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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사장, '한국 최장수 앵커'의 이력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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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사장, '한국 최장수 앵커'의 이력이 부끄럽다

[기자의 눈] MBC 등치고 이병순, 구본홍 좇는 엄기영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과 이근행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장의 면담을 취재하고자 8일 오후 5시께 서울 여의도 MBC경영센터 10층에 올라간 기자는 깜짝 놀랐다. 사장실 앞 엘리베이터 복도에 피켓을 들고 앉은 PD들의 모습은 앞서 한국방송(KBS)이나 YTN의 사장실 앞에 앉은 기자, PD의 모습과 아주 비슷했다. 거의 '데자뷰'를 보는 듯했다.

▲ MBC 라디오 PD들이 8일 서울 여의도 MBC경영센터 10층 사장실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 지난해 7월 KBS 사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사옥 3층 회의실 앞에서 KBS 이사회를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지난 1월 YTN 노조 조합원이 구본홍 사퇴를 촉구하며 서울 남대문 YTN 사옥 17층 사장실 잎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방송사의 기자와 PD들이 사장실 앞에 모여 항의 농성을 벌이는 일을 '일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마치 '귀신이라도 옮겨 붙듯' 방송사를 옮겨가며 같은 광경이 반복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이 얼마나 전방위적이고 집요한지 보여주는 증거다.

검찰의 압수 수색 시도에 엄기영 사장의 입장은 뭔가?

이날 오전 10시 엄기영 MBC 사장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밖에서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겠다며 나섰고, 안에서는 김미화 씨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하차가 결정되기 직전이었다. MBC 노동조합은 한손엔 "검찰의 압수수색 규탄한다" 피켓을, 다른 손엔 "경영진의 독단 결정 규탄한다" 피켓을 들고 '내우외환'에 맞섰다.

그러나 엄기영 사장은 양쪽 사안 모두 이렇다할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검찰의 압수 수색에 대해선 박병주 총무부장을 내려보냈을 뿐 회사의 입장 등을 밝히지 않았고, 내부 조합원이 강하게 반발하는 앵커·진행자 교체건에 대해선 "심사숙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과 함께 결정 시안을 늦추기만 했다.

8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들 사안이 과연 좌고우면할 일인가?. 이명박 정부와 보수단체의 눈총을 받아왔다는 '정치적인 이유' 이외에 신경민 앵커와 김미화 씨가 교체될 이유가 있는가. 검찰이 경찰 병력을 동원해 다시 압수 수색을 강행하려 한다면 엄 사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최장수 앵커'로서 교훈은 '정권 눈치보기'?

엄기영 사장이 누구인가. 그는 지난해 3월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지난 13년간 MBC의 앵커를 맡아 '한국 최장수 앵커'로 기록된 대표적인 'MBC맨'이었다. 그는 2008년 2월 1일 앵커로서의 마지막 진행을 마무리하면서 "지난 13년 여 매일밤 긴장의 연속이었으나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며 "계속 <뉴스데스크>를 사랑해달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런 이력을 생각했을 때 엄 사장은 특히 신경민 앵커와 김미화 씨 교체건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엄 사장이 이번 사안에 내리는 결정은 그가 지난 13년 3개월간 어떤 생각과 소신으로 MBC의 간판 앵커 자리를 이어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자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최장수 앵커로 활약하는 동안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8일의 사태는 그의 '무색무취함'이 언론인으로서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는지 아니면 사장 취임 이후 안팎에 드러내는 것처럼 '우유부담함'과 '소신 없음'의 반영이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줄 것이다.

국민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앵커를 두고 그는 단지 정권에 불편하지 않은 진행과 멘트로 수명을 연장시켜왔던 것이라고, 그래서 그 결과가 오늘날에도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엄기영 앵커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도 늘 1, 2위를 다투며 상위에 랭크됐다. 그 역시 '국민의 착각'은 아니었길 바란다.

그러나 13년 3개월 간의 앵커 생활이 언론인으로서의 중립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면 그는 대한민국의 어느 언론인보다 앵커와 프로그램 진행자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오랫동안 체감해왔다는 의미다.

그런 그가 사장이 된 이후 보도국 기자들의 대대적인 반발을 무릅쓰고 신경민 앵커를 흔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엄기영 사장은 지상파 방송사 사장이라는 단맛에 취해 그간 쌓아온 언론인으로서의 자긍심 따위는 내팽개친 것인가.

MBC 사장이 될 때 엄기영의 각오는 무엇이었나

MBC의 최고 경영자가 벌써부터 '정권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다면 오는 8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의 교체를 앞두고 시청자들은 어떻게 MBC가 신뢰할 만한 공영방송으로 남아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엄기영 사장에게 아직 자신을 '최장수 앵커'로 있게한 언론인으로서의 자부심은 아직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MBC의 간판 앵커에서 MBC 사장이 되었을 때 당신의 각오는 어떤 것이었나. 혹시 정권의 외압에서 후배들을 지켜주고 MBC의 공영성을 확대시키는 것, 즉 "따뜻한 방송, 믿을 수 있는 방송을 넘어 명품 방송을 만드는 것" 아니었나. 지금 자신은 스스로 그 꿈을 저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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