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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버리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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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버리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

[김민웅 칼럼]<37> 그를 앞세워 자기들의 죄악을 은폐하려는 자들

그해 겨울

"말할 자격을 잃었다. 수렁에 빠졌다. 무슨 말을 해도 비웃음을 살 것이다. 나를 버리시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고해성사다. 이걸 마주하면서 강렬한 아픔이 다가온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그 난폭한 행진을 매일 체험하면서 그 통증은 더욱 심해진다. 노무현에 대한 이 시대의 비애감은 당장에는 벽장을 여니 숨겨놓았던 해골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 듯한 돈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그가 남겨 놓은 유산의 모순 때문임을 침묵하지 않을 수 없다.

그해 12월, 한국사회는 냉전의 수렁에 다시 빠져드는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를 개혁적으로 열어나갈 수 있는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2002년 겨울은 그 전 해인 2001년 9.11에 대한 반격의 기세를 몰아 미국의 한반도 폭격 공세가 심각하게 우려되었던 시기였다. <뉴욕 타임스>는 거의 한 달 내내 북한을 겨냥한 미 국방부의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대서특필하고 있었고, 이라크 다음에는 한반도라는 우려가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의 뒷덜미를 잡아 다니려는 악령처럼 떠돌고 있었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표가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를 말리는 단일화의 과정을 통해 노무현 후보가 선택되었을 때, 2002년 대선은 전쟁과 평화, 수구와 개혁, 특권과 서민의 가치 가운데 하나를 놓고 결정해야 하는 선거가 되었다. 선거 결과는 수구냉전+기득권 세력의 지지를 받은 이회창의 패배였고, 불리한 상황에도 원칙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진 노무현의 당선이었다. 그로써 평화, 개혁 그리고 서민의 삶을 중심에 놓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를 발전적으로 계승해나가는 민주 정부 제2기를 의미했다.

출범 초기 원칙의 이탈

그러나 참여정부의 출범 직후 우리는 두 가지 중대한 원칙의 이탈을 이미 초반에 경험하게 된다. 첫째는 남북관계의 혁신적 발전을 도모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도 전에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의 회담과 관련한 특검을 추진하는 일이 벌어진 사실이다.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외교상의 비밀로 오랜 세월 보호되고 그 기초 위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루어내려는 의지를 발동하기보다는 정파적 이해관계로 이를 처리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기반에 자해적 훼손을 가해버린 것이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 이후 걸린 시간과 노력은 어리석은 우회로 선택이었다.

두 번째는 서민의 삶을 위한 특권 질서의 개혁적 혁파가 아닌 특권질서 속으로 권력이 점차 빠져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을 통해 앞뒤가 맞지 않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발상을 밀고 나간 참여정부의 노선은 결국 거대한 세계적 신자유주의 체제를 이 땅에 들어서게 하는 한-미 FTA로 귀착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영화의 스크린 쿼터가 사라지고 쇠고기 수입논란의 씨앗을 뿌렸다. 자본의 위력에 굴복해나간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은폐된 금권정치는 필연적이었다. 그건 어쩌다 생겨난 일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서민들을 위한 특권의 혁파라는 노무현의 역사적 책무는 그런 이탈의 과정에서 자꾸 흔들려갔다. 평화는 다행히 무너지지 않았으나 기대했던 한반도의 미래체제는 진전되지 못했고, 서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정치적 노력은 자본의 정치에 휘말려 들어갔다. 이런 평가가 참여정부의 평화에 대한 노력과 서민정책에 대한 진보적 입장이 전무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수구 냉전세력, 또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에 비해 민주주의에 대한 상대적 진보성을 가진 집권체제가 이 나라에 가져온 발전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인권의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시민운동의 발전은 노무현 정권의 존재로 가능했다.

그러나 노동의 자유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자본을 위한 정치위원회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 자본의 힘과 차츰 결탁해나갔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민운동에 대해 대안의 부재라며 난타했다.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격하게 비난해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지지 세력의 이탈과 분열에 대해 애초의 고뇌와 성찰적 모습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져갔다. 권력의 위력에 빠져드는 군주의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최대의 적이 자신임을 미처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노무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2008년 대선은 노무현 정치의 부채를 청산하지 못하면 민주진영의 실패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불필요한 자기과시와 품위를 갖추지 못한 언사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노무현 정치에 대한 일반의 염증을 가져왔고, 그의 비판적 지식인에 대한 혐오가 깊어지면서 대통령과 지식사회의 소통구조는 막혀가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가 되어갔으며 독선의 수렁에 빠져 들어갔다고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숨결과 통로를 잃어버린 권력자는 자신을 지탱할 수 없게 된다는 교훈이 망각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시점에서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와는 비교도 안 되게 더 나쁘고 악랄한 자들이 권력을 휘두르면서 이 나라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그 미래를 어둡고 하고 있는 판국에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이런 자들의 죄악을 면죄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바로 그런 것을 노려서 매일 노무현을 밥으로 삼고 자기들의 죄를 은폐하려는 정치적 음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재산이 수백억 대가 되는 인물이 현직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자기 재산 사회헌납을 약속했고 대학 등록금 반값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며 머리 깎고 있는 대학생들을 끌어가는 일에 몰두한다. 대운하를 포장만 바꾼 4대강 정비를 정책으로 내걸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고, 이 나라 특권층 1퍼센트를 위해 국민의 자산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 추경 예산 29조 가운데 11조가 부자 감세 부족분 메우기다. 한반도 정책에 가서는 역사에 대한 이성과 합리적 판단을 가진 권력자인가 싶을 정도로 혼미한 상태를 노출하고 있다.

욕망의 정치를 펼치면서 자본 자체가 권력인 세상을 즐기는 권력은 이제 언론과 방송을 모두 자본의 권력 수단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갈 심산이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정책교정의 무대는 이렇게 해서 사라진다. 국민들은 대다수가 가난해져 갈 것이며 권력과 자본은 날로 살쪄갈 것이다. 이건 범죄다. 국민들의 삶을 희생시키면서 부자와 권력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을 범죄라는 단어 말고 다른 말로 부를 수 있을까?

"막가자는 겁니까?"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노무현이 한 유명한 말이다. 잘못한 말이다. 대화를 하자면서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윽박지르기 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막가고 있는 권력이 있다. 막가파 정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막무가내로 체포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이런 자들을 향해 "막가자는 겁니까?" 해야 말이 정확하게 맞다.

은폐되고 있는 현실을 놓치지 말아야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노무현 정치의 결과인 측면이 높다. 자본이 권력이 되도록 한 정치에서 자본 자체가 권력으로 나타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의 금권정치적 자세는 지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건 규모로나 방식으로나 아마추어다. 프로들은 더 흉한 짓을 하고도 버젓하다. 이것이 노무현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근거는 아니다. 하지만, 이 나라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을 더더욱 악랄하게 옥죄고 있는 자들의 정체와 존재를 가리는 일에 노무현 문제를 이용하는 상황은 당연히 비난되어야 한다.

촛불 재판 개입으로 사법부의 권위를 추락시킨 신 아무개 대법관 문제는 이런 와중에 실종되고 있다. 아무개 신문의 아무개는 성 접대 리스트 논란에서 슬며시 빠져나가고 있다. 용산 참사의 책임은 망각의 늪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이다. 전국 도처에서 청계천 콩크리트 어항을 본받아 산하를 훼손하고 4대강 정비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돈이 쏟아질 판인데 그런 문제는 여론의 사각지대로 몰려나고 있다. 한미 FTA 비준안은 국회 외통위에서 주먹으로 통과되었다. 자기들 주먹질은 합법이고 다른 사람들의 주먹은 폭력인 나라가 되고 있는 거다.

나는 그가 재임시절 노무현에 대한 치열한 비판을 했었다. 2002년 선거과정에는 마지막까지 지지했으나 2003년 출범 초기부터 시작했던 비판이다. 본래의 원칙 이탈에 대한 성토였다. 그러나 그의 정책 모두가 다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그가 나름의 역사적 양심을 가지고 임한 일이 분명히 있다. 과정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한반도 평화에 대한 자세는 차츰 정리되어 갔다. 인권문제도 노력했다. 언론방송의 민주화도 한계는 있었지만 그가 기여한 몫이다. 인터넷의 언로 보장도 그의 공으로 돌릴 만하다. 깔끔하지는 못했지만 권위주의 청산도 점수를 줘야 한다.

그러나 자본의 정치를 견제하고 제동을 걸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비판과 성찰은 보다 치열해야 한다. 그 결과로 깔린 선로 위에 이명박 정권이 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날 전 대통령 노무현이 처한 비극은 바로 그 자본의 정치에 휘말려 들어간 결과가 아닌가?

전 대통령 노무현이 해야 할 바는...

이제 이 시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적 고뇌와 도덕성, 권리 등의 문제만으로 이 현실을 대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건 한때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역사인식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개인의 고뇌, 가족의 고난, 우정의 문제 등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본의 정치로 이 나라의 미래에 어려움을 가져온 상황에 대한 고해성사가 깊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너무 과한가? 그걸 바로 잡지 못해서 경제 대통령 운운의 환상으로 이명박 정권 성립의 사회적 토대가 만들어진 셈이 아닌가?

노무현은 지금이라도 말해야 한다. 아무리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개인 문제는 개인문제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후의 봉사라고 여기고 한미 FTA가 어떤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자본의 정치를 얼마나 더 강화시킬 것인지 국민들에게 보고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가 이토록 위협받게 되면 어떤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지 토로해야 한다. 서민들의 삶을 이토록 피폐하게 할 때 어떤 역사적 고난을 겪어야 할지 자기 자신을 걸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을 앞세워 자기들의 폭력과 정치적 부패와 정책의 오류를 모두 뒤덮으려는 현재의 권력에 노무현 자신을 희생시키는 일은 적어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도처에서 비록 조롱거리처럼 되고 말았어도 나는 노무현이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고 이 나라의 갈 길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도덕과 오류는 그대로 마주해서 감당하고, 그 자신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가리고 이용하려는 자들에 대한 당당한 일격은 가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 수모와 고통을 위로하는 마음이다. 참담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니다. 참되게 돌아보면 하늘이 사는 길을 연다. 자본의 정치와 그 권력이 이 나라에 가져다 줄 것은 과연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토로할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악마는 달콤한 약속을 하지만 결국 상대를 잡아먹는다. 그러나 그 달콤한 약속의 정체를 온 천하에 밝혀내면 악마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한다. 잠시의 고통은 지나갈 것이며, 역사의 증언은 영원히 남는 법이다.

책임은 책임대로 지되, 이명박 정권의 노무현 이용하기에 더는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노무현에 대한 나름의 안타까운 애증을 가진 이 시대의 무수한 사람들에게 부디 듣고 싶은 말을 꼭 하는 그런 모습, 기대하면 안 될까? 더 악한 자들이 더 선한 자들처럼 보이는 그런 모순은 그대로 방치할 순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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