡은 것처럼, 단추를 열어둔 곳에 브래지어가 빠끔 보였다. 에디 자신이 그녀의 옷을 펼쳐놓은 어떤 모습보다도 더 마음을 홀리는 모양새였다. 브래지어는 흰색이었고 팬티도 그러했는데 매리언은 에디가 좋아하는 위치에 정확히 팬티를 놓아두었다."

그런 순간에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예술입니다.

예이츠는 희망과 기억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의 이름이 바로 예술이라고 했다.예술은 인간들이 두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에 그들의 믿음의 옷을 내걸어 놓는 곳,그 황량한 벌판에서 멀리 떨어져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우리도 예이츠처럼 외치자,v오 희망과 기억의 사랑스러운 딸이여, 잠시 동안 나와 함께 있기를. 나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 주기를. 나의 가슴을 초자연적으로 부풀어 오르게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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