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위원회가 '여론 수렴'에 실패할 경우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 하겠다'는 당초 합의문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언론 관계 4개 법안을 두고 다시 6월 '입법 전쟁'이 예고된다.
공청회? '의견 듣기'만 할 뿐 '수렴'은 안됐다
지난 70여 일간의 활동 기간 동안 미디어위원회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은 극히 좁은 폭의 여론 수렴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간 미디어위원회가 진행한 '여론 수렴' 절차는 각각 4번의 주제별 공청회와 지역별 공청회가 전부로 이마저도 횟수를 두고 "많다", "적다" 논쟁으로 한 달 가까이 실랑이를 벌였다.
한나라당 측이 내세우는 논리는 "미디어위원회 자체가 여론 수렴"이라는 것. 한나라당 추천 위원인 강길모 위원은 "합의문을 봐도 여론을 수렴하는 주체는 국회 문방위"라며 "미디어위원회는 전문가로서 역사적 책임을 가지고 국민의 이익이 무엇인지 모색해서 결과를 내놓으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 위원들은 "미디어위원회가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논의기구'로서의 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고 맞서고 있다. 최영묵 위원은 "미디어위원회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국회 문방위에 그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당연한 역할"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여론을 수렴할 것인가도 당연한 권리로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미디어위원회가 진행하고 있는 공청회는 내용상으로도 부실하고 공청회에 나온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할 절차도 없다는 점에서 '여론 수렴' 절차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난 6일 부산에서 열린 지역 공청회의 경우 방청객들의 질의 응답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김우룡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산회'를 선언해 논란이 일었고 위원회는 "유감 표명"을 담은 사과문을 냈다. 최영묵 위원은 "이제까지 진행된 공청회는 양당 추천위원들이 '듣는다'는 것 외에 '수렴된다'는 의미가 전혀 없었다"면서 "특히 공청회 의견만을 두고 계량화, 정량화를 통해 논의할 만한 자료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은 '공청회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에 '특정 집단이 와서 주장하는 것이기에 여론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는 뒤집어보면 한나라당도 공청회가 지역 여론을 수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여론조사로 입법하자'라는 '언론 플레이'"
공청회가 실질적인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부각된 이후 민주당 측 위원들과 시민사회에서는 '여론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으나 한나라당 위원들은 "MBC 등으로 인해 국민 여론 자체가 왜곡된 상황"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여론조사 반대" 입장을 천명한 이후 더욱 문제시되는 것은 "법조문 하나하나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한나라당 측 추천위원 성명)이라는 식의 '언론 플레이'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도 "여론조사로 입법을 대체하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며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했고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도 이러한 논리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당일 회의에서도 여론조사를 주장하는 대부분 위원은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의 반대에 맞서 "단순하게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가 아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법안을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회 문방위에 의견을 제출하자는 것"이라며 야당 의원들을 설득했다. 선진과창조모임 추천 위원인 박경신 위원은 "중립적인 여론조사 설문 조항을 만들어올테니 그를 두고 논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최영묵 위원도 "우리의 주장은 결코 '여론조사' 한가지만 해서 그대로 입법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여론조사, 미디어 시장 지배력 조사, 매체 신뢰도 조사를 하고 외국 사례 등으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해서 국회 문방위에 제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니 그것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만약 국민들이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 국민 여론조사도 없이 여론 시장 개편안을 추진하는 나라가 어디있느냐"고 비판했다.
▲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김우룡·강상현 공동위원장이 서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뉴시스 |
정치적 독립성·자율성은 어디갔나
위원회를 파행으로 이끈 이번 '여론조사' 공방이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사회적 논의기구'로서 미디어위원회가 내세우는 자율성·중립성의 실추다. 양측 위원들은 '여론조사' 논의가 파행에 이르자 서로 "정치적 선동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지침이 전달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특히 민주당 측에서는 야당의 '여론조사' 실시 주장에 이전까지만 해도 '국회 3당 간사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식으로 대응하던 한나라당 위원들이 이날 "여론조사 전면 거부"라는 입장을 택한 것을 둔 의구심이 크다.
강혜란 위원은 "막판에 최종 의결이 되려는 분위기에서 한 위원이 어깃장을 놓고 한나라당 내에서 혼선이 일다가 잠시 나가 비공개 논의를 하고 오더니 '여론조사 거부'라는 가장 강경한 입장으로 합의해서 돌아왔다"며 "함께 논의를 하던 위원들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고 정치적인 '오더'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위원들에게 '향후 1년 동안 언론계·방송계 임명직 진출 거부 선언을 하자'고 제안한 양문석 위원은 "지난 12일 한나라당 나경원 간사가 '여론조사를 반대한다'고 밝히면서 '여론조사 못할 이유가 없다'던 위원들이 '절대 불가'로 입장이 밝혔다"면서 "위원의 정치적 독립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 것은 결국 향후 나올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위원들은 "너희는 다르냐"는 식의 대응이다. 한나라당 추천 위원인 강길모 위원은 "야당 측 위원들도 그쪽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오히려 한나라당 위원들은 소신과 철학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매 사안마다 한 목소리를 내는 야당측 위원들이 오히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파행' 미디어위원회 …논란 장기화 될 듯
그러나 미디어위원회는 6월 임시국회가 시작되고 나서도 한동안 '기싸움' 대치 상태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양문석 위원은 "한나라당 위원들에게 읍소를 하더라도 미디어위원회에서 '완결' 가능한 여론 수렴을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야당 측 미디어위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한나라당 위원 설득에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길모 위원도 "미디어위원회를 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만 앞서는 사람들은 미련이 없겠지만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만약 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판을 깨고 나가면 '그럴려고 왔느냐'고 맹렬하게 성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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