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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를 물리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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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를 물리치는 법

[김민웅 칼럼]<38> 민심의 반격 속, 연대와 단결로

이미 한참 지난 것 갈은 4.29 재보선에 대해 뒤늦게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바로 어제가 어느새 역사가 되고 마는 속도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우린 반복될 실수를 할 수 있고, 이미 주어진 교훈에 기초한 힘의 결집에 실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권의 폭주가 멈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들의 마음과 몸은 무너지고 있고, 대안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진보진영은 역사의 요구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환멸과 좌절만 깊어간다면 이는 진보진영의 책임 방기다. 함께 하지 않으면 패배를 되풀이 하게 된다.

4.29 재보선은 중대선거 예비투쟁의 장

우선 전제할 것은 지난 4.29 재보선의 해당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여기서 시도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의 전체적 흐름이 진보정치에 어떤 의미를 가지겠는가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를 파악하는 미래지향적 전략 선택에 그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번 4.29 재보선은 정국 전체에 미칠 폭풍이 될 만한 비중은 아니었다. 선거지역도 많지 않았고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서 대중들은 대체로 무력감에 사로잡힌 상태였으며, "노무현 사건"으로 정세를 장악하려 한 집권세력의 의지로 인해 선거 자체의 대중적 관심도나 그 정치적 파괴력이나 사회정치적 담론의 수준에서나 모두 이른바 정국의 분수령이 될 만한 "중대선거"의 차원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는 이후 10월의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2년 대선과 총선의 중대선거를 위한 예비투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 교훈과 의미를 잘 살릴 필요가 있다.

결론을 앞질러 압축하자면, 이번 4.29 재보선은 첫째,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의 반격이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 둘째, 다양한 진보진영 내부의 연대가 구축되는 것 자체가 곧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 셋째, 진보진영의 내용적 대안마련이 매우 시급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훈을 진보진영이 어떻게 상호 협력해서 하나의 거대한 연대의 틀로 만들어 내고 이것이 정치사회적 실체로 일상화될 수 있도록 하는가가 향후 정국의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한다.

이번 4.29 재보선에서 가장 주목되는 바는 무엇보다도 5:0이라는 한나라당 전패다. 이는 이미 대부분 국민들이 예상했던 바이다. 위협받고 있는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 아주 잘 된 선거결과고 재보선 지역이 다섯이 아니라 더 많았다면 그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선거지역이 좀 더 많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마저 남는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악몽이 현실이 된 셈이겠지만, 이명박 정권 난폭 질주에 대한 제동을 걸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결과다.

이는 달리 말해 집권세력의 정국주도권 일각이 누수(漏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자신이 자초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는 거꾸로 진보정치가 가동될 수 있는 공간의 확대 가능성을 의미한다.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권력의 입지가 작은 구멍이 나면서 뚫리게 되는 시작이다. 물론 이러한 집권세력의 자충수에만 의존하고 기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 대목이 민중의 삶에 고통을 주고 대안을 갈망하는 사회적 흐름을 강화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하나도 놓치지 말고 진보진영의 자산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패배와 이명박 독주의 지속

용산 참사 100일을 넘기고, 촛불 1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독주가 먹혀들고 있다는 오만을 부려온 기세가 앞으로도 과연 그대로 통할 것인지는 이제 미지수가 되었음을 예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년간 어떤 저항이나 제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민심을 독선적으로 멸시하면서 밀어붙여온 정국이 역으로 집권세력의 발목을 잡아나갈 태세인 것이다. 힘이 있다고 마구 힘을 쓰면 그 당장에는 이기는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패배로 가는 길이라는 역사의 교훈이 망각된 자들이 반복해서 겪는 비극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진보진영이 대중들이 기꺼이 선택하려는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점에서 진보진영 자신의 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동선확보가 절실하다.

다시 말해서 진보진영의 경우 이번 선거의 의미를 차분히 짚고 미래의 새로운 동력을 확산시켜나가는 계기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면 민심의 요구가 담길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고 내용을 채우는 일에 실패할 수 있다. 선거에서는 승리했어도 민심은 잡지 못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으나 그 어느 쪽이든 민심의 갈망을 담아내는 쪽이 종국적인 승리자가 된다. 이번 선거는 그걸 가늠하는 주요경로를 미리 보여주고 있다.

총체적으로는 민심이 선거라는 기회를 통해 집권세력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다. 중간 평가적 성격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재보선이 전패(全敗)로 나타나면서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의 재보선 성적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재보선에서 참담한 패배가 계속 이어지면서 민주당은 마침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으니 한나라당으로서도 그 전철을 밟아나갈 수 있다는 공포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간략하게만 살펴봐도 한나라당은 수도권에 속하는 인천 부평과 시흥에서 국회의원-시장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다. 전국의 민심을 좌우할 수 있는 수도권의 민심이 집권여당으로부터 서서히 이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에, 한나라당으로서는 두려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지역 선거는 또한 한나라당 출신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군의 하나였던 손학규를 복귀시킨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한나라당은 정동영과 함께 대치선을 형성해야 할 상대를 하나 더 늘였다. 이는 민주당 내부에도 복잡한 전선을 만들겠지만, 큰 맥락에서는 한나라당에게 정치적 긴장이 추가된 격이다. 반MB 내지 반 한나라당 포위망이 좁혀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진보진영의 경우는 시흥에서 사회적 연대의 기초는 만들어 운동을 했지만 시민후보당선에는 실패했다. 부평은 민주당의 단일화 요구가 있었지만 한-미 FTA에 관여한 후보 자체에서 문제가 생겨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이는 단일화의 틀 못지않게 무엇을 중심으로 단일화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적 연대가 보다 중요한 사안임을 다시 일깨웠다. 진보진영과의 단일화 전략에서 가장 중대한 걸림돌이 될 신자유주의 체제 지지자를 공천했다는 대목은 앞으로 민주진영 대 연대의 기반에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절반의 승리와 절반의 패배가 동시에 겹쳐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어떻게 잡아나갈 것인지를 심각하게 성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하겠다.

경북 경주는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계열의 텃밭으로 여겼지만 기본적으로 이 지역의 맹주는 이명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박근혜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한나라당 내부의 소통구조가 파괴된 책임은 다름 아닌 이명박이라는 점에서, 향후 여권 내부의 역학관계는 일정한 변화를 요구 받고 있는 셈이다. 다음 선거를 내다봐야 할 정치인들에게 친 이계의 정치적 동력이 장기적으로는 훼손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한나라당 내부의 이합집산을 계산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 생기는 것이고 이명박 정권의 조기 권력누수현상이 내다보이는 지점이 생겼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안팎으로 등이 휘는 것이다.

진보진영 인물 키우기

그러나 진보진영으로서는 영남권에서 오랜 지배세력의 정치적 주도권을 분해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게 하는 대목인 동시에, "인물"이 갖는 정치적 상징에 대해 보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박근혜라는 인물의 내용적 수준이나 그 질적 충실함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대중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자리 잡는 정치지도자의 육성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가 되는 셈이다. 진보진영 인물 키우기의 전략이 깊이 고려되어야 하는 대목이다.

전북 전주 덕진과 완산의 경우, 지역정치의 특성도 있지만 한나라당은 손도 못 대고 패배를 예비해야 했다. 이 지역 선거의 정치적 의미는 민주당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이지만, 지난 대선의 상대 후보였던 정동영의 정치적 복권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이 대목과 계속 각을 세워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정동영이 어떤 정치를 보이게 될 것인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으나 그는 현 정국의 지형상 한나라당 공격의 선봉에 설 것이며, 이는 새로운 여론을 조성해 집권세력의 정치력을 계속 시험받게 할 것이다. 민노당의 경우 전남 지역에서 도의원 시의원에서 당선자를 냄으로써 풀뿌리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 진보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의미 있게 만들었다. 이는 민주당이 석권해왔던 호남에서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보인 대목은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그 모델이 갖는 의미를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울산북구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진보진영 단일화 실현에 밀려 이 지역 맹주인 한나라당에 간 정몽준 기득권이 여지없이 무너진 경우다. 이는 물론 지역적 특징에 따라 선거 전략상 민주당과 손을 잡은 진보세력의 단일화가 앞으로 가지게 될 반 MB전선이 확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단일화 전략에 합의하고 민노당과 진보신당 두 진보정당이 비록 어려운 단일화 과정을 거쳤지만 그것이 가지게 되는 정치적 파괴력을 실감한 경우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으로서는 대단히 중대한 정치적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울산북구는 진보진영이 단일화되지 못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아무리 단일화 프레임에 갇힌 선거라는 비판이 있다 해도 단일화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선거의 패배만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능력이 한계에 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도 이는 불가피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바는 단일화가 선거 전략으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단일화는 그 자체가 곧 집권세력의 세력 약화와 진보정치의 영토 확장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질적 내용을 가진 힘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 큰 정치 할 수 있나?

울산 북구의 현실에서는 단일화 대상자들이 민노당의 분당과정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여 온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단일화의 결과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각기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과 관련된 사항이기에 쉽지 않은 의미정리가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단일화 과정에서 양측 모두 상처를 더욱 깊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기에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 절차가 필요하며, 이는 이제 승리자가 된 진보신당의 조승수가 보다 큰 책임을 가지고 나서는 일이 되었다. 종북주의 논란으로 분당이 촉발되었고, 그것이 울산지역 내에 각 단위별 긴장과 대립을 증폭시켜 단일화의 고비를 수차례 만들었고 단일화가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울산의 경우는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지만 이제 문제는 이런 모든 과정상의 갈등과 대립을 녹여내는 정치를 진보정당들이 보여줄 수 있겠는가에 달려 있다.

아무튼 진보정당들로서는 일단 큰 고비는 넘겼지만, 민주당의 정치적 한계를 돌파하면서 대안세력의 위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는 보다 다른 수준의 정치력 과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각기의 정체성이 다소의 차이가 있다 해도 민심이 하나가 되라면 그 요구에 따라 통 크게 움직일 줄 아는 정치력이 없는 한, 진보정당의 미래는 가늠하기 어렵다.

4.29 재보선에 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승리와 울산북구의 진보진영 단일화는 진보정치의 연대를 어떻게 구축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경우, 진보진영 전체의 정치사회적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정치적 동력을 가지게 되는가를 입증했으며, 울산 북구의 경우 민심의 단일화 요구에 진보정당이 어떻게 대답하는가가 관건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향후의 전략적 기초로 삼을 필요가 있다.

특히 진보세력의 단일화 문제는 고정된 원칙은 아니지만 앞으로 지역마다 상당히 중요한 현안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처리해나갈 것인지는 진보진영 전체의 연대를 구축하는 의미에서 지금부터 분명하게 정리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선거가 닥쳐서야 이 논의가 또 다시 진보진영에게 고통을 주고 적전분열을 심화시키며 중대선거의 기회를 허비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 내부의 경쟁과 이를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질을 만들어 내는 진보정치의 자기혁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선순환의 의미보다 현실에서 상호 비난과 출혈을 가져오는 상태에 이르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 그것이 빈대일 수도 있고 거대한 코끼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등 집권세력과 진보진영 간의 차이와, 진보진영 내부의 차이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보다 큰 격차를 보이는가는 명백하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민중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지 또한 가려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울산북구 선거 단일화는.......

그런 점에서 이번 울산북구 선거의 경우, 우선 단일화과정에서 나타났던 상호 비난의 태도는 대단히 유감이다. 전후좌우 사정이 있고 또 할 말도 많겠지만 그럴수록 진보진영의 정치적 품위와 권위를 세우는 일이 절실하다. 각기의 입장에서는 문제의 소재가 어디에 있고 책임의 소재를 따져 정치적 유 불리를 확정하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은 대중들 앞에서 보다 통이 크고 선이 굵은 진보정치의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심각한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서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실제로 단일화 여론조사결과는 두 후보의 차이가 차이라고 할 수없는 수준이었음을 보여주었지 않았는가? 민심은 후보선택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팽팽한 긴장을 드러냈지만, 어느 한쪽도 손들어주지 않고 하나가 되라는 요구를 보다 크게 했던 것이다. 단일화의 전제는 누가 나서든지 함께 가자는 것에 있지, 상대 후보는 선택해서는 안 될 후보라고 출발하면서 이루어내는 정치적 작업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단일화는 단지 선거에서 하나의 후보 선출이라는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과 작업을 기초로 향후 연대와 결속,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몸이 큰 정치세력의 집결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큰 맥락의 단일화, 즉 하나의 진보진영으로 모여지는 길을 뚫어내는 목표의식이 보다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정치적 결과는 과정상의 일들이 하나하나 축적되면서 구조적 무의식의 층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실체적 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 과정에서 그때마다 감정적 앙금도 적극 씻어내는 노력이 필요하고, 상대의 긍정적 요소를 서로 부각시키는 작업도 있어야 하며 민감한 발언은 자제하고 신중하게 하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일상의 자세들이 쌓여가면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감을 조성하며 기존 정치현실과는 구별되는 희망을 보게 할 수 있다.

연대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면서 현실에 들어가면 감정이나 태도 그리고 자기중심적 사사고가 극복되지 못해 실패해버릴 수 있다는 점은 진보진영 스스로도 누차 경험해온 바다. 진보진영의 연대가 중심에 놓는 주제들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없을 것이기에, 보다 중요해지는 바는 서로에 대한 자세를 성숙시키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기초가 되면, 대중들은 진보진영의 연대와 결속에 대한 심정적 믿음을 주게 되고 그것이 곧 진보진영이 주장하고 실천하려는 바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이루어내지 못하면 대중들은 그게 그거라고 여길 수 있고, 현실정치에서 의미 있는 세력과 힘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무능력한 진영에 대한 지지의지를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일사분란 할 정도로 결속하고 흐트러짐 없이 연대하며 지속적인 의지를 가지고 대중들의 절실한 삶의 문제를 향해 나가는 모습이 있을 때 대중들의 지지를 업고 집권세력을 압박하며 제동을 걸고 정치적 사회적 승리의 지점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이미 대중들은 무엇이 대안인지 안다. 한반도의 평화적 미래를 전망하면서 질적 존엄성을 보장받는 삶을 갈망하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도 공통적인 소망이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이를 위해 다양한 대안과 프로그램, 그리고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에 있다.

내부분열로 힘 빼지 마라

진보진영의 연대와 결속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주장의 공간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실천의 공간에서는 허망해지는 결과가 될 뿐이다. 이를 위해 진보진영은 모이기를 즐겨하고, 함께 하는 모습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하며 정파적 이익에 사로잡혀 보다 큰 목표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관계는 꾸준히 하나로 접목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이를 위해 진보진영 전체는 강력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 진보진영은 끊임없이 내부 분열로 시달리고 대중들의 회의와 혐오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게 될 것이다.

오늘의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의 난폭한 질주를 막기 위한 <연대와 결속>이라는 이 화두가 절실한 목표로 의식되지 않는 한 진보진영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이유가 어떠하든 나뉘어져 있는 한, 우리의 정치적 역량은 반복해서 낭비되고 민심의 바다에서 항해하기 보다는 파선해버릴 수 있다. 진보정치에 대한 갈망이 날로 늘어나게 될 것이 전망되는 현실에서,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멈추지 말고 새로운 모습의 진보정치가 무엇인지 고정된 관념이 아닌 생생한 현실로서 입증해나가는 진보진영이 되었으면 한다. 흉포한 권력의 악행 앞에서 단결의 능력이 없는 진보정치에 대해 대중들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총괄하자면,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으로 옐로우 카드를 받았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세력이 민심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쥔 것도 아니다. 반 이명박, 반 한나라당 연대의 승리 가능성은 보여주었지만 그것으로 정국의 확실한 역전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 자체가 충분히 마련된 것은 아니다. 다만 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실로 이제부터다. 촛불 정국 1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나서야 할 것인지 보다 폭넓고 깊은 연대전선을 형성해야 할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상대는 강한 듯 하지만 민심의 반격에 취약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집권세력으로서의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오만과 민심의 무시가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지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나라당의 고민과는 아랑곳없이 이명박의 독주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당-정간의 정치적 긴장은 날이 갈수록 깊어질 것이며 이명박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점점 더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예감하게 될 것이다. 그건 이명박의 그림자에 머물러 있는 한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는 현실로 통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내부의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편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대안정당으로서의 정치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향후 정국 대처에 어떤 입지를 설정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우경화로 지목되고 있는 뉴 민주당 플랜은 민주당 내 좌파의 선택을 주목하게 한다.

사자가죽 뒤집어 쓴 당나귀 몰아내는 법

진보진영으로서는 손해를 본 것이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이걸 기반으로 이명박 정권의 난폭한 독주를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다. 역시, 일상에서 한 결 같이 연대하고 대중들에게 깊이 스며드는 노력 없이는 역사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조건은 도처에 마련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어느 날엔가 봇물이 터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준비된 역량이 아니고서는 그 봇물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보진영 내부의 차이가 서로를 자극하고 성숙시키는 힘이 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것이 분열과 적대의 요인으로 자리 잡게 해서는 안 된다. 이걸 최선을 다해 극복해내면서 진보정치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바다가 깊으면 큰 배를 띄워야 한다. 민심의 바다는 거대하게 출렁이는데 각자 조각배를 타고나서 해전(海戰)을 벌이면 백전백패(百戰百敗)다. 대중들은 승선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 각기 타고 나갈 나룻배를 고르는 중일까?

우화 하나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어리석은 당나귀 한 마리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사자 가죽을 주웠다. 그걸 뒤집어쓰자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당나귀는 본격적으로 사자행세를 했다. 사자가죽을 쓴 당나귀는 점점 그 기세가 포악해져갔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자 사자가죽이 훌러덩 벗겨지고 그의 정체가 온 세상에 드러났다. 숲속의 모든 동물들과 사람들이 그 당장에 당나귀를 죽도록 두들겨 팼다고 한다. 누가 당나귀의 운명이 될 것인가? 아니, 바람은 언제 어디에서 몹시 불어올까? 숲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바람이 될 차례가 아닐까?

(*이 글은 5월 13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4.29 재보선 평가와 진보정치의 과제' 토론회의 발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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