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중 어떤 이는 낡은 정치에 익숙하고 권력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거나 순응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지나치게 품위를 결여하여 백봉신사상 류의 수상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질문을 미국의 공화당에 던졌을 때는 어떠한 답들이 나올까? <더 프로그레스 리포트>에 따르면 <CBS> 방송은 전 부통령 딕 체니에게 5월 10일 실제로 위의 질문을 던진바 있다.
놀랍게도 체니 전 부통령은 매우 솔직하게 콜린 파월 전 합창의장보다 라디오 진행자인 러시 림보를 공화당을 대표하는 이로 더 적절하게 생각한다고 속내를 밝힌 바 있다. 이는 그의 선호도 표시일 뿐 아니라 현재 공화당내 정치지형을 객관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파월은 민주당에서도 존경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의 상징이다. 후자는 천박한 비속어로 노골적 인종주의와 극단적 이념을 선동하는 극우 포퓰리스트다. 그는 오바마 취임 이후 다른 공화당원들이 입조심하고 있을 때 태연하게 오바마 정부의 실패에 대한 큰 기대감을 표시해 모두를 아연하게 하기도 했다.
▲ 극우파 라디오 진행자인 러시 림보가 공화당의 간판이 된 상황은 공화당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
이 얘기들은 굳이 학문적 분석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미국과 한국의 대표적 보수정당이 왜 지금 망가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은 집권당이고 미국 공화당은 얼마 전 정권을 빼앗긴 들판의 야당 신세이기 때문에 공통점을 생각해보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공통된 궤적만 놓고 본다면 오늘날 공화당의 초라하고 곤혹스러운 신세는 마치 한나라당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기만 하다.
예를 들어 지금은 많은 이들이 잊었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트레이드 마크는 실용주의였다. 이는 그리 틀린 말이 아닌 것이 그는 텍사스 주지사 시절 이민 개혁 등에서 다소 초당적인 태도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바 있다.
하지만 9. 11 테러 등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부시를 마치 근대 초기를 연상시키는 극단적 천민보수 대통령으로 바꾸어 놓았다.
버클리 대학의 존 유 교수 류의 천민 보수 법학(고문 허용의 법적 기초를 제공)을 신봉하며 대통령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설파하기 시작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조기 레임덕에 시달리며 미국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로 기록되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의 소위 실용주의 후보 이명박은 집권 후 촛불 트라우마 속에서 너무 일찍 천민보수의 대변자로 각인되며 또 그 만큼 비례해 무너지고 있다.
그래도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내 정적이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마치 과거 흥선대원군처럼 몇 년간 숨죽이며 부시 따라하기를 실천해야 했지만 한나라당 내 이명박 대통령의 정적인 박근혜 전 대표는 이미 마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초당적 대통령 후보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라는 광속 열차에 탑승하면서 너무 빨리 공화당의 궤적을 향해 치닫고 있는 셈이다.
공화당의 기이한 분석들
오바마 100일을 맞이한 공화당의 현 주소는 너무 암담하다. 오바마에게 충격적으로 패한 직후만 하더라도 공화당 근본 개혁의 목소리는 드높았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기성 강경 보수 지도자들조차 히스패닉 계열과의 정치연합을 통해 새로운 노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판 오바마 만들기 열풍 속에서 당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흑인 출신 신예 마이클 스틸리가 '링컨의 당' 재건을 내걸고 당선됐고, 인도계 이민자인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점차 패배의 원인을 놓고 기이한 분석이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어메리칸 코즈(American Cause)라는 강경보수 단체는 공화당의 패배가 반(反)이민 태도를 보다 강경하게 견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이념의 흐린 안경을 쓰다 보니 공화당의 반이민 태도가 히스패닉계 등의 이반을 가져온 것을 정반대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날 공화당내 주류들의 모임에서는 소통 방식의 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집권여당 내 주류가 천민보수 이념의 안경을 쓰고 양도세 등에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마치 성공적 보수 정부를 만드는 것으로 착각하며 오직 소통 방식 개선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과도 흡사하다.
이와 발맞추어 '올드 보이'들은 다시 슬며시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무기를 동원하고 있다. 소위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개념인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 말이다.
오바마 당선 직후 초당적 정치의 시대가 왔다고 어색하게 선언했던 당파성의 화신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노골적으로 경기 부양 예산 전투의 진정한 목적을 숨기지 않고 있다. 즉, 오바마 정부에 생채기를 내면서 동시에 공화당 집토끼들이 다시 이념전쟁에 결집하는 것 말이다. 그는 <폴리티코> 2월 6일자가 밝혔듯 이 이념 논쟁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부활했다"고 무척 만족해하고 있다.
이들이 고대하는 다음 전투는 대법원장 인준 투쟁이다. 이들은 이 전투를 통해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 의원들을 극단적 좌파로 낙인찍으며 다가오는 중간선거의 토대를 단단히 다지기위해 칼을 벼리고 있다.
물론 <어메리칸 프로스펙트> 5월 8일자가 예리하게 지적하듯 16개의 상원 의석이 걸린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결정적 도전에 취약한 민주당 상원의원은 해리 리드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지만 말이다.
한국의 집권 진영도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집토끼 결집에 전방위적으로 올인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결적 노선이나 자신들 천민보수 노선과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좌파나 범죄인으로 낙인찍는 익숙한 게임 말이다.
스펙터 의원의 이적, 오히려 너무 늦었다
미국에서 올드 보이들의 게임과 달리 공화당 개혁의 선봉이 되리라 기대를 받았던 인물들의 성적표는 현재까지는 초라하다. <더 프로그레스 리포트> 5월 11일자에 따르면, 링컨의 당 복원을 내걸었던 전국위 의장 스틸리는 권력 실세는커녕 당내 강경 보수진영의 눈치만 보고 있다.
물론 공화당의 자랑스러운 보수주의 전통을 아끼는 일부 개혁파들이 적절한 처방들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젊은 보수 논객들이 <그랜드 올드 파티(Grand Old Party)>라는 신간에서 공화당이 경제적으로 특권층 대변에 머무르면 영원히 불임정당이 될 것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날 러시 림보가 파월과 같은 합리적 보수에게 노골적으로 당을 떠나라고 언급하듯이 별로 환영받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 한나라당의 초선인 김성식 의원 등 개혁파들은 마치 <그랜드 올드 파티> 저자들처럼 보다 합리적 보수주의에 대한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기득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결국 체니의 바람대로 공화당의 저명한 온건파 상원의원 스펙터는 며칠 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정치철새라는 논란도 일각에 있지만 공화당 내 소수 온건파들이 1994년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핍박의 세월을 생각하면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스펙터의 이탈로 공화당은 더 농도가 순수해졌겠지만 오바마 진영은 공화당의 의사진행방해를 저지하고 자신들의 진보적 아젠다를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가능성에 전율하고 있다. 체니의 행보처럼 자신들이 들어가 있는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는 것이 공화당의 현 주소인 셈이다.
필자가 공화당 전략가라면 차라리 뉴딜 진보주의 시대에 순응해간 아이젠하워 보수 대통령처럼 콜린 파월과 같은 성향의 이들 중심의 공화당을 만들어 오바마 정부의 경제적 실수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보다 공세적으로 개혁 보수주의의 전형을 만들어간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공화당을 만들겠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카드 모두 오늘날 공화당 지형에서는 만화 같은 이야기이다. 앞으로 공화당은 보다 대대적인 논쟁과 재정립이 시도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
공화당과 달리 집권당인 한나라당에도 앞으로 정치지형의 큰 변화 속에서 스펙터와 같은 이가 나오게 될까? 박근혜 전 대표의 운명은 매케인 의원과 같을까, 다를까? 미국보다 훨씬 흥미로운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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