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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되었다"

[정혜윤의 날아다니는 여행기] 런던에서 점퍼가, 런던탑Ⅲ

바로 그 시절의 어느날 런던탑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 왔다. 키가 2미터에 이르는 젊은 꺽다리 러시아인이었는데 그의 이름은 표트르였다. 그는 여러모로 비범한 인물이었다. 차르의 아들인 그는 1672년에 태어났고 모스크바 교외 왕실 영지 독일인 정착촌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그 구역에 살던 가난한 외국인 기술공들 덕에 신기한 기술을 많이 보고 듣게 되었다. 그는 지방 유지의 아들, 마부 소년, 거리의 부랑아등 온갖 부류의 친구들을 불러 모아 군대 놀이를 하다가 나중에 자라서는 군사 훈련을 시켰고 정말로 이런 군대들을 모아 1689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 그의 이야기는 너무 신기해서 설레기까지 한다.
그의 이야기는 다 신기하지만 다음의 이야기는 너무 신기해서 설레기까지 한다. 그는 어느날 왕실 별장에서 낡은 영국 범선을 찾아냈는데 그 배를 수리해 연못에 띄워보고는 성에 차지 않자 더 물이 많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호수라는 대답을 듣자 호수에 가서 배를 띄워보고 그 다음에 호수에 성에 차지 않게 되자 어마마마에게 조선소를 세워 배를 만들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 다음엔 바다가 보고 싶어져서 항해를 떠나게 해달라고 조른 다음에 허락을 받아 대사절단을 꾸려 길을 떠난다. 그렇게 해서 그가 찾아간 곳이 바로 네덜란드와 영국이었다. 그게 1697년과 1698년 사이의 일인데 18개월 안 대사절단 실습생 틈에 끼여 여행하는 동안 그는 무려 열 네가지나 되는 기술을 직접 익혔다. 그는 기술자이자 포병, 발명가이자, 목수, 선원이자 병기공, 대장장이이자 치과의사 같은 역할을 몽땅 다 해내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선 동인도 회사의 조선소에서 머물면서 선박 건조 기술을 배웠고 항해술을 익혔다.(바람둥이 포함)

런던에서 바다에 가거나 바다에 가지 않는 날이면 바로 이 곳 런던탑에 소장된 각종 무기들을 돌아보고 조폐국과 그리니치 천문대를 방문했다. 그는 항해 기술을 익힌 사상 첫 러시아인 ,범선을 건조하는 법을 처음 배운 러시아인 집단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여행 목적은 해군 건설, 강력한 포병 조직, 선장, 선원, 기관사의 러시아 초빙 등이었는데 러시아로 돌아간 그는 표트르의 해군 혁명이라 불리는 해군의 건설, 그리고 유럽을 향한 창문이란 별명을 가진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들어 냈다. 도시를 만들 때 그가 직접 작업 현장을 돌아다니며 관리 감독했다는 그 도시의 10년 후 모습을 본 외국인들은 그 도시를 세계의 경이라고 불렀다. 결국 그는 그토록 탐내던 발트해를 얻었다. 그도 1698년 어느날 나처럼 런던탑 성벽에 서서 템즈강을 내려다 보면서, 자기의 꿈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그 꿈은 바다를 향한 통로를 얻고 싶다는 것이었고 이곳은 그에게 길을 보여 줬을 것이다. 그는 처음 자극을 주었던 영국의 낡은 배에 대해서 어린 시절의 장난감이었을 뿐 아니라,지금도 경이롭게 생각하는 해군을 건설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자작나무 우거진 땅 끝의 황폐한 나라의 사람들로만 여겨졌던 러시아 사람들은 그를 통해 동양 사람에서 유럽 사람이 되었다.

▲ 런던탑 성벽과 템즈강. 내가 따라야 할 힘, 내가 써야 할 힘이란 어떤 것일까?

나도 표트르를 생각하며, 템즈강을 보며 오랫동안 성벽을 걸어보았다. 심리학자인 융은 '어른이 되고 나면 여러분은 자기 삶을 움직이는 힘을 반드시 재발견해야 한다. 비현실적 감각이나 감정의 결여, 긴장은 삶의 잘못된 힘을 따름으로써 나타난다.'고 말했다. 내가 따라야 할 힘, 내가 써야 할 힘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 아주 아주 오래전에 안개 속에서 런던과 템즈 강을 발견한 사람 중엔 그저 멀리 있는 땅을 보고 싶고 알고 싶어서 땅바닥에 막대기로 바다와 섬의 상상의 지도를 그려 넣은 사람도 있었을 것인데 그들은 그들이 앞으로 건너야 할 바다가 얼마나 넒고도 먼지 일일이 계산에 넣지 않고 출발했을 것이다. 나는 그 힘을 숭배하고 따르고 싶다.한 귀여운 아메리카 인디언 소년은 이런 조언을 얻었다고 한다. '삶의 길을 가다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 뛰어넘어라 / 네가 생각하는 만큼 넓진 않으리라.'

영국이 한때 어떤 식으로 힘을 썼는지 사례로 보여줄 만한 사나이도 이곳에 갇혀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나가는 길에 진흙이 있는 것을 보고는 벗고 있던 망토를 펼쳐 여왕이 그 망토를 즈려 밟고 지나가게 했다는 낭만적 전설로 유명한 월터롤리 경이었다. 그는 스페인의 배를 덮쳐 금을 빼앗는 해적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근위 대장, 신대륙에 버지니아란 이름을 붙이고 감자와 담배를 영국으로 들여온 탐험가이자 역전의 용사이면서, 그 인품에 있어서는 후안무치, 오만방자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곳의 어느 방에서 엘리자베스 풍의 반바지를 입고 세계사 책을 쓰기도 했는데 그 책의 애호가중 하나는 올리버 크롬웰이었다.(청교도였던 그는 신성국가를 꿈꾸며 신세계로의 이민을 꿈 꿨었을지 모르겠다)

▲월터 롤리의 초상화. 그는 역전의 용사이자 후안무치, 오만방자한 사람이었다. .
늘 불가능한 항해를 꿈꿨던 월터 롤리와 그 시절 사람들은 배가 움직이는 원인을 뭐라고 생각했을까? 강력하게 부풀어 오른 돛은 스스로가 배를 움직이는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어느 순간에라도 방향을 바꾸거나 멈출지 모르는 바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말해준다면,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훗날 그가 이름을 단 버지니아 같은 아메리카 식민지들은 고가의 상품인 담배의 공급지가 되었고 버지니아에서 생산된 것들은 영국 이외의 상인들과 교역할 수 없었고 영국 이외의 항구로 수출되는 것도 금지되었었다.

지금 런던탑 앞에는 호화스러운 요트들이 정착해 있는 쇼핑몰과 식당으로 가득한 세인트 캐서린 부두가 있다. 이 부두를 통해 차와 구슬, 노예, 진기한 음식재료, 최고의 식재료인 살아 있는 거북이 같은 것들이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했으리라. 하지만 이 세인트 캐서린 부두는 1968년에 폐쇄되었다. 세인트 캐서린 부두가 폐쇄되던 무렵, 4월 23성 성 조지의 날, 항구의 교역이 끝난 이유는 이민자들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백인 항구 노동자들의 웨스트 민스터 행진이 있었다. 그들은 신인종주의 민족주의 정치가의 말이 옳다고 깃발을 흔들며 웨스트 민스터로 행진했는데, 그 세인트 캐서린 부두 노동자들의 행진을 대부분 카리브해 이민자들이 자리 잡은 브릭스턴 지역에서 일어난 민족주의적 테러나 최근 런던의 경제 불황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 그 옛날의 블러디 타워나 타워 그린의 이야기보다 더 구조적으로 착잡한 기분이 든다. 과거 대영 제국의 정치가들은 병원의 잡역부와 청소부들을 자치령과 식민지에서 데려오면서 기뻐했었다. 오늘날에도 런던의 병원과 버스, 지하철은 그들이 없으면 작동을 멈출 것이고 워킹 맘들은 출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장작가인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란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도리스 레싱은 어느날 병원의 노인병동에 가게 되었는데 젊은 흑인 남자 간호사가 늙은 백인 여자에게 요강을 주는 것을 보게 된다.늙은 백인 여자는 아주 고령이었고 노동 계층이었고 노처녀였다.그런 여자에게는 그녀 주위로 커텐이 드리워지기도 전에 공공 장소에서 요강을 사용해야 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힘든 일인데 더 끔찍한 것은 간호사가 남자,그것도 제복을 입은 젊고 차분한 흑인이란 점이었다. 도리스 레싱은 이 둘 사이엔 상상하기 힘든 내면의 드라마가 진행되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가 돌아와 좀 닦아드릴까요?라고 묻자 그녀는 위엄있게 빛나는 눈으로 "아니.괜찮아요.아직은 내가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불안과 젊은이들의 울분 답답함을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어떻게 풀어나갈까? 그것을 해묵은 인종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왕위를 지키기 위해 도끼를 날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해 보인다.

▲ 지금 런던탑 앞에는 호화스러운 요트들이 정착해 있는 쇼핑몰과 식당으로 가득한 세인트 캐서린 부두가 있다.

어쨌든 지금 현재 런던탑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주로 찰스 2세의 왕정 복귀 뒤에 마련된 보석들을 전시하고 있는 주얼 하우스이다. 동인도 회사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인 코히누르와 스타 오브 아프리카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530캐럿짜리, 여왕의 봉에 박혀있다-를 볼 수 있다. 세계 제 1의 다이아몬드, 제2의 다이아몬드는 모두 현 엘리자베스 여왕 소유인데 주얼 하우스에서 다이아몬드의 247면체를 보면서 빛의 반사 이론을 생각하기엔 그 곳은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우리 시대는 위대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힘든 시대라고 한다. 위대한 개인들이 꽃피기 힘든 시대라고 한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돈을 벌어라라는 토양의 속성이 바로 그렇다는데 나는 그 말을 뒤집고 싶다.이 곳에 있었던 또 하나의 유명한 죄수 가이폭스가 재등장하는 영화가 하나 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이다. 엘리자베스 일세의 후계자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일세 시절 가톨릭 신앙을 위해 11월 5일에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 했던 가이폭스는 런던탑에 갇혀 있다가 죽는데 영화에서는 그가 죽는 장면에 '사람이 아니라 신념을 기억하라. 신념은 지금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기억하라 11월 5일을'이라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영화의 끝 장면에선 가이폭스 마스크를 쓴 수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민족주의자 ceo형 독재자를 타도하고 자유를 찾기 위해 모여들고 국회의사당은 폭파되는데 그 때는 "신념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되었다"란 나레이션이 흐른다. 그때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거리에 넘쳐 흐른다.

런던탑에 앉아 가이폭스의 부활을 잠시 생각해본다.원인과 결과들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매일 매일 똑같이 사는 것 같지만 ,반복되고 되풀이 되는 역사의 한 주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신념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이 곳의 오래된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말일지 모른다. 오래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순간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한번은 들어있기를. (그래도 내가 브이 포 벤데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주크 박스에서 줄리런던의 "cry me a river"가 흘러나올때 브이가 나 사실 춤 한번도 춰본 적 없어.부탁이 있어.나랑 춤한번 춰볼래?라고 마스크를 쓴 얼굴 밑으로도 수줍어하며 나탈리 포트만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다.나 한번도 춤춰본 적 없어.)

▲ <브이보벤데타>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나는 이상하게 런던탑을 도는 내내 엘리엇의 황무지 이 싯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단 한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엘리엇 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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