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창조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기위해 만들어낸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나 금융제재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더 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 진보진영에서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취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진보진영을 가장 경악하게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는 무엇일까? 한반도 위기에 대한 강경 행보? 아프가니스탄 확전? 고문 사진 공개 거부? 아니면 금융위기에 대한 정실자본주의적 접근?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기억
답은 '예방적 구금'이다.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안보에 대한 구상을 밝히면서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이들에 대한 예방적 구금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책적 검토에 들어갔음을 시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유명한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사회'에서 경찰에 고용된 천리안들이 살인사건의 '필연적' 발생을 예견해 살인자를 미리 예방적으로 체포하는 것을 충격적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평소 다소 순진할 정도로 유아적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이러한 냉소적 상상력은 사실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원작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블레이드 러너'라는 불후의 명작을 만든 필립 딕이라는 천재 'SF'(엄밀한 의미에서는 전혀 미래 공상 문학의 장르가 아니다) 소설가이다.
그가 이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소설을 집필한 역사적 맥락은 바로 미소냉전이 미국인들의 히스테리를 발생시켰던 시기이다. 그리고 그 시기 미국 네오콘의 선구자들은 소련을 핵으로 선제공격해 지도상에서 제거하자고 입에 거품을 물곤 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의 광기에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아이러니하게도 네오콘의 후원자였던 레이건의 햇볕정책에 의한 소련의 점진적 붕괴를 선호했다)
그토록 천재적 상상력에 빛나는 필립 딕도 설마 냉전이 종료되고 모두들 평화가 오리라 생각했던 21세기에 철지난 네오콘들에 의해 예방적 독트린이 부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립 딕이 더욱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예방적 독트린이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 나오는 극우 전쟁광)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리적 리버럴들에게도 일부 수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많은 이들이 조지 부시 2세의 극단적인 예방 독트린에 충격을 받았지만, 실제로 이는 이미 민주당의 행정부에서 국내외적으로 씨앗을 보인 바 있었다. 네오콘의 광기어린 이론가인 윌리엄 크리스톨도 그런 주장을 하면서 리버럴들을 비웃었는데, 다소 과장이었지만 진실의 일면이 존재했다.
사실 클린턴 행정부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9. 11 테러가 발생하기 오래 전부터 테러와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외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민한 바 있다. 왜냐하면 클린턴 행정부 당시 이미 뉴욕 세계무역센터 지하주차장 폭파 사건 등 9.11을 충분히 예견하게 하는 징후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그러한 사건 이후 테러리스트로서의 위험이 예견되는 이들을 예방적 구금의 견지에서 그 중범죄와 무관한 경범죄로 미리 체포하는 안들을 검토한 바 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범죄자가 어처구니없게도 전조등 고장으로 교통경찰에 의해 검문되다가 체포되는 일화가 나오는데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정부이기에 민권단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예방적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지는 못했다. 이후 클린턴의 측근인 딕 모리스는 이러한 예방적 구금 조치들을 강력히 추진했다면 9. 11 테러범들도 미리 검거했을 것이라는 다소 과장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지난 4월 29일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100일에 맞춰 관타나모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시위가 백악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체니의 '본토 공격' 예언은 적중할까?
중요한 것은 오늘날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달리 '9. 11 이후 리버럴'이라는 점이다. 이는 곧 이라크 침공 반대 등에서 오바마가 미국 진보파의 상징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테러리즘에 대한 국내외 노선에서는 클린턴 시대보다 더 네오콘과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제일 먼저 잘 드러내 준 것이 전 부통령 딕 체니의 거친 공격이다. 체니는 퇴임 부통령이 초당적 행보를 보이는 관례도 깨고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는 오바마 행정부의 유약한 대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테러리스트들이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충격적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일각에서는 강경보수인 체니의 이러한 언급이 의도와 달리 공화당에 부정적 이미지만 계속 축적한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만에 하나 오바마 임기 중에 정말로 미국이 본토 공격을 다시 받는 다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경험과 체니의 메시지를 결합시켜 국가안보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체니의 다소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참주 선동의 메시지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이해할 수 있다.
▲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오바마의 두 얼굴을 비판한 아르헨티나 <끌라린>紙 시사만화가 크리스토발 레이노소의 시사만평 '관타나모' ⓒ크리스토발 레이노소 (프레시안 독점) |
관타나모도 꼬이고
체니의 발언 이후 고문 사진 공개 철회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오바마가 직면한 곤혹스러운 상황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오바마는 사실 애초에 사진 공개를 쉽게 생각하고 민주당 내외 진보진영의 입장에 공감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인화물질이 산적한 사태에 기름을 부을 것을 이라크 현지 군 지휘관들의 우려와 반대가 강하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가세하자 결국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과거 부시 시절 물고문 사전 인지 여부로 오점을 드러낸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민주당내 좌우의 논란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오바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민권단체의 지적처럼 사진 공개와 이라크의 치안 악화 사이 인과관계에 대한 증거는 불충분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만약에' 라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바마의 처지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라크의 수렁은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결국 부시의 전쟁에 불과했지만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오바마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오바마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전임 정부와의 질적 차이의 극적 상징인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려는데 따르는 어려움이다. 그토록 오바마 행정부에 협조적이기만 할 것 같아 보였던 민주당 거물들이 관타나모 대신 자신의 지역구에 중범죄인들을 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과장된 공포감을 보이며 2010년 선거를 염두에 두고 오바마를 한 순간 외면하는 현실은 문제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물론 오바마 시대의 출범에 열광했던 독일 등 우방 국가들도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수용하는 데에 여러 가지 법적·실무적 곤혹스러움 속에서 냉정하게 돌아서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재까지 프랑스에 1명, 영국에 1명을 이송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오바마 정부는 100여개 나라 정부와 접촉 끝에 최근 겨우 힘없는 팔라우에 당근을 주고 일부 수감자들을 이송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 오바마의 저격수를 자처하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이 지난 5월 21일 미국기업연구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헌정주의 원칙과 '절대적 타락' 사이의 줄타기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 속에서 오바마는 '거대한 실패작'이라 공격했던 부시 시절의 상징인 군사법정을 일부 절차를 보완해 유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민권단체를 다시 실망시켰다.
오바마가 처한 곤혹스러운 상황의 가장 극적인 징후는 군사법정 유지에 이어 심지어 예방적 구금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하겠다는 발언이다. 아마 미국의 민권단체들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부시 시대가 가고 나서 오바마의 입에서 그토록 무시무시한 말이 나왔을 때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미국이 처한 곤혹스러운 상황의 핵심인 것도 사실이다.
관타나모 기지의 포로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5가지 범주로 다양하게 구분하듯이 여러 색조들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방면할 수 있는 억울한 소시민과 쉽게 기소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 이렇게 두 그룹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터내셔날 헤럴드 트리뷴>의 5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어떤 테러리스트는 매우 위험한 이로 보이지만 부시 시절 고문으로 증거가 확보되었기에 정상적 법 절차에서는 기소되기 어려운 이도 있다.
이렇게 현실은 '다크 나이트'라는 배트맨 영화가 그리는 냉소적 현실과 닮았다고 할 정도로 복잡하다. 9. 11 이후 미국은 더 이상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선의 깨끗한 승리라는 낭만적 환상에 도취되어 있기 어렵다는 것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미국 사회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고결한 자유주의자의 신화를 구하기 위해 배트맨에게 '더러운 역할'을 맡겨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오바마 시대를 일관되게 괴롭힐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 속에서 오바마는 미국 헌정주의 원칙을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민권단체와 '테러 전쟁에서 중간 지대는 없다'며 절대적 타락을 옹호하는 네오콘들 사이에서 다소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바마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유혹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더 어메리칸 프로스펙트>에서 부르스 애커만 교수가 제언하듯이 초당적 특별 위원회를 통해 초법적 타락에 대한 유혹을 견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바마가 두 선택지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내고 미국 공화국의 순수성을 복원해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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