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국들이 '역사적 합의'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하고, 대부분의 언론들이 합의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나 의지에 대해 의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있을 때, <슈피겔>은 '성장을 위한 합의가 아니라 몰락을 위한 합의'였다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부의 전쟁>의 저자이자 현재 워싱턴 지국장으로 있는 가보르 슈타인가르트 <슈피겔> 기자는 'The West's Fatal Overdose(서구의 치명적 과잉투여)'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이번 합의를 '달러 과잉 투입에 의해 생긴 위기를 더 많은 달러 투입으로 해결하려는 미봉책'이라고 혹평했다.
이 글이 특히 주목되는 점은 월스트리트의 금융업체들이 파생상품을 마구 팔아대서 금융위기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글로벌 경제위기가 왔다는 통상적인 분석을 뛰어넘은 시각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지목한 시위자들이 부시를 닮은 가면을 앞세우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뿐 아니라 달러를 마구 찍어대는 '화폐 전쟁'을 일으키는 중대한 실책을 저지른 것이 오늘날 세계를 경제침체로 몰아간 주범이며, 월가는 달러를 뿌려댄 종범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최근 시중에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달러>와 <화폐전쟁>이라는 책들의 주장처럼 경제위기의 배후를 '달러'로 지목한 것이다. 특히 달러를 '마약'으로 비유한 슈타인가르트 기자는 '전쟁 범죄자'로 비난받은 부시 전 대통령에게 '마약 재배자'라는 또다른 오명을 붙여줬다.
다음은 가보르 슈타인가르트 기자가 쓴 논평 'The West's Fatal Overdose(서구의 치명적 과잉투여)'의 주요 내용(원문보기)이다.<편집자>
"G20 합의, 더 큰 위기 만들어낼 것"
G20 정상들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항한 계획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향후 더 큰 위기의 토대를 제공할 뿐이다. 이번 정상회의의 진정한 표어는 '안정, 성장, 일자리' 대신 '부채, 실업, 인플레이션'이어야 했다.
G20 정상들은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이라면서 쉬운 길을 택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내년말까지 5조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결정은 역사적 전환점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방향은 내리막길이 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번 위기에 대응해 향후 더 큰 위기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참가국들이 이번 회의의 모토를 '안정, 성장, 일자리'라고 쓰기보다는 '부채, 실업, 인플레이션'이라고 정했다면 차라리 더욱 솔직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왜 이런 위기에 우리가 빠지게 되었는가를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이다.
"시장의 실패 이전에 정부의 실패가 있었다"
그 답을 찾으려했다면, 시장의 실패 이전에 정부의 실패가 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금융산업의 탐욕스러운 선수들인 월스트리트와 은행들은 이번 위기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은행들은 투기자금을 뿌려대는 딜러 역할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는 '마약 작물 재배자'가 군림하고 있다. 조지 W. 부시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임 중 '마약 작물 재배지'의 면적을 엄청나게 넓혔다.
이 '마약 재배지'의 주요 작물의 이름은 '값싼 달러'다. 이 달러가 전세계에 흘러 넘치면서 은행들의 실적은 부풀려지고, 거짓 성장과 미국의 부동산 거품을 초래했다. 금융시장의 투명성이 결여돼있어 이런 독약은 전세계에 뿌려졌다.
민간기업이 주체적으로 못하는 두 가지 사업, 전쟁과 발권
21세기에 들어서도 민간기업이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일이 두가지가 있다. 전쟁 수행과 돈을 찍어내는 일이다. 2001년 9.11 테러 사태가 일어나자 부시는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의 첫번째 실책에 대해서는 언론들이 많은 언급을 했다. 하지만 달러를 마구 찍어낸 그의 두번째 실책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상 부시처럼 돈을 마구 찍어내고 뿌려댄 대통령은 없었다. 새로 찍어낸 달러는 상품이나 용역 형태의 실질적인 가치와 연계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조치로 적어도 초기에는 세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의 소비에 힘입어 세계 경제가 몇년 동안 잘 굴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성장은 신기루였다. 미국이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만성 중독이 된 '새 돈 찍기'
새 돈을 찍어 투입하는 일은 이제 만성 중독이 되었다. 번영하는 국가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더 많은 신규 국채를 팔아댔다. 설상가상으로 일반 가계에서도 정부의 행태를 따라했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번 돈을 모두 쓰며, 15개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다. 저축률은 제로 수준이다. 부시 집권 말기, 전세계 저축의 75%가 미국으로 흘러들어 왔다.
당시 부시 대통령과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일반인들조차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06년 이후 달러의 총통화량 지표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핵심적인 지표로 간주하는 통계가 미국에서는 국가기밀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추정을 통해서만 한때 세계 최강의 통화였던 달러가 내부에서 썩어들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달러의 통화량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기밀로 취급되는 '달러 총통화량'
달러의 총통화량이 기밀로 취급된 이후 달러의 공급 증가율은 세 배로 뛰었다. 지난해에만 달러 공급량은 17%가 늘었다.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어도 절제하는 태도로 복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방종을 일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채무를 더욱 더 많이 늘리는 길로 가고 있다. 게다가 그 속도도 높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예산은 이미 3분의 1이 세수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현재 완전 가동되고 있는 생산시설은 재무부에 있는 국채 발행기들이다.
G20 금융정상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이 문제를 빼고는 모든 것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애당초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기관들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지 못했다.
G20 합의, 참가국들의 국가채무 급증 예고
이제 값싼 달러의 재배지가 또다시 확대될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정부가 달러를 뿌려대는 딜러로도 나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더 많은 자금을 빌려 재원을 3배로 확대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았다. 세계은행(WB)도 더 많은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G20 참가국들은 정부 보증 하에 경기부양을 지원하길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미국은 새로운 빚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기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행태를 따를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역사적인 시기에 살고 있다. 서방세계는 스스로 치명적인 과잉투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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