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의 소통에 대한 평소의 느낌이었다. 대중문화에 대한 열광이든 반일과 혐한의 대립이든 언제나 감정은 넘쳐나는 반면 서로에 대한 이해나 설명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감정마저도 쉽게 전해지지 않는 듯하다. 물론 그 슬픔과 비통함은 맥락과 배경이 필요한 것이었으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에 대한 얘기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도한 일본 신문들 ⓒ한국일보 인터넷판 |
'노무현'에 대한 시선
일본 사회에서 한국의 소식이 전해지는 창구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특히 여전히 종이신문 등 전통적인 언론의 권위와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게 유지되고 되고 있다는 점은 일본 미디어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론의 시각은 '노무현 현상'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시선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축이다.
"노무현 정권 시대에는 역사인식과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냉각되면서 양국 정상 간의 셔틀외교도 중단되었다. 당시 한국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에 치우친 온화정책을 고집했고 그로 인해 일본, 미국과의 안전보장관계 또한 순조롭지 못했다." - <요미우리신문> 2009년 5월 24일자 사설
노무현 정권을 '친북', '민족주의', '반미', '반일'(<산케이신문> 5월 29일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우익언론으로 알려져 있는 <산케이>만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본 사회에서 대일정책과 대북정책은 한국의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 업적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10.4 남북정상선언에 대한 언급에서도 알 수 있다.
"대통령 임기 중에도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는 등 파란이 계속되었으며 미국, 일본 등과도 마찰을 일으키며 '혁명정부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 말에 실현된 김정일 총서기와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차기 정권이 지속하기 힘든 파격적인 지원약속을 하여 화근을 남겼다." - <마이니치신문> 2009년 5월 24일자 사설
한국 사회에 대한 프레임의 부재
문제는 일본의 주요 언론들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촛불'로 상징되는 한국의 저항문화는, 안정된 사회구조를 바탕으로 기존의 규범과 질서 유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 사회의 틀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에서는 곧바로 수사가 강압적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치대립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의 비극을 그렇게 가져가서는 좋지 않다. 세계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 또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치까지 대립을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 - <아사히신문> 5월 24일자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추도 움직임을 사회의 위험요소로 쉽게 간주하고 우려를 표하고 있는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다. 그 우려의 내용 또한 한국 정부나 보수언론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염려되는 점은 특히 전 대통령의 측근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 자살을 '정치적 타살' 등으로 평가하며 이명박 정권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 한국의 정쟁은 격렬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큰 표 차이로 당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우대립의 구도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세계 동시 불황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이 새로운 혼란의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 <마이니치신문> 5월 24일자 사설
즉 '좌파가 반정부활동을 획책한다'(<산케이> 5월 24일자)는 극단적인 정도는 아니더라도 '반정부세력', '정쟁', '좌우대립' 등과 같은 틀로 '노무현 현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의미가 배제되어 버리는 것이다.
조문객이 상주가 되고 상주가 조문객이 되어 흐느꼈던 그 거대한 추도의 물결을 어떻게 그러한 낡은 틀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새로운 소통의 장
신문과 방송의 겸영이 허용되는 일본에서 텔레비전 방송이 이와 다른 시각을 가지기 힘들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잡지들이 자세한 배경과 맥락을 다룰 리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시민들이 '노무현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 현 정부의 실정을 포함한 현실에 대한 불안과 실망, 한국 사회의 공고한 권력구조에 대한 불만과 분노 등,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들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 정치에 대한 직간접적인 참여의 장이 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인터넷은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관점을 가진 토론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
블로그나 각종 커뮤니티는 매우 개인적이거나 탈정치적이며, 게시판은 주로 보수적인 의견에 의해 주도된다. 오마이뉴스 일본판의 실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인터넷 언론이 권위를 획득하는 일이 일본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보수언론들의 관점만이 돌고 도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는 이해와 설명을 앞세운 소통을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에 다른 관점을 가진 한국의 언론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권위를 가진 언론으로서 직접 소통의 창구를 만드는 것. 일본의 시민들이 한국에 관한 소식을 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서로가 안고 있는 수많은 '공통의 문제'에 함께 접근할 수 있는 소통의 장.
그렇게까지 해서 소통해야 하는 이유는?
"정권교체로 등장한 이명박 정권이 북한의 핵개발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한-미-일간의 연대가 재구축되고 있다. 노무현 씨의 죽음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 <요미우리신문> 5월 24일 사설
이처럼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가 새로운 시대의 흐름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비극이다. 비록 '노무현'은 공유하지 못했지만 '노무현 이후'는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에게 한국어를 배워 이제 제법 능숙해진 일본인 친구가 있다. <PD수첩>을 통해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서울 시내 곳곳을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이 장악해버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날 그 장면을 보려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어딜 봐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더군요. 여기선 북핵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니까요. 다들 그래요.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일해야 하고 그 날 일어난 일을 알 수 있는 건 언론의 보도가 다죠.
다른 사람들보다 한국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조선일보 일본판을 읽어요.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외의 관점들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모두가 저처럼 한국어를 배울 수는 없는 거잖아요?"
* 필자 김성민 씨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일본 도쿄대 학제정보학부 박사과정에서 한일 미디어 문화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008년 3월부터는 일본 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크레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대중음악 활동을 하는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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