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아이들 낙인찍는 ADHD, 과연 병일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아이들 낙인찍는 ADHD, 과연 병일까?

[민들레 교육 칼럼] 누구를 위한 진단인가

나는 ADHD?

"선생님, 저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인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처럼 그녀가 말했다.
"ADHD는 무슨! 활달하고 민첩하고 외향적인 거겠죠!"
"아, 그런가요. 선생님, 감사합니다.(꾸벅)"


그녀는 우리 병원 신입 레지던트다. 에너자이저로 소문난 그녀는 씩씩하고 말도 빠르다. 일도 잘하는 데다 대인관계에 민감하고 헌신적이어서 우리 병원에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녀가 ADHD라는 소문이 들리더니, 자기 스스로 ADHD라고 노래를 부른다. 뭐, 병원 사람들이야 워낙 쿨해서 자신에게 장애 진단쯤 하나 붙어도 아무렇지 않고, 남들에게도 진단명 하나씩 붙여주지만, 가끔은 심기가 불편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저렇게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에게 ADHD 꼬리표라니! 그녀가 민첩한 데다 말이 빠르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장난삼아 ADHD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건 그녀의 개성이자 장점인데,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다니! 아, 이런! 내가 쿨하지 못한 건가. 그녀에게서 병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걸까?

나 역시 한자리에 앉아 일하지 못하고 병원 여기저기를 날듯이 뛰어다녀야 했던 신입 시절이 있었다. 다른 사람 자리에 앉았다가 물건을 두고 오기 일쑤였고, 처음 검사 채점을 배울 때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곤 했다. 이제는 나름 고참이 되었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머릿속이 부산한 건 여전하다. 환자를 보다가도 번뜩번뜩 글감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전개시킬까 생각하며 메모하다 보면 눈앞에서 돌아가는 일을 순간 놓치곤 한다. 책을 읽다가도 예전에 읽었던 내용과 연결되면 그걸 잇느라고 다른 책을 찾는다. 그래서 한 번에 한 권씩 읽지 못하고 여러 권을 쌓아놓고 한꺼번에 읽는다(남들이 볼 땐, 이 책 봤다 저 책 봤다 쟤가 뭐하는 걸까 싶을 거다). 또 요즘 새로 알게 된 이론이 궁금해 그 생각에 한참 빠지거나, 사소한 자극에도 호기심이 일어나 답을 찾느라 골몰하기도 한다. 아마 누군가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유심히 관찰한다면 멍한 ADHD, 즉 조용한 ADHD로 알려진 ADD의 증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병원 새내기 시절 나는 여러 번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선생님, ADHD 아니에요?"

농담처럼 정신의학을 전공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ADHD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내 정체성을 더 고민하게 되었다. 유난히 길치였던 것(알고 보니 공간지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도, 학창 시절 수업이 너무 지루해 혼자 소설을 쓰거나 책을 읽었던 것도 모두 어떤 병의 증상이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나 약 먹어야 하나? 과연 내 잠재력을 발휘하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일하는 병원에 새로운 ADHD 검사 프로그램이 도입되었고, 내가 대표로 테스트 대상이 되어 검사를 진행했다. 특정 소리에 버튼을 누르거나, 특정 도형이 나오면 버튼을 누르거나 안 누르거나 하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됐다. 결과가 나왔는데, 이럴 수가! 모든 영역에서 정상으로 나왔다.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그럼 나는 ADHD가 아닌 건가? 다른 사람들이 내 결과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의 경우 지능으로 보완하는 거 아닐까요? 지능이 높으면 ADHD 검사로 판별이 안 되더라구요."

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겉으로 보기에 지능이 높아 보인다는 얘기니 칭찬인 것 같기는 한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그럼 난 일단 ADHD이긴 한데 지능이 높아서 보완이 되니 검사로는 잡아낼 수 없다는 건가? 궁금했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 이래서 심리학자가 내 천직이구나. 손에 닿는 ADHD 관련 책과 문헌들을 죄다 찾아 읽어봤다.

실체 없는 ADHD

진단 기준을 보니…. 어, ADHD라면 일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본인이 고통을 느껴야 하며, 한 장면 이상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야 한단다. 이상하네, 난 일도 무지 꼼꼼하게 하고 직장 생활도 잘해왔는데.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 열 시간 이상도 가만 앉아서 엄청 집중하는데, 그리 고통스럽지도 않고 난 행복한데…. 더욱더 미궁이다. 이번엔 과거력을 탐색하기로 했다. 보호자(?) 면담을 하니 엄마는 깜짝 놀란다.

"네가 얼마나 집중을 잘하는데 그런 말을 하니? 엄마는 너 키우면서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릴 때 넌 책을 손에 들면 주변에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읽곤 했어."

어, 그러면 난 장애가 아닌가? 그런데 최근 찾은 문헌에서는 ADHD 증상을 가진 아동들이 hyper-concentration(쉽게 말하면 관련 없는 자극에는 주의가 차단되면서 뭔가에 엄청나게 집중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단다. 음? 이건 좋은 거 같은데, 능력 아닌가? 왜 증상이라고 나오지? 그럼 나 장애 맞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ADHD가 무엇인지 의문은 깊어지기만 했고, 이 책 저 책 찾아 읽고 또 읽어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ADHD는 실체가 있는 '질환'이 아니라 관찰되는 증상들을 모아놓은 '증후군'으로, 현대 사회에서 과잉 진단되고 있고, 진단받은 아동들이 매우 이질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았다. 또 정서적인 문제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 때문에 주의 집중에 에너지를 할당할 수 없는 아이들도 많은데, 그런 아이들에게까지 잘못 진단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지만 ADHD의 실체는 끝내 잡을 수가 없으니, 이리도 허무할 수가….

▲ 서울 서초구청은 지난달 20일 초등학교 입학 아동을 200명을 대상으로 '무료건강마당'을 진행했다. 지역 병원과 보건센터 의사 11명이 ADHD(정신과)와 아토피(피부과), 치과, 소아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 다양한 과목에 대해 진료를 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뉴시스


궁금증과 의문이 채 해결되지 않았지만, 나는 병원 직원이다 보니 의사 처방에 따라 ADHD로 의심되는 아이들 검사를 종종 한다. 말하자면 아이가 ADHD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로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내가 내린 결론에 따라 아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어서 정말로 조심스럽고 힘들다.

과연 이 아이가 이 정도로 덜렁대는 게 ADHD 진단을 내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약물치료를 할 때 예상되는 최악의 결과와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최악의 결과,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약물치료로 훨씬 나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인데, 내가 괜히 조심한답시고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필요한 치료를 못 받거나 대안학교를 찾아보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우울증에 걸리거나 비행 청소년이 된다면? 정말 상상하기 싫은 결과다. 아이를 둘러싼 학교나 부모가 더 문제인 것 같은데, 어디까지가 아이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환경 문제일까?

빨리빨리 환자를 만나고 많은 보고서를 처리해야 하는 병원 시스템에서 이런 고민은 사치다. 차라리 종합심리평가나 장기간 상담을 하게 되어 꾸준히 아이와 만나면서 여러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다. 아이가 너무 어려 긴 시간의 검사와 면담을 참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검사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럴 때 컴퓨터를 통해 단시간에 하는 주의 집중력 검사가 대안이 되곤 한다.

가장 간단하고 널리 퍼진 주의 집중력 검사는 아이들이 2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종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게임처럼 재밌지도 않고 형식이 매우 단순해서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검사를 지루해한다. 아이들은 대개 몸을 이리저리 옴지락거리며 언제 끝나느냐고 물으면서 옆에 있는 검사 도구를 구경하기도 하고, 발로 책상을 차기도 한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 과제를 왜 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어찌 되었든 아이에게 컴퓨터 검사를 시키는 것이 내 역할 가운데 하나고, 아이가 이 시간에 집중하지 않아서 괜히 ADHD 진단을 받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하기에, 아이를 최대한 독려해서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이건 게임이야, 컴퓨터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돼.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참고 해보자."
"그런데 선생님, 이건 게임이에요, 시험이에요?"


헉, 어린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어른들이 자기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 저는 이거 하기 싫어요. 선생님, 저는 지금 그림 그리고 싶어요." 아이도 자신이 뭐가 좋은지 뭐를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고 있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안다. 20분 동안 아이는 열 번도 더 반복해서 내게 또박또박 말했다. "선생님, 전 이거 하기 싫어요, 안 할 거예요."

아이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이거 안 할 거다, 혼잣말을 하더니 키보드를 아무렇게나 누르기 시작했고, 옆에 있는 종이와 연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결국 컴퓨터는 '이 아이는 ADHD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는 조사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뭘 좋아하니?"
"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요."
"그럼 나랑 그림 그려볼까?"
"네, 좋아요. 연필 주세요."


아이는 흰 종이에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글씨도 쓰고 숫자도 쓴다.

"어머, 숫자네. 덧셈 할 줄 알아? 1 더하기 2는?"
"할 줄 알아요! 1 더하기 2는 3이에요."


아이는 의기양양해져서, 종이에 숫자를 쓰기 시작했다.

"3 다음에는 4고, 그다음이 5, 6, 7이에요. 우리 엄마 핸드폰 번호도 쓸 줄 알아요."

아이는 정말이지 한동안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고 숫자를 썼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걸 존중하며, 어른이 관심을 갖고 독려해주니 아이는 무척 신이 났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면담실을 나서서는, 엄마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나 선생님이랑 컴퓨터 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렸어! 숫자 놀이도 했어! 너무 좋았어! 아 재밌어!!"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닌다. 날 만난 지금은 행복해 보이는데, 아효효, 저 아이가 학교에 가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는 결국 '이 아이는 ADHD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는 데이터를 출력하고, 그 결과는 담당 의사의 책상 위에 올라갈 것이다. 그 이상의 책임감을 갖고 관여하는 것은 병원에서는 사치이고, 나 역시 사정이 여의치 않다.

ADHD 진단, 누구를 위한 것일까?

어른들은 아동의 병리를 찾고자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은 이미 충분히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쉽게 ADHD 진단을 내리는 '사회 병리'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ADHD 검사만 해도 그렇다. 이 검사에서 '정상' 범위에 속하는 결과가 나오려면, 아이에게 이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시험 당하는 걸 불안해하지 않아야 하며,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원망도 없어야 한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사람과 검사실에 앉아 있어도 어른이 시키는 거니까, 해야 된다고 하니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서 주어진 과제에 집중해야 '정상'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하기 싫은 것에 대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은 쉽게 '비정상'이 될 수 있다. 물론 현대 사회는 조직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을 요구한다. 특히 한국 공교육 패러다임은 그런 아이들을 길러 내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이 구조에 맞지 않는 아이들이다.

문제는 그렇게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아이들이 '장애' 딱지가 붙은 채 부적응아라는 편견 속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데 있다. 아이들의 '자발성'은 억압되고, '반항성 장애'나 '우울증', '품행 장애' 같은 새로운 병으로 재탄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공상에 잘 빠지는 조용한 아이들, 하고 싶은 일('하고 싶은 것만'이 아니고)에는 무지 집중을 잘하는 아이들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공교육 구조에 맞게 재단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DHD 진단은 현대 공교육 구조에 맞지 않는 아동들을 낙인찍는 데 쉽게 오용될 수 있다. 결국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그토록 관심을 갖고 돌보고자 하는 아이들보다 제약회사와 약물 처방권을 갖는 의사들이 최대 수혜자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신건강 전문가가 ADHD로 의심되는 아동을 만났을 때, 그의 철학이 정말 중요하다. 과연 어디까지가 아이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교육 시스템, 사회의 문제일까? 이 아이한테 진단을 내리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은 무엇일까? 진단 의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끼인 자의 슬픔

얼마 전에는 공상에 빠지는 조용한 아이를 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왔다. ADHD 진단 기준에 들어맞았다. 고민스러웠다. 이 아이에게 약물치료를 해야 할까?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2년 동안 지낼 때는 아이가 정말 행복해하고 잘 지냈단다. 아이들이 많이 움직일 수 있게 해주고, 드러눕거나 엎드려서 수업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교사가 아이 보고 ADHD라면서 이러다 영영 부적응아가 되거나 학습 장애가 된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단다. 병원에 오면 이런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신병리학적 메커니즘이 그렇다. 병원 시스템은 당연히 환자를 빨리 보고 약물치료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약물치료를 받으면 좋아질까? 나도 잘 모르겠다. 무엇이 아이를 위한 길일까? 다시 뉴질랜드로 보내야 할까, 아니면 대안학교에 보내야 할까? 약물치료를 해서 학습 진도를 따라가게 해서 현대 사회의 매트릭스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이가 편하고 더 여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길일까?

나의 이런 고민을 솔직하게 아이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대안교육격월간지 <민들레>도 소개해주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크리스 메리코글리아노 지음, 조응주 옮김, 민들레 펴냄)도 권해주었다. MBTI 검사도 알려주었다. MBTI에서는 공상에 빠지는 아이를 조용한 ADHD라 하지 않고, '직관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고 설명하며 상상력을 현실과 연결시킬 방안을 찾아주라고 권한다. 아이 엄마는 정말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학을 보낼 수도 없고 대안학교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란다. 어떻게 해서든 공교육 환경에 적응시켜야 한다며…. 설령 그게 약물치료라 해도.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이게 바로 이도 저도 아닌 '끼인 자', 병원이라는 조직 속에서 병원 직원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자의 슬픔인가. 병원 시스템 속에서 ADHD로 낙인찍힌 채 병원과 제약회사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보면서 솔직히 그 '상술'에 화가 난다. 약을 팔기 위해 불필요한 진단명을 만들어내는 일이 무기를 팔기 위해 전쟁을 만들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당신 ADHD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결점을 고치려고 노력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치료된(?) 면이 있기도 하다. 확실히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해졌으며, 활동량이 줄었고 말하는 속도와 반응 속도가 느려졌다. 이게 고쳐진 거라면 고쳐진 걸까? 난 좀 더 에너지 넘치고 말이 빠르고 덜렁대는 게 매력이었던 사람 같은데, 직장에만 가면 차분하고 꼼꼼하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돌변하니, 이게 치유가 된 건지 변질된 건지 나도 헷갈린다. 성장한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래도 이게 내 본모습은 아닌 것 같은데, '치료된' 채 직장에서 '적절한' 모습으로 살아가려니 답답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일상 기능이나 적응 문제도 없었고 약 한 번 먹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결국 ADHD가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성숙한 ADHD인가? 지능이 높은 ADHD인가? 어떤 진단의는 내게, 성인 ADHD는 아동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차분해 보이는 모습으로 잘 살아갈 수도 있다면서 ADHD 진단을 내릴 수도 있겠지. 아하, 그런데 나 같은 사람에게 진단을 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대체 누구를 위한 진단이기에!

알고 보면 내가 자신에게 그랬듯, 이런 실수들을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창의적인 아이, 생각이 많은 아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 에너지가 많은 아이 등 아이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주고 숨겨진 개성을 인정해주며 잠재력을 일깨워주면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아이의 내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과 사회에 의해 쉽사리 ADHD 진단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 위의 글은 <민들레>84호에 "ADHD, 과연 병일까?"라는 제목으로 실린 임상심리사 재인 님의 글입니다. (☞ <민들레> 바로 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