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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그가 그립습니다"

[김민웅 칼럼]<39>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

눈물로 옷깃을 여밉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우선 삼가 정중한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권양숙 여사를 비롯해서 유가족들의 슬픔에도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해드립니다. 국민들도 모두 아파하며 이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눈물로 옷깃을 여미고 있습니다.

맑은 5월의 하늘을 가로질러 비가 그리 오더니 웬 일인가 했는데 다 까닭이 있었나 봅니다. 이젠 여름이 다 되었나보다 하고 나섰다가 바람이 차게 불어 몸을 움츠러들게 하더니 그 역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최고 권력자이기도 했지만, 당대의 "풍운아(風雲兒)"이기도 했습니다. 동에 번쩍 하면 서에서 천둥이 치고, 서에 번쩍 하면 동에서 번개가 내리쳤습니다. 발길 닿는 데가 누구도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역사의 급소였고, 움직이는 곳마다 어느새 태풍의 눈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뚫고 살아온 대로, 그 가시는 걸음에 바람과 구름조차도 그대로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요? 실로 한치 앞을 가늠할 수없는 "풍운(風雲)의 시대"는 아직 멈추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이 죽음 뒤에 어떤 바람과 폭풍이 또다시 기다리고 있는지 과연 누가 알겠습니까?

한 나라의 역사가 지속적이고 진지하게 축적되는 일이 이리도 힘겨운가 하는 깊고 깊은 비애감(悲哀感)에 빠져듭니다. 권력이 바뀌면 거의 언제나 여러 가지 모양으로 되풀이 되고 모독을 겪는 지난 시절의 지도력이 마주하는 운명에 이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게 됩니다. 최고 권력의 결말적 비극을 목격하지 않은 적이 없는 이 나라 현대사의 기록에 우리는 이토록 뼈아픈 일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과거에 대한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기다리기도 전에, 생사여탈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살아있는 권력의 모진 기세에 이 나라의 힘없는 민초들은 지금 슬픔을 넘어 분노까지도 표하고 있군요. 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누군가는, "모든 자살은 언제나 타살"이라는 사회학적 명제를 부인하고 싶을지도 모르나 우리는 그 타살의 맥락에 대한 번민과 성찰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 생명이 수없이 짓밟히고 있는 오늘의 시대가 지닌 포악한 얼굴을 이토록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있을까 싶기만 한 겁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모진 기세에.....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 비통한 소식을 듣고 나서, 가슴이 한 없이 뭍 밑으로 가라앉는 무쇠덩어리가 되고 말문이 막혀보지 않은 이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떨리는 다리를 이끌며 당도한 벼랑 끝 위에서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자신이 한때 치열하게 격투를 벌이며 보다 나은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했던 세상과 하직하기 위해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스러운 심정을 자신의 마음처럼 헤아려 보지 않을 이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위기와 도전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여겼던 당차고 강한 그였기에, 이 충격을 감당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현실에서 마음 약하게 사는 이들의 마음을 더더욱 참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때 최고의 권좌에 앉았던 이에게마저 희망을 앗아가는 현실이 이렇게 가혹하게 겪어진다면 그 밖의 다른 사람의 삶이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을 지경일 겁니다. 그에 대한 수사를 놓고 명백한 조롱의 수준으로 논란을 벌였던 언론도 있었지요. 이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간의 검찰수사과정을 지목하는 것이 분명한 유서에는 너무나 힘들었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어 자기 하나로 이 모든 것을 종결짓겠다는 의지를 남겨 놓았습니다. 짧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단칼에 모든 것을 베어버린 그 유서의 기운 앞에서 우리는 자존감이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읽게 됩니다. 더는 굴욕적으로 살아있는 권력의 의도에 말려들어 고 통을 겪지 않겠노라고 하는 그 의중을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하다니 하는 아픔이 우리 모두에게 애끓듯이 스며듭니다.

노무현 시대, 민주주의의 무대 건재해

한 개인의 역사적 자취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노무현 시대가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소중한 역사적 공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개인적 역할에 대한 논란이 있고 그와 지식인들 사이에 치열한 논전도 있었으나 적어도 노무현 시대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때때로 모순과 갈등이 존재했고 그것으로 함께 했던 이들과 격돌했던 상황도 없지 않았으나 그 큰 줄기는 민주주의이고 역사의 진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흉포한 현실을 보면 이는 명쾌하게 드러나는 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권력과 민의가 서로 충돌할 때 그걸 놓고 따지고 풀어가는 무대가 있는 역사와, 아예 그 무대를 해체해버리는 역사는 엄연히 다릅니다. 우리는 노무현 시대에 어려운 일도 많이 겪어냈지만 이토록 무자비하게 입에 자갈이 물리고 손에 포승이 묶이고 백주에 민초가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노무현 시대의 청산이 다음 시대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과 논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조급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청산의 대상과 계승의 목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폭력과 탐욕의 시대를 주인 되게 하는 것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홀로 안고 가야할 바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건 어떻게든 막고 나서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책임과 고통 사이에서 고독하게 이생과 작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만이 홀로 안고 가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지금부터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적 원망을 넘어 이 시대를 바로 잡기 위해 어떤 힘을 뿜어내야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노무현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새로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겁니다.

▲ ⓒ연합뉴스

5월의 꽃들처럼 바람에 진 그가 그립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후보였던 그와 그의 사무실에서 처음 대면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미국과 국제정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던 그가 잠시 귀국해 있던 저와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한번 만남에서 두 시간 여의 시간을 들인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노무현 당시 후보는 매우 빠른 학습능력을 가지고 세계정세의 흐름을 꿰뚫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가 갔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짧은 만남이 있었으나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지지자들과의 관계, 남 북 간의 문제를 푸는 방식에 있어서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 등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달라 더는 보기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는 입장이 되고 말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의 성공을 딛고 아직은 힘이 약한 이 나라 진보세력의 미래가 가능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판단들이 얼마나 옳았는지는 새로운 평가와 정리가 필요하겠지만, 오늘 우리가 겪는 현실을 보면 "노무현"이라는 역사적 존재의 가치에 대해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떠나니 그리워하는 이 마음 이해하소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통해하는 이 시대의 민초들의 마음이 혼령이라도 그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훨씬 많았음을 그가 알았으면 합니다. 미웠던 것은 사랑했기에 그랬던 것이고, 기대가 높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요. 이제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남겨진 그림자는 깁니다. 떠나자 비로소 그리워하는 이 모순된 마음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저 하늘나라에서도 부디 쓸쓸해하지 마시고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고 당신이 남긴 목소리에 담긴 그 무수한 뜻을 헤아리며 6월을 맞이하렵니다. 그저 허무하게 소멸해버린 죽음으로 내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세월의 힘을 우리는 아직 잃지 않았습니다. 6월 그 태양은 뜨거울 것이며, 함성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거리는 춤출 것입니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열정과 진심을 바친 당신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역사 속에서 다시 만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우리에게 당신은 애증의 교차된 대통령이었지만, 그래도 사랑을 더 많이 느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 그 이름 석 자에 존경과 그리움을 더하렵니다.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우리가 당신을 눈물로 보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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